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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넘어북한] 또 '80일 전투' 돌입 … 북한, 왜 전투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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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20-10-23 20:20:25
김정은 집권 후 세 번째 전투
8차 당대회 앞두고 부족한 경제 계획 채우려 총력 투입
경제성과 불투명하나 체제 다잡는 효과 높아
휴일까지 박탈 당한 주민들은 성과 위해 애면글면
【서울=뉴시스】강영진 박수성 기자 = 북한은 지난 10일 당창건 75주년 기념일을 성대히 치르자마자 '80일 전투'에 전력을 쏟고 있습니다. 이번 전투는 김정은 국무위원장 집권 후 세 번째 대중 총동원으로 연말까지 미흡한 경제 성과를 채우는데 목표가 있습니다. 하지만 노동력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한데도 북한은 '전투' 방식을 전략으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이번 <창넘어 북한>에서는 대북 경제제재, 코로나19, 자연재해의 어려움 속에서 진행 중인 '80일 전투'의 의미를 다뤘습니다.



‘4당5락’이라는 말을 아시는지요? 하루 4시간만 자고 공부하면 원하는 대학교에 합격할 수 있지만 5시간을 자면 어렵다는 뜻입니다.

70년대까지 널리 쓰였지만 요사이는 그리 많이 쓰이진 않는 말입니다. 10여년 전까지는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무관심, 할아버지의 재력’이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이라는 개그도 있었습니다. 최근엔 엄마, 아빠가 재력은 물론 폭넓은 영향력으로 자녀의 대학 입시에 유리한 각종 스펙을 뒷받침하지 못하면 좋은 대학 가기가 어려워진 듯 합니다.

창넘어 북한에서 뜬금없이 우리 나라 입시 개그를 꺼내는 게 의아하실 겁니다.

지금 북한에서 한창 벌어지고 있는 ‘80일 전투’에 대해 어떻게 소개하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살인적인 대학입시 경쟁을 떠올렸습니다. ‘80일 전투’를 우리 입시경쟁과 비유한다는 건 말도 안되는 일일 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북한 주민들이 '80일 전투'에 대해 어떤 기분일까 상상하다가 떠올린 게 바로 그 유쾌하지 않았던 입시경쟁의 추억이었습니다. 길게는 몇 년을, 짧게는 1,2년 정도를 휴일도 없이 죽어라 공부만 해야 하는 기분 말입니다.

안녕하십니까. 뉴시스 북한팀 박수성입니다.

지난 주는 북한의 노동당 창건 75주년 기념 열병식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성대한 경축 행사였습니다.
 
그런데요. 크게 축하할 일이 지나면 며칠만이라도 쉬면서 한숨 돌리는게 보통 아닌가요? 북한에서 그런 건 사치입니다. 북한은 지금 ‘80일 전투’에 여념이 없습니다. ‘80일 전투’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 경제를 일으키기 위해 벌이는 증산운동입니다. 경제제재, 코로나 19, 자연재해의 삼중고 속에서 올해의 경제성장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연말까지 전력투구하자는 겁니다.

지금 북한 전역에선 매일 궐기대회가 열리면서 모든 북한 주민들이 '80일 전투'에 적극 참여해 큰 성과를 내야한다고 독려하고 있습니다. 노동신문은 매일 '전투' 참여를 선동하는 글을 1면에 싣고 전국 각지에서 벌어지는 참가 열기를 소개하는데 거의 모든 지면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전투’가 시작되면 끝날 때까지 북한 주민들은 단 하루도 쉴 수가 없게 됩니다. 휴가도 갈 수 없고 결혼도 못한다고 합니다. 상을 당한 사람도 2-3일 정도만 쉴 수 있답니다. 평소에도 주 6일 근무여서 일요일 하루밖에 휴일이 없는데 '전투' 기간 동안에는 그 하루조차 쉬지 못하는 겁니다. 식당에서 술도 팔지 않고 시장도 오후 4시가 넘어서야 열린다고 합니다.

올해 연말까지만 그렇다면 참고 넘어갈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북한에서 50년 전에 처음 시작된 '전투'는 몇 년 단위로 되풀이돼 왔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집권한 뒤에도 세 번의 '전투'가 있었습니다. 2016년에 두 차례 있었는데 5월에 열린 7차 당대회를 앞두고 상반기에 ‘70일 전투’를 했고 당대회 이후에 ‘200일 전투’를 했습니다. 365일중 무려 270일 동안 전투가 벌어진 셈이지요. 그 기간 동안 북한 주민들은 제대로 쉬지 못하고 일만 죽어라 한 셈입니다.

올해도 내년초로 예정된 8차 당대회를 앞두고 ‘80일 전투’가 시작됐습니다. 아마도 8차 당대회가 끝나면 내년 초부터 ‘200일 전투’를 다시 시작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8차 당대회에서 제시한 새로운 경제발전계획 목표를 앞당겨 달성하기 위해 초기부터 바짝 달라붙어야 한다면서 말입니다.
 
북한 주민들은 벌써부터 내년도엔 제대로 쉴 수 없을 것으로 각오하면서 한숨을 내쉬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 같습니다.

북한에서 ‘전투’가 처음 시작된 것은 1971년이었습니다. 70년의 5차 당대회에서 인민경제발전 6개년계획을 세우면서 이를 앞당겨 달성하기 위해 ‘100일 전투’를 시작했습니다. 결과는 그다지 좋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후에도 당대회나 경제발전계획을 빌미로 모두 13차례 '전투'가 있었다고 합니다. 짧게는 70일, 길게는 200일이었습니다. 2016년처럼 한 해에 두 번 '전투'가 벌어져 사실상 일년 내내 쉬지 못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1988년과 89년에는 연달아 '200일 전투'가 있었습니다.

