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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골, 쪽잠, 폭언…열악한 환경속 '노예적' 관행 여전 [외국인력 확대③]

등록 2023.01.05 07:00:00수정 2023.01.18 14:4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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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3년간 산재 신청 2만2361건

사망자 비율 내국인보다 3배 높아

임금체불 약 3만명…1183억 수준

'사업장 이동 제한' 고용허가제 비판

[서울=뉴시스] 최동준 기자 = 지난달 18일 서울 광화문 파이낸스빌딩 앞에서 민주노총, 이주노동조합 주최로 열린 세계 이주노동자의 날 기념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사업장 이동의 자유 보장 등을 촉구하고 있다. 2022.12.18. photocdj@newsis.com

[서울=뉴시스] 최동준 기자 = 지난달 18일 서울 광화문 파이낸스빌딩 앞에서 민주노총, 이주노동조합 주최로 열린 세계 이주노동자의 날 기념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사업장 이동의 자유 보장 등을 촉구하고 있다. 2022.12.18.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오제일 기자 = #1. 네팔 노동자 A씨는 지난해 12월까지 일하면 사업장을 변경해 주겠다는 사업주의 약속을 믿었다. 기술 정보를 다른 회사에 알려주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쓰고 기다렸다. 하지만 A씨가 지난달 27일 받은 것은 고의적으로 불량을 낸 사실을 확인했으니 수천만원의 손해배상을 하라는 사업주의 문자메시지였다.

#2. 지난해 4월 경기도 한 공장에서 일을 시작한 방글라데시 노동자 B씨는 한 달여 만에 사업주로부터 폭행을 당했다. 매일 같이 폭언이 있었고, 폭행의 간격도 짧아졌다. 두 달 만에 고용센터를 찾아 사업장 변경을 요청했다. 이를 전해 들은 사업주는 가위를 들고 기숙사를 찾아 외국인등록증을 자르겠다고 위협했다.

#3. 네팔 노동자 C씨의 숙소는 2층이다. 쌓아 올린 컨테이너에서 잠을 잔다. 창문을 열면 보이는 것은 온종일 일하던 공장의 벽이다. 녹슨 컨테이너에 오르기 위해 분리수거장 옆을 오른다.

이주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 환경 개선 필요성은 오래 언급됐지만, 현실은 여전하다. 지난 2020년 12월 한파주의보 속 보일러가 작동하지 않는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잠을 자던 캄보디아 노동자 속헹씨의 죽음 이후에도 그렇다. 폭언과 폭행이 드물지 않고, 장시간 노동에 산업 재해 위험에 노출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이에 이주노동자들은 한파를 뚫고 거리에 서기도 한다. 이주노동자단체는 지난달 18일 세계 이주 노동자의 날을 맞아 기자회견을 열고 "속헹씨의 죽음 이후 2년, 이주노동자 상황은 변한 것이 별로 없다"고 말했다.

이주노동자의 열악한 환경을 드러내는 지표는 다수다.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의원이 고용노동부와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2020~2022년 8월까지 연도별 국내 체류 외국인 노동자 산재 신청 및 승인 현황' 자료에 따르면 이 기간 이주 노동자의 산재 신청 건수는 2만2361건이다.

국내 외국인 노동자 사고사망이 2020년 94명(10.7%)에서 지난해 102명(12.3%)으로 증가했다는 통계도 있다. 이는 내국인보다 3배가량 높은 수치라고 한다.

[서울=뉴시스] 최동준 기자 = 지난달 18일 서울 광화문 파이낸스빌딩 앞에서 민주노총, 이주노동조합 주최로 열린 세계 이주노동자의 날 기념대회에서 참가자들이 한국에서 사망한 이주노동자들을 위해 헌화하고 있다. 2022.12.18. photocdj@newsis.com

[서울=뉴시스] 최동준 기자 = 지난달 18일 서울 광화문 파이낸스빌딩 앞에서 민주노총, 이주노동조합 주최로 열린 세계 이주노동자의 날 기념대회에서 참가자들이 한국에서 사망한 이주노동자들을 위해 헌화하고 있다. 2022.12.18. [email protected]

임금 체불이 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정의당 이은주 의원이 고용노동부로부터 제출받은 임금체불 현황 자료를 보면 2021년 임금 체불을 당한 이주노동자 수는 2만9376명이다. 체불임금의 규모는 1183억원 수준이다.

이주노동자에게 제공되는 숙소의 70%가 컨테이너, 조립식 패널, 비닐하우스 등 가설건축물이라는 조사(고용허가제 외국인근로자의 주거환경 실태조사 및 법·제도 개선방안 마련 연구용역·고용노동부)도 있다. 숙식비를 임금에서 먼저 공제하는 경우가 많은데, 통상임금에 비례해 8~20%까지 뗄 수 있다 보니 '월세 장사'를 하는 사업주들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사업장을 바꾸는 일은 쉽지 않다. 고용허가제에 따라 E-9(비전문취업) 비자를 받은 이주노동자들은 일정 기간 지정된 업체에서 근무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변경 횟수도 제한된다. 부당 처우 등 이주노동자의 책임이 아닌 사유로 근로 지속이 어려운 경우 제한없이 사업장 변경이 가능하지만 이를 입증하는 것도 쉽지 않다고 한다. 이주노동자들은 고용허가제를 '현대판 노예제'라고 비판한다.

법과 제도를 알지 못해 대응조차 하지 못하는 이들도 다수다. 열악한 환경에서 근무를 이어가며 정신건강 문제를 호소하는 이들도 늘고 있다. 이주노동자 노동조합 관계자는 "이주노동자들을 단순 '인력'이 아니라 '사람'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올해 역대 최대 규모인 11만명을 도입하기로 한 고용부는 이주노동자 보호를 강화하기 위한 조치를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주거환경 개선, 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 통역인력 확충, 외국인근로자 사망으로 처벌받은 사업장의 외국인 고용 제한, 산재 예방 교육 강화 등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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