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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석학의 조언…"응급실 뺑뺑이 막으려면 '이것' 바꿔야"[인터뷰]

등록 2023.06.04 09:01:00수정 2023.06.04 09:3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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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송천 카이스트 명예교수 시스템 개선 제안

"원스톱 시스템 한계…병상 데이터 통합해야"

"응급실 병상 수 3초 내 확인 가능 만들어야"

[서울=뉴시스]문송천 교수는 슈퍼컴퓨터를 최초 개발한 미국 일리노이대학교에서 전산학박사를 1980년대 초 취득해 국내 ‘전산학 박사 1호'로 불린다. FIU시스템 설계, 특허청, 한국방송 등에서 데이터 설계를 총괄(기술지도)하며 국가정보시스템 구축에 기여했다. (사진= 백영미 기자) 2023.06.04.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문송천 교수는 슈퍼컴퓨터를 최초 개발한 미국 일리노이대학교에서 전산학박사를 1980년대 초 취득해 국내 ‘전산학 박사 1호'로 불린다. FIU시스템 설계, 특허청, 한국방송 등에서 데이터 설계를 총괄(기술지도)하며 국가정보시스템 구축에 기여했다. (사진= 백영미 기자) 2023.06.04.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백영미 기자 = "원스톱 응급 이송 시스템을 구축한다 하더라도 (응급환자 사망 사고) 재발은 불보듯 뻔합니다. 금융정보분석원(FIU) 혐의거래시스템처럼 데이터를 통합해 혐의거래 색출하듯 의료기관별 데이터를 통합해 남은 병상을 찾아내야 응급환자 사망을 줄일 수 있습니다."

국내 1호 전산학 박사이자 컴퓨터 데이터베이스 분야 최고 권위자인 문송천 카이스트(KAIST) 경영대학원 명예교수(70)는 지난 1일 서울 동대문구 연구실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갖고 응급환자가 응급실을 찾아 병원을 전전하다 숨지는 '응급실 뺑뺑이' 사망 사고를 막기 위한 응급의료시스템 개선책을 이 같이 제시했다.

앞서 국민의힘과 정부는 지난달 31일 당정협의회를 열고 빈 병상과 의사 현황 등을 환자 이송 출발 단계부터 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 '원스톱 응급 이송 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문 교수는 "(응급실 뺑뺑이 사망 사고는)데이터가 파편 형태로 설계돼 분절(분산·단절)돼 벌어지는 것"이라면서 "데이터 설계를 뜯어 고쳐 병원마다 따로따로 돌아가는 데이터를 완전히 통합하지 않으면 실효성 없는 한낱 탁상공론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국민의 생명과 직결되는 필수의료 의사와 응급실 병상이 부족한 의료환경에서 응급환자와 의사·빈 병상을 실시간 연결해줄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은 필수다. 환자를 이송하는 119구급대가 구급차 안에서 응급처치를 하면서 병원에 일일이 연락해 환자를 받아줄 수 있는지 확인하다 보면 환자를 살릴 수 있는 골든타임을 흘려보낼 수밖에 없다.

문 교수는 "구급대원이 병원에 연락을 돌리지 않아도 잔여 병상 수가 시스템에 실시간 떠야 한다"면서 "병원 간 데이터를 단순히 연결하는 식이 아닌, 물리적으로 한꺼번에 통합해 응급실 내 정확한 잔여 병상 수를 3초 안에 확인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체 병상 수에서 입원·퇴원 행위가 이뤄질 때마다 병상이 하나씩 줄어들도록 코딩(컴퓨터 언어로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해 잔여 병상 수가 실시간 업데이트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최근 경기 용인시에서 중상을 입은 70대 남성이 응급 이송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구급차에 실려 인근 병원이 아닌 원거리 병원까지 이송되다가 숨졌다. 문 교수는 "현행 시스템은 입원·퇴원 행위가 데이터로 잡히지 않기 때문에 정확한 잔여 병상 수를 파악할 수 없다"면서 "병원별로 흩어져 있는 데이터 통합을 위한 설계가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데이터 통합 설계의 부재로 발생한 사건 사고는 응급실 뺑뺑이 사망 사고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사회복지와 관련된 정부 시스템 5개를 3개로 통합·재구축하는 차세대 사회보장정보시스템 오류, 이태원 참사 당시 재난안전통신망 시스템 먹통, 북한 무인기 탐지 실패, 법원 전산망 먹통 사태 등 수두룩하다.

