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읍성은 13세기 초 이후 축성"…청주읍성큰잔치 학술세미나

청주읍성큰잔치 학술세미나.
청주문화원(원장 박상일)은 31일 오후 문화원 세미나실에서 청주성 탈환 426주년 기념 2018 청주읍성큰잔치 학술세미나를 열었다.
'청주읍성을 돌아보다'를 주제로 열린 이날 행사에서 이규근 호서문화연구원장은 '고려시대 청주(읍)성'을 주제로 한 발표에서 옛 문헌에 기록된 청주성과 관련해 "13세기 초 이전엔 우암산 기슭의 청주내성과 조선시대 읍성이 위치한 시가를 둘러싸고 무심천 동안(東岸)에 축성된 토축의 나성(羅城)이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13세기 초 이후엔 청주내성과 조선시대 청주읍성 자리에 있던 용두사(龍頭寺)를 허물고 석축으로 축성된 청주읍성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이 원장은 용두사를 폐하고 청주읍성을 쌓았다는 '낭성지(琅城誌)'의 기록 등을 들었다.
청주읍성은 고려 공민왕 11년(1362)에 홍수로 청주성이 침수됐고, 공양왕 2년(1390)에 홍수로 붕괴됐다는 기록도 나온다.
노병식 충청북도문화재연구원 조사연구실장은 '매장문화재로 본 청주 도심의 역사적 위상 변화'에서 청주읍성 발굴조사 결과 라말여초(신라 말~고려 초) 유적과 유물이 가장 많이 발견됐음을 밝혔다.
노 실장은 "고려시대 유적·유물이 많이 분포하고 있음은 신라시대 이뤄진 도시에서 기초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며 "우암산 정상에서부터 도심지역을 에워싼 나성은 고려 말 1361년 홍건적 침입 때 피란온 공민왕이 행궁으로 이용하면서 위상이 강조됐다"고 말했다.
이어 강민식 청주백제유물전시관 학예실장은 '공민왕의 청주 행차와 청주목의 자취'에서 "공북루와 망선루는 청주읍성 초기 단서를 제공하고 고려 때 청주목 관아의 일단을 이해하는데 유효한 자료"라며 "압각수 전설에 전하는 남문과 북문은 행궁이 아닐까 추정한다"고 밝혔다.
이 실장은 '무지개가 동쪽에서 떠올라 왕궁에 낮게 걸쳤는데 두 끝은 청주의 내성을 넘어가지 않았다'는 '고려사' 1362년 기록을 들어 내성을 궁장(宮牆)으로 이해했다.
주제 발표에 이어 김양식 충북학연구소장을 좌장으로 7명의 패널이 종합토론을 했다.
올해 청주읍성큰잔치는 다음 달 1~2일 읍성 터가 있는 중앙공원과 성안길 일대에서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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