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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양반가, 인테리어는 간결한 자연스러움 추구

등록 2022.07.09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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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방 문갑은 장식 화려…사랑방 가구는 소박

오늘날 '역세권' 있다면 조선시대는 '물세권'

조선시대는 물세권, 즉 우물이 가까운 곳이 인기를 끌었다. (그림=서은경) *재판매 및 DB 금지

조선시대는 물세권, 즉 우물이 가까운 곳이 인기를 끌었다. (그림=서은경) *재판매 및 DB 금지

[안동=뉴시스] 김진호 기자 = 주거는 개인의 공간이자 삶의 한 부분이다.

공간을 어떻게 꾸미는가에 따라 그 사람의 개성, 한 시대의 유행도 알 수 있듯 조선시대 선비들도 공간 조성을 통해 자신의 삶을 표현했다.

한국국학진흥원은 이같은 내용을 담은 '양반가 인테리어'라는 주제로 스토리테마파크 웹진 담談 7월호를 발행했다고 9일 밝혔다.

김정호 교수는 이번 호에서 '조선 시대 목가구에 나타나는 아름다운 비례미'라는 글을 통해 조선시대 안방과 사랑방에 놓인 목가구를 중심으로 한옥의 공간과 조화를 이루는 비례미에 관해 이야기를 풀어간다.

조선 시대 민가의 주거공간은 안방, 사랑방, 부엌으로 나뉘고 그 각각의 공간에서 사용되는 가구는 해당 공간에 맞는 여러 형태로 그 모습이 나타난다.

가구 대부분이 화려한 장식이나 조각 등은 배제하고, 사계절이 뚜렷한 기후의 특성이 반영된 나뭇결을 살려 제작됐다.

유럽이나 중국 가구는 입식 생활과 실내공간이 넓고 높아 가구도 크고 육중하며 장식적인 면을 띄고 있다.

반면 한국은 차분하고 아담한 분위기를 선호하는 기질과 온돌로 인한 좌식생활 영향으로 천정이 낮고 비교적 실내도 좁다.

그래서 가구들은 생활공간을 조금이라도 많이 확보하기 위해 키가 작고 간결하게 제작됐다.

방 가운데 놓이는 가구들, 예를 들어 서안, 연상, 문갑, 반닫이, 소반 등도 효율적인 공간 활용성을 위해 이동성을 고려해 만들어졌다.

모두 키가 작고 세로 폭이 좁은 것은 평좌 자세에서의 실용성을 고려한 결과이다.

목재는 계절에 따라 수축과 팽창을 해서 함수율이 높거나 폭이 넓은 판재는 뒤틀리거나 갈라지는 등 변형이 심하므로 전면의 넓은 면은 좁게 나눠 변형을 줄였다.

좁은 면이기에 아름다운 무늿결의 나무를 쉽게 얻을 수 있었고, 가구 전체에서 받는 하중을 분산시키는 역할도 겸했다.

안방에서 사용되던 문갑은 재료와 장식이 화려하고, 사랑방에서 사용하던 가구는 검소하고 소박하게 제작됐다.

소반의 경우 당시 남녀유별·장유유서의 유교 사상으로 겸상보다는 독상이 주로 쓰였다.

조선시대 윤리관은 주택의 공간도 남녀유별이란 관념에 따라 안채와 사랑채로 나뉘었고, 가구들도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니며 발전했다.

그림=서은경 *재판매 및 DB 금지

그림=서은경 *재판매 및 DB 금지

서은경 작가의 '스토리 웹툰 – 우물, 굴뚝, 땔감'에서는 오희문(吳希文, 1539~1613)의 쇄미록(吳希文) 속 이야기 중 전란을 피해 변두리로 이사한 오희문 일가의 새집 적응기를 통해 '좋은 집'의 조건을 소개한다.

오늘날 숲세권, 역세권에 따라 집세가 결정됐다면 조선시대는 물세권, 즉 우물이 가까운 곳이었다.

수도가 없던 시대에 하루 세끼 밥하고 빨래를 하려면 우물이 가까운 곳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물을 구하기도 어렵고, 굴뚝도 잘못 설치돼 방 안에 연기가 자욱하고, 땔감을 구하기도 힘든 집에서 고군분투하는 오희문 가족의 이야기를 웹툰으로 흥미롭게 전한다.

뮤지컬 작가 이수진의 '선인의 이야기, 무대와 만나다– 무대 위에 집을 짓다'에서는 마당놀이 '놀부전'의 화초장, '발레 춘향'의 책가도 등 전통 주거 공간 안에 놓인 소품이 무대 위의 작품으로 어떻게 연출됐는지 흥미진진하게 소개한다.

극단 '미추'의 마당놀이 '놀부전'에서는 화초장이 등장한다.

화초장은 문판에 꽃 그림을 그려 장식했다.

장 안에는 해충의 침입을 막으려고 한지나 비단을 발라 둔 옷장이나 의걸이장(위는 옷을 걸게 되고 아래는 반닫이로 된 장)으로 조선 사대부 안방에는 꼭 이 화초장이 있었다.

쇠뿔을 이용한 화각공예로 새긴 꽃 그림 장식이 있는 화려함을 자랑한다.

정조가 책을 강조하기 위해 책 그림을 어좌 뒤에 병풍으로 펼쳐놨었다.

이 때문에 양반들도 책가도 열풍에 동참해 거의 200여 년 동안 유행했다.

19세기 화가 이형록이 책가도에서 이름을 떨쳤는데 이것이 유니버셜 발레단의 '발레 춘향'의 무대 배경막에도 반영됐다.

양반가의 서재를 표현하기 위해 잠시 등장하나 공간에 대한 말이 필요 없는 간결한 설명과 분위기를 형성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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