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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계속되는 연인폭행·살인…관계성 범죄 여전히 구멍

등록 2023.05.30 16:12:04수정 2023.05.30 19:5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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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성 '낮음'에도 '높음' 조치 권고한 경찰

스토킹·가정폭력처벌법 적용 어렵다 판단

신당역 살인 이후 계류 중인 법률 수십 건

[서울=뉴시스] 전재훈 기자

[서울=뉴시스] 전재훈 기자


[서울=뉴시스]전재훈 기자 = 헤어진 연인이 자신을 데이트 폭력으로 경찰에 신고했다는 이유로 보복 살인하는 사건이 발생해 관계성 범죄의 사각지대가 다시 도마에 올랐다.

서로의 집과 직장의 위치, 현관 비밀번호, 생활패턴 등을 알고 있는 사이에서 발생하는 관계성 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등장하는 게 현장 경찰관 무능론이다.

하지만 법의 테두리 안에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 하는 경찰관들은 "최선을 다했지만, 법이 그렇다"는 입장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서울 금천구 살인사건의 경우 경찰이 피의자 김모(33)씨의 데이트폭력 사실을 인지하고도 피해자 A씨를 적극적으로 보호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비판이 일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살인 사건 발생 약 1시간30분 전인 지난 26일 오전 5시37분께 김씨가 자신과 재회를 강요하면서 팔을 잡아끌어 폭행했다고 경찰에 신고했다. 아울러 김씨가 자신의 집에 들어가 현관 비밀번호를 바꾸거나, TV를 파손했다는 내용도 경찰에 전했다.

경찰은 '위험성 체크리스트'를 통해 A씨의 상황이 얼마나 위험한지 평가했다. 결과는 '낮음'으로 나왔는데, '매우 높음, 높음, 보통, 낮음, 없음' 5단계 분류에서 범죄 가능성이 적다는 결론이 나온 것이다.

이에 해당하는 적절한 조치는 112시스템에 등록하는 것이다. 하지만 경찰은 직권으로 '높음' 수준 대응 조치에 해당하는 112시스템 등록, 맞춤형 순찰, 주거 이전, 스마트 워치 지급 등을 권고했다.

아울러 경찰이 귀가 동행을 권유했지만, 모두 이행하지 못했다. A씨가 개인 일정이 있다며 거절했을 때, 강제하기 어려운 현실 때문이다.

현장에서의 대응은 적극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경찰청 훈령인 피해자 보호 및 지원에 관한 규칙에 따라 직권으로 조치할 수 있었지만, 위험도 평가가 '낮음' 수준인 상황에서 조치와 처벌을 거절하는 A씨를 경찰차에 억지로 태워 데려다주긴 어렵다.

문제는 경찰이 현장에서 위험성이 높다고 판단해도, 직권으로 조치를 강제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려워 '권유'만 할 수 있었던 상황에 있다.

스마트워치 착용, 주거 이전은 물론, 김씨의 범행 우려가 크다고 판단해 그를 구금하거나 접근금지 처분을 내리려면 법률적 근거가 있어야 한다.

가정폭력은 '가정폭력처벌법', 스토킹은 '스토킹처벌법'이 있어 피해자에 대한 보복 범행 우려가 있을 때 구금이나 접근금지 등 잠정조치를 이행할 수 있다.

하지만 A씨, 김씨처럼 법률혼·사실혼 관계가 아니라면 가정폭력처벌법을 적용할 수 없다.

실제로 A씨는 경찰 조사에서 '김씨와 결혼할 계획이 없다', '생활비를 따로 쓴다' 등의 진술을 했다고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동거 여부도 확정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사실혼까지 확대해석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봤다"고 말했다.

경찰은 김씨가 A씨에게 협박 메시지를 보낸 이후로 재차 주거침입이나 협박 연락을 하지 않은 점을 고려해 스토킹처벌법 적용도 어렵다고 판단했다.

꾸준한 스토킹이 없고 사실혼·법률혼 관계가 아니어도, 관계성 범죄를 방지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 내밀한 점까지 알고 있는 사이에서 발생하는 관계성 범죄는 관계의 규정을 떠나 치밀하게 계획된 강력 범죄를 초래할 수 있어 위험하다. 단순 연인, 친구 사이에서 벌어지는 관계성 범죄들도 제도적 보호체계 안에서 관리해야 하는 이유다.

신당역 살인 사건 이후 금천구 살인 사건을 막을 수 있는 법률안이 다수 발의된 바 있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을 보면, 긴급응급조치나 잠정조치 보호 대상에 피해자의 직계 및 동거 가족 등을 포함하도록 하는 개정법률안이 20여건 발의됐다.

하지만 대부분 지난해 9월14일 이후 발의된 뒤로 소위원회 등에 계류 중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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