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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 인터뷰]정운선·이기돈, 삼종지도를 박제하라···'인형의 집'

등록 2018.11.01 15: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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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연극 '인형의 집' 배우 정운선, 이기돈(왼쪽)이 2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뉴시스와 인터뷰 하고 있다. chocrystal@newsis.com

【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연극 '인형의 집' 배우 정운선, 이기돈(왼쪽)이 2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뉴시스와 인터뷰 하고 있다.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이재훈 기자 = 노르웨이 극작가 헨리크 입센(1828~1906)의 희곡 '인형의 집'의 메시지는 여전히 유효하다는 말은 진부하다. 입센이 1879년 발표한 이 '사회문제극'은 다양한 박자와 조성으로 변주되고 있다.

결혼 전에는 아버지의 인형, 결혼 후에는 남편의 인형으로 살던 순종적인 '노라'가 가정을 떠나는 내용은 여성해방과 성평등을 환기시킨다. 러시아 연극 연출가 유리 부투소프(57)가 10년 만에 국내에서 연출하는 작품인 예술의전당 30주년 기념작 '인형의 집'은 어떤 화두를 던질까.

노라 역의 정운선(35)은 "고전의 생명력은 재해석에서 오는 것 같다"면서 "시대에 동의할 수 있는 말을 찾으면, 시의성이 도드라진다"고 봤다. "고전에는 누구에게나 던지는 공통 질문이 있고, 그런 질문이 저를 성장시키는 것 같아요. 얄팍한 제가 보지 못했던 것을 보면서 한발 더 나아가는 것 같죠"라는 마음이다.
 
노라 남편 헬메르 역의 이기돈(38)은 "희곡은 결국 사람 사는 이야기"라면서 "물론 계속 올려진다고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하지만 사회의 문제는 상기시킬 수 있지 않나요"라고 반문했다. 
【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연극 '인형의 집' 배우 정운선, 이기돈(왼쪽)이 2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뉴시스와 인터뷰 하고 있다. chocrystal@newsis.com

【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연극 '인형의 집' 배우 정운선, 이기돈(왼쪽)이 2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뉴시스와 인터뷰 하고 있다. [email protected]

국내에서 공연된 '인형의 집' 중 회자되는 작품은 2005년 LG아트센터 무대에 오른 '인형의 집-노라'다. 독일 베를린 샤우뷔네 극장 토마스 오스터마이어(50) 예술감독은 노라가 남편을 총으로 쏴 죽이는 파격적인 결말을 내놓았다.

이 작품을 봤다는 정운선은 "학생 때였는데 충격적이라 강한 인상이 남아 있어요"면서 "언젠가 저런 작품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만만치 않을 이번 작품에 출연하게 돼 기대가 큽니다"라며 의욕을 드러냈다.

과감한 생략과 비약, 고전의 해체를 통한 현대적인 해석으로 정평 난 부투소프 표 '인형의 집'도 오스터마이어 버전만큼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부투소프는 러시아 최고의 연극상인 황금마스크상과 스타니 슬랍스키상 수상자로, 2003년 연극 '보이체크', 2008년 연극 '갈매기'로 한국 관객에게 호평을 들었다.

정운선과 이기돈은 부투소프의 연출과 지도가 흥미롭다고 입을 모았다. 정운선은 "일반적인 연습이 아니에요. 주어진 상황 안에서 많은 것을 시도하라는 기준을 주세요. 퍼즐 맞추듯이 신을 구성해나가서 더 고민하게 되죠"라고 전했다.
【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연극 '인형의 집' 배우 정운선이 2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뉴시스와 인터뷰 하고 있다. chocrystal@newsis.com

【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연극 '인형의 집' 배우 정운선이 2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뉴시스와 인터뷰 하고 있다. [email protected]

이기돈은 "연습 첫날부터 클라이맥스였다"며 웃었다. "독특한 미장센에 신경을 많이 쓰세요. 근데 그것이 무조건 아름다워 보이는 것이 아니에요. 해당 장면에 맞는 당신이 추구하는 이미지를 극대화시키는 거죠."

그럼에도 작품이 주는 본질적인 메시지에는 한치 오차도 없다. 정운선은 "3막 마지막 대사 중 '내가 떠나면 당신도 자유로워질거야'가 있어요. 둘 다 자유로워져야 함을 강조하는 것인데 결국 사람에 대한 이야기죠"라면서 "여자든 남자든, 지위가 어떻고를 떠나 속해 있는 상황에서 스스로 자유롭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결정이 중요하죠"라고 강조했다.

