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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최선 다했다"는 정부…중대재해법 혼란, 외면 말아야

등록 2022.01.03 17:4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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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사회정책부 강지은 기자

[서울=뉴시스] 사회정책부 강지은 기자

[서울=뉴시스] 강지은 기자 = "정부는 국회 합의의 취지를 고려해 최선을 다했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이제 기업에서 단 한 건의 인명 사고라도 줄일 수 있도록 필요한 안전 조치가 무엇인지 고민하고 실행해야 할 때입니다."

안경덕 고용노동부 장관이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한 달 앞둔 지난달 27일 고용부 정책점검회의를 주재하며 한 말이다.

오는 27일부터 중대재해법이 본격적으로 시행되지만 현장, 특히 기업의 우려가 여전하자 정부의 입장을 설명하고 기업의 노력을 거듭 당부하고 나선 것이다.

올해 산업 현장에서 최대 이슈가 될 중대재해법은 노동자 사망사고 등 중대재해 발생시 사업주나 경영 책임자가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드러나면 처벌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현재 산업안전보건법 등 관계 법령이 있지만 추락·끼임 등 '후진국형' 산재가 반복되고 있는 데다 이에 대한 처벌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자 지난해 1월 우여곡절 끝에 국회를 통과해 제정된 법이다.

중대재해법은 당시에도 과잉처벌 우려 등으로 경영계가 거세게 반발한 바 있다.

다만 정부는 "중대재해법은 경영 책임자를 처벌하기 위한 것이 아닌 중대재해를 예방하는 데 궁극적인 목적이 있다"며 기업의 안전관리 구축 의무 등을 '구체화'하는 데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물론 이후 정부가 이를 위해 노력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시행령 제정에 이어 가이드북, 해설서까지 마련하며 기업들이 안전관리 구축 등 중대재해법 시행에 철저히 대비할 수 있도록 지원해왔다.

그러나 중대재해법 시행이 코앞인 시점에도 잡음은 끊이지 않고 있다.

정부는 "경영 책임자가 중대재해를 예방하기 위해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다했다면 사망사고가 발생하더라도 법 위반으로 처벌되지 않는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그 '의무'가 무엇인지 여전히 명확하지 않은 데 따른 것이다.

대표적인 게 경영 책임자의 안전보건 확보 의무로 규정한 적정한 조직과 인력, 예산 등이다.

'적정한' 같은 모호한 기준에 대해 정부는 "유해·위험 요인을 통제하는 구체적 수단, 방법을 일률적으로 정하기 어려워 기업 여건에 맞게 자율적인 판단이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당장 경영 책임자가 징역 등 처벌 기로에 놓일 수 있는 기업으로서는 상당히 애매한 답변이 아닐 수 없다. 기업 입장에서는 안전관리 구축을 했다고 해도 명확한 기준이 없다보니 언제든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최선을 다했다"는 고용부 장관의 말은 우려를 더한다.

중대재해법 시행 이후 혼란을 최소화하고 법이 제대로 안착하기 위해서는 해당 내용을 보다 명확히 하는 등 지속적인 보완이 필요한데, 마치 이를 서둘러 매듭 지으려는 것처럼 보여서다.

여기에 "이제 기업이 고민해야 할 때"라고 하니 모호한 기준만 던져놓고 기업의 노력만 요구하는 것 아닌가 싶기까지 하다.

분명한 것은 이러한 불명확성이 해소되지 않는다면 자칫 법 위반 여부를 따지는 공방만 길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노동자 사망사고를 예방하자는 중대재해법 취지는 사라진 채 소모전만 지속될 수 있다는 얘기다.

지난해 11월까지 일터에서 목숨을 잃은 노동자는 790명.

올해 단 한 건의 인명 사고라도 줄이기 위해 고민해달라는 정부의 당부는 비단 기업에만 해당하지 않길 바란다. 정부도 끊임없이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 중대재해법 혼란을 이대로 외면해선 안 된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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