북한의 '전투'는 많은 사회주의 국가들이 한때 채택했던 대중동원 방식으로 경제발전 전략의 일종입니다. 북한에선 '전투'말고도 천리마운동, 만리마운동, 각종 속도전과 같은 대중동원 방식의 경제발전 전략이 아직도 지속되고 있습니다.

기원은 구소련 스탈린 시절인 1935년에 시작된 스타하노프 운동입니다. 탄광 노동자인 스타하노프가 주어진 생산량의 14배를 채굴하는 큰 성과를 올렸다고 선전하면서 그를 본받자고 대중을 선동한 증산정책입니다. 나중에 국가에 의한 노동착취라는 비판을 받았지만 중국은 '대약진운동'으로, 북한은 '천리마운동'으로 뒤따라 갔습니다. 

그런데 이 운동은 초기에는 큰 성과를 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별다른 성과를 낼 수가 없게 됩니다. 경제가 발달하면서 노동자가 열심히 일하는 것만으로는 큰 성과를 내기가 어려워진 겁니다.

기술이 발달하고 경제는 분화하는데 노동자들을 다그치는 것만으로 증산한다는 건 한계가 분명할 수밖에 없습니다. 효율적인 자원관리, 생산기술의 발전, 시장의 발달 등 모든 것이 뒷받침돼야 가능한 일을 노동자를 채근해 따라잡겠다는 건 애당초 말이 안되는 일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세계 어느 나라도 북한처럼 '전투' 방식을 경제 전략으로 채택하는 나라는 없습니다.

그런데도 북한은 왜 여전히 ‘전투’를 반복하고 있는 걸까요? 그건 ‘전투’의 목적이 경제보다는 정치에 더 큰 비중이 있기 때문입니다. ‘전투’를 반복하는 건 체제가 느슨해지는 걸 막기 위한 겁니다.

학술적으로 표현하면 대중동원 선동으로 체제 충성계층을 형성하고 권위적 통제를 강화해 체제안정을 이루는 정치적 기능을 수행하는 겁니다. 쉽게 말하면 주민들을 들들 볶아 대서 '딴 생각'을 못하게 한다는 거죠.

‘전투’는 북한의 중간 계층에 가장 큰 부담을 안긴다고 합니다. 북한에서 당원도 아닌 하층계급은 어차피 고달픈 일상이라 '전투'가 벌어진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것이 없다고 합니다. 최상층 고위급간부들은 직접 노동을 하지 않으니 '전투' 때문에 특별히 힘들어질 일이 없는 건 물론입니다.

그렇지만 중간층은 ‘전투’라는 이름에 걸맞는 성과를 내지 못하면 당성이 부족하고 충성도가 낮은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게 됩니다. 승진의 기회가 사라지는 건 물론이고 자칫하면 나락으로 추락할 위험성마저 있습니다. 반대로 노력영웅의 칭호라도 받을 수 있는 성과를 내면 속된 말로 팔자가 폅니다.

하루도 쉬지 못하면서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애면글면하는 우리 입시생들과 처지가 비슷하다는 제 느낌에 공감하시나요?

올해 ‘80일 전투’는 지난 5일 노동당 정치국회의에서 결정했습니다.

“당창건 75돌을 승리와 전진의 대경사로 빛내이고 그 기세를 더욱 앙양시켜 올해의 투쟁을 자랑스럽게 결속하며 당 제8차대회를 높은 정치적 열의와 로력적 성과로 맞이하기 위하여 전당적, 전국가적으로 년말까지 80일 전투를 전개할데 대한 책임적이며 중대한 결심을 내리였다”는 것이 ‘80일 전투’를 시작하는 취지로 발표됐습니다.

발표문이 장중하고 거대한 느낌을 주지만 진실을 드러내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한 탈북자는 올해 ‘80일 전투’를 하는 실제 목적은 3중고에 시달리면서 갈수록 살기 힘들어지는 주민들이 불만을 터트리는 걸 방지하는데 있다고 말했습니다. 올해는 코로나 19 때문에 지역간 이동이 차단되면서 각종 물자공급이 부족해져 심지어 평양의 시장에 사과가 쌓여 있는 모습조차 볼 수 없을 정도라고 합니다.

탈북자 표현에 따르면 "평양이 이 정도면 정말 심각한 상황"이라고 합니다. 과거 평양의 시장에선 돈만 있으면 뭐든지 살 수 있을 정도로 풍족했는데 올해는 정말 어렵다는 겁니다. 이 때문에 주민들 사이에 동요의 조짐이 보이자 ‘80일 전투’를 벌인다는 게 이 탈북자의 생각입니다.

저는 이 탈북자도 북한 당국의 발표문처럼 ‘80일 전투’의 한 단면만을 전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전투’라는 게 경제적으로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게 이미 오래 전에 밝혀졌습니다.

그런데도 '계몽군주'라고 칭찬까지 받는 젊은 지도자가 이끈다는 북한이 여전히 케케묵은 ‘전투’ 방식의 선동에 매달리는 건 무슨 까닭일까요?

보다 창의적이고 효율적인 대안을 찾지 못하는 게 안타깝게 느껴집니다. 혹시 못하는 게 아니라 일부러 하지 않는 걸까요?

창넘어 북한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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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언론 뉴시스 yjkang1@newsis.com, pzcmaria@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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