"살아온 환경, 받아온 교육에 의해 자연스레 형성된 것들에 대해 '내가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질문을 던지는 거예요. 노라도 그렇고, 헬메르도 그렇고, 당시 사람들 대다수는 자신의 삶에서 할 수 있는 것을 했을 거예요. 그런데 그런 익숙한 환경에서도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고 그것을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 더 중요하죠."

"여전히 필요한 이야기이고, 노라의 상황은 당연히 답답해요"라면서 "헤메르에 대한 제 해석이 있지만 연출님이 던져준 형식에 어떻게 엮어갈지 어렵게 고민하고 있죠"라는 것이 '인형의 집'으로 들어온 이기돈의 고백이다.
【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연극 '인형의 집' 배우 이기돈이 2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뉴시스와 인터뷰 하고 있다. chocrystal@newsis.com

【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연극 '인형의 집' 배우 이기돈이 2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뉴시스와 인터뷰 하고 있다. [email protected]

정운선과 이기돈이 제대로 호흡을 맞추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앞서 2012년 손턴 와일더의 '아워 타운'이 원작인 '우리동네', 2015년 아서 밀러의 '시련'에 함께 나오기는 했으나 같이 등장하는 장면은 거의 없었다.

이기돈은 정운선이 "굉장한 여배우"라고 했다. "쉬는 시간에 장난을 치다가 연습이 시작되면 바로 그 인물이 되는 것이 놀라워요. 연기인지 실제인지 헷갈릴 정도"라며 혀를 내둘렀다. 정운선은 이기돈이 "완벽주의자"라면서 "치밀하게 준비한 것에 놀라는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라고 했다.

아르바이트로 오페라 '라보엠'에 엑스트라로 출연하는 등 종종 무대 경험을 하던 이기돈은 2006년 극단 물리의 한태숙이 연출한 '이아고와 오셀로'를 통해 연극계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였다. "원래 장사를 해서 돈을 벌고 싶었어요. 연극배우에 대한 욕심은 없었죠. 그런데 어느 순간 연극배우가 돼 있더라고요."

'리처드 3세'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가족' 등 주목 받는 연극에 잇따라 출연하고 국립극단 시즌단원을 거치며 주가를 높인 그는 최근 "감추는 에너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이기돈은 몸을 잘 쓰고, 엇박자의 독특한 리듬감을 갖고 있는 배우다. "장민호 선생님이 무대 위에서 크게 연기를 안 하는데도 대단했어요. 저도 그런 연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요즘 들어요."
【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연극 '인형의 집' 배우 정운선, 이기돈(오른쪽)이 2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뉴시스와 인터뷰 하고 있다. chocrystal@newsis.com

【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연극 '인형의 집' 배우 정운선, 이기돈(오른쪽)이 2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뉴시스와 인터뷰 하고 있다. [email protected]

아역 배우로 활약하다가 2010년 뮤지컬 '내 마음의 풍금'을 통해 다시 연기를 시작한 정운선은 연극 '목란언니'로 각급 신인상을 휩쓸며 주목 받는 배우가 됐다. '유리동물원' '가족이란 이름의 부족' '킬미나우' 등에서 성숙한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정운선은 연기 경력이 쌓일수록 주변을 둘러보게 된다. "어릴 때는 제게만 집중을 했는데 함께 하는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됐다"는 것이다. "함께 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잘 보내면 그 에너지가 무대 위로 고스란히 드러난다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덕분에 인물, 작품에 다가가는 시선도 더 열릴 것 같아요"라고 기대했다.

이기돈과 정운선의 변화한 태도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는 '인형의 집' 작업을 환기시키고 있다. 이기돈은 부드러운 친화력으로 맏형 역을 톡톡히 하고 있고, 연습실에서 한쪽 구석에 박혀 있던 정운선은 배우들과 화기애애하게 어울리며 수다스러워졌다.

정운선은 "지금 겪고 있는 많은 새로운 것들에 정신이 흔들리기도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상황을 온전히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상태가 되는 것"이라고 짚었다. 공연은 6~25일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우정원, 김도완, 홍승균 등이 함께 출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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