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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아과 간판 내리겠다"…동네병원 전문의들 '폐과 선언'

등록 2023.03.29 10:00:00수정 2023.03.29 15: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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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더 이상 운영 못해…수가 올려야"

"의사 공백 핵심인데 정부는 시설확충"

[서울=뉴시스] 최동준 기자 =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회장이 29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소아청소년과 폐과와 대국민 작별인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3.03.29. photocdj@newsis.com

[서울=뉴시스] 최동준 기자 =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회장이 29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소아청소년과 폐과와 대국민 작별인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3.03.29.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백영미 기자 = 장기적인 저출산 흐름과 고착화된 낮은 수가(진료비), 코로나19로 인한 진료량 급감이 맞물리면서 붕괴 위기에 직면한 소아청소년과(소청과) 전문의들이 실효성 있는 정책이 나오지 않자 소청과 간판을 내리겠다고 선언했다.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회장은 29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회관 4층 대회의실에서 '소아청소년과 폐과와 대국민 작별인사' 기자회견을 열고 "아픈 아이들을 고쳐 주는 일을 천직으로 여기고 살아왔지만, 오늘자로 대한민국에서 소청과라는 전문과는 간판을 내릴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임 회장은 "소청과 전문의들은 한없이 참담한 심정으로 이 자리에 섰다"면서 "이 나라에서 아이들을 진료하면서 소청과 전문의로는 더 이상 살 수 없는 처지에 내몰렸다"며 이 같이 말했다.

턱없이 낮은 진료비가 장기간 지속돼온 가운데 유일한 비급여 시술이었던 소아 예방접종조차 국가필수예방접종(NIP) 사업에 포함돼 건강보험이 적용되면서 동네 병·의원을 더 이상 운영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는 게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의 입장이다.

그는 "지금 상태로는 병원을 더 이상 운영할 수가 없다"면서 "지난 10년 간 소청과 의사들의 수입은 25%가 줄었고 그나마 지탱해주던 예방접종은 100% 국가사업으로 저가에 편입됐고, 국가예방접종사업은 시행비를 14년째 동결하거나 100원 단위로 올려서 예방접종은 아예 없어졌다"고 말했다. 이어 "심지어 올해 국가필수예방접종에 마지막으로 편입된 로타바이러스장염 백신 접종은 기존 소청과에서 받던 가격의 40%만 받도록 질병청이 강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인턴들이 소청과를 전공하면 의대만 나온 의사(의대 졸업 후 의사 면허를 취득한 일반의)보다도 수입이 적고, 동네 소청과 의원은 직원 두 명의 월급을 못 줘서 한 명을 내보내다가 한 명 남은 직원의 월급마저도 못 줘서 결국 지난 5년 간 662개가 폐업했다"면서 "하지만 소청과의 유일한 수입원인 진료비는 사실상 30년째 동결됐고 동남아 국가의 10분의1이여서 더 이상 버틸 수가 없다"고 말했다.

소청과는 국내 의료수가 체계상 비급여 항목이 거의 없고, 환자가 어린이여서 진찰 외에 추가적으로 할 수 있는 처치와 시술이 거의 없다. 진찰료로만 수익을 내는 셈이다. 하지만 1인당 평균 진료비는 30년 간 1만7000원가량(2021년 의원급 의료기관(동네 병·의원) 기준 환자 1인당 평균 진료비 1만7611원)으로 사실상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

인턴의 소청과 지원 기피 현상이 심화되면서 소청과 전공의는 물론 소청과 세부 전문의도 심각한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다. 그는 "소청과 뿐 아니라, 소아외과, 소아흉부외과, 소아신경외과, 소아마취과, 소아정형외과, 소아안과, 소아이비인후과, 소아재활의학과, 소아응급의학과 등 소아를 진료하는 모든 의료 영역의 의사들이 더 이상은 버틸 수가 없는 형편"이라고 알렸다.

하지만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는 소청과 의료 인프라 구축과 지원율 제고에 필요한 정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는 게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의 설명이다.

[서울=뉴시스] 최동준 기자 =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회장이 29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소아청소년과 폐과와 대국민 작별인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3.03.29. photocdj@newsis.com

[서울=뉴시스] 최동준 기자 =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회장이 29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소아청소년과 폐과와 대국민 작별인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3.03.29. [email protected]

그는 "정책을 세우고 실행하는 복지부는 대통령의 뜻을 뒷받침하고 무너지고 있는 소아청소년 의료 인프라를 바로 세우는 정책이 아닌 오히려 미흡하기 그지없는 정책들을 내놨다"며 "올해 레지던트 소청과 지원율이 더 떨어질, 빈 껍데기 정책들만 내놨다"고 주장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아이들의 건강을 챙기는 것은 국가의 최우선 책무다", "의사가 소아과를 기피하는 것은 정부 정책이 잘못된 탓이다", "건강보험 재정이 부족하면 정부 재정을 투입해서라도 바꿔라"고 복지부에 지시했다.

그는 "인턴들이 소청과를 지원하도록 만들고, 대학병원 소청과 교수들이 사직 없이 보람을 갖고 계속 일하도록 만들고, 인턴들이 힘들고 위험하고 고되더라도 신생아, 소아혈액암, 소아심장병, 소아감염병, 소아알레르기호흡기학, 소아신경학, 소아신장학 등 세부 전공을 하겠다는 결심이 설 수 있는 대책인가 찬찬히 살펴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복지부, 질병청, 기재부가 아이들을 살리는 대책이 아니라 이에 반하는 대책들만 양산하고 있다면 소청과에 더 이상 희망은 없다는 데 의사들이 의견의 일치를 봤다"고 밝혔다.

복지부는 지난달 ‘소아 의료 체계 개선 대책’을 통해 중증 소아 환자를 담당하는 어린이 공공진료센터와 24시간 소아 환자에 대응할 수 있는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를 각각 4곳씩 늘리겠다고 밝혔다. 또 24시간 소아전문상담센터 시범사업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는 "소청과 의사 인력 공백이 문제의 핵심인데 가장 중요한 의료진 보상이 아닌 엉뚱한 시설 확충을 해결책으로 내세웠다"고 지적했다.

또 "아이들이 동일한 증상으로 내원해도 고려해야 할 수많은 다른 질환들이 있고, 의사 표현도 미숙하고, 면역력이 낮은 아이들은 병이 급격히 나빠져 대면 진료조차 오진의 가능성이 있는데, 24시간 소아전문상담센터에서 전화를 통해 증상을 상담하고 처치를 안내하는 것은 정신 나간 발상"이라고 덧붙였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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