문 교수는 "보건복지부, 행정안전부, 국방부 등 부처들이 정보시스템상 데이터 통합 설계를 등한시해 온 결과 정보시스템 오류로 낭비되는 혈세도 연간 20조 원 규모"라면서 "공무원만 경질하고 넘어갈 것이 아니라 근본 원인인 데이터 설계를 완전히 뜯어 고쳐 부처별 데이터를 통합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사건 사고는 끊이지 않을 것"이라고 쓴소리를 했다.

[대구=뉴시스] 지난달 26일 제주공항을 출발해 대구국제공항에 착륙하던 아시아나 항공기의 문이 열려 호흡곤란을 보인 승객을 119구조대가 들것을 이용해 구급차로 옮기고 있다. (사진 = 대구소방안전본부 제공) 2023.05.26.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대구=뉴시스] 지난달 26일 제주공항을 출발해 대구국제공항에 착륙하던 아시아나 항공기의 문이 열려 호흡곤란을 보인 승객을 119구조대가 들것을 이용해 구급차로 옮기고 있다. (사진 = 대구소방안전본부 제공) 2023.05.26.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우리나라가 참고할 만한 해외 데이터 통합 성공 사례는 영국에서 찾을 수 있다. 1992년 10월 영국 런던에서 응급의료시스템이 개통됐지만 데이터 통합 실패로 인한 소프트웨어 오작동으로 구급차가 제때 출동하지 못했고 개통 직후 48시간 이내 무려 30명이 사망했다. 이후 영국은 데이터를 재설계해 4년 뒤 새로운 응급의료시스템을 재개통했고, 지역병원 진료기록 전국 공유 시스템 등 성공 사례가 다수 나왔다.

국내 응급환자 이송 시스템 구축에 필요한 "데이터 설계 기술 발전으로 38개월 간에 걸쳐 재구축된 런던응급의료시스템과 달리 국내 병원별 데이터 통합(재설계)은 4개월이면 가능하고 코딩과 테스트까지 포함한 총 공사기간은 1년 정도 소요될 것"으로 문 교수는 내다봤다. 또 "데이터 통합 설계·시스템 통합(SI)업체 선정 후 코딩 등으로 총 1000억 원 이내의 비용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했다.

1970년 컴퓨터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된 문 교수는 1990년대 초 데이터 전문가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특히 2004년 FIU 혐의거래 시스템 개선에 투입돼 '통합 데이터' 설계를 총괄, 4개월 만에 완성했다. 특허청, KBS 등의 데이터 설계도 책임지며 국가정보시스템 구축에 기여했다. 어떠한 경우에서라도 정확한 데이터를 3초 안에 얻을 수 있도록 설계하는 것이 핵심이다. 데이터의 질과 속도를 모두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문 교수는 IT가 보건복지, 국방, 과학기술 등 다양한 분야를 파고드는 시대 문제점을 정확히 짚어 올바른 해법을 제시할 수 있는 데이터 설계 전문가의 역할이 더 중요해졌다고 강조했다.

"전쟁도 노트북을 들고 다니면서 하는 시대입니다. 국가정보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으면 질 것을 각오하고 전쟁터에 뛰어들어야 하죠. 우리나라도 영국, 미국처럼 보건복지·국방·과학기술 분야 데이터 전체를 총괄 설계하는 '국가데이터최고책임자(Chief Data Officer)'가 필요합니다. IT전문가로서의 사명감과 책임감은 필수죠."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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