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미야자키 하야오 ‘바람이 분다’ 한국상영 거부여론…“일본 극우영화”
‘바람 불다’는 직역으로 먼저 알려진 이 애니메이션은 수입사에 의해 ‘바람이 분다’라는 제목으로 확정됐다. 원제는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로 유명한 프랑스 시인 폴 발레리의 시구를 딴 일본 소설의 제목을 차용한 것이다. 일본에서도 “영상미만 빼고는 기대에 못미치는 작품”이라는 평이 꽤 있지만, 개봉 첫주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며 흥행에 성공할 조짐이다.
‘지의 정원’, ‘도쿄대생은 바보가 되었는가’ 등으로 국내에서도 유명한 작가 다치바나 다카시(73)를 7월초 도쿄국제도서전에서 만났다. 같은 달 20일 일본에서 개봉하는 ‘바람이 분다’의 팸플릿에 들어갈 2400자 정도의 해설을 쓰고 있다며 이를 위해 호리코시 지로에 대한 10권 이상의 책을 비롯, 수많은 서적을 읽었다며 상세한 얘기를 들려줬다.
주인공 ‘호리코시 지로’는 쇼와 시대(1926~1989년 히로히토 일왕시대)를 산 실존인물인 제로센 전투기 설계자 호리코시 지로(1903~1982)와 동시대 유명 소설가 호리 타츠오(1904~1953)를 합친 인물이다. 비행기를 만드는 얘기만으로는 지루할 수 있으므로 호리 타츠오의 자전적 사소설 ‘바람이 분다’의 로맨스를 가미했다는 것이다. 결핵환자로 부잣집 딸이었던 야노 아야코(소설 속 세츠코)와의 연애와 사별이 주요 내용이다. (폐병 걸린 미소녀 캐릭터의 원형이 되는 소설이라고도 알려져 있다)
작품 속 호리코시 지로는 어려서부터 비행기를 동경하다가 상상해온 비행기를 만들기 위해 업계로 들어서게 된다. 이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밝혔듯 감독의 아버지는 물론, 자기자신의 모습도 반영한 듯하다. 아버지 가추지는 집안이 소유한 미야자키 항공사의 관리자로 일하며 제로센의 방향타를 제작했고, 군국주의 덕분에 부유한 어린 시절을 보낸 미야자키 하야오의 어릴 적 꿈도 비행기 조종사가 되는 것이었다.
다치바나 다카시는 “애니메이션 속 호리코시 지로는 어려서 외국 비행기 잡지를 읽으며 이탈리아 비행기 제작자 카프로니 백작을 선망하게 됐고 실제 만난 적은 없지만 꿈속에서 몇 차례 대화를 나눈다. 스튜디오 지브리 역시 카프로니가 만든 비행기 이름에서 따왔다. 실제로는 사막의 열풍을 뜻하는 ‘기블리’에서 온 것으로, 미야자키가 잘못 읽어서 지브리가 됐지만 이제는 지브리가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도쿄대(도쿄제국대학) 항공연구소는 호리코시 지로가 다닌 항공학과 부속으로 관동대지진으로 후카가와에 있는 항공연구소가 괴멸되면서 이전, 도쿄대 제2캠퍼스인 고마바에 위치하게 됐다. 전후 점령군에 의해 일본에서의 항공연구가 금지되면서 이화학연구소로 변경되며, 이후 도쿄대 우주항공연구소가 됐다는 것이다. 호리코시 지로는 사가미하라 쪽으로 이전한 시기에 이곳에서 강사로 일하기도 했다. 현재는 첨단과학기술연구소로 남았다고 한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 미화해도 제로센이 진주만 공습에 투입되고 일본 자살특공대인 가미카제 전투기로 쓰였으며, 제조사 미쓰비시 중공업은 조선인을 강제징용해 노동력을 착취했고(미쓰비시는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에 대한 손해배상을 거부해 현재까지 소송이 진행되고 있다), 배경이 된 관동대지진에서 조선인 대학살이 자행됐고, 모델이 된 호리코시 지로가 자신이 만든 제로센이 일본군의 대승에 기여했다는데 자부심을 가졌던 인물이라는 점에는 변화가 없으며, 이에 대한 비판과 반성은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 중평이다.
반전주의자라면서 밀리터리(전쟁무기) 마니아인 모순을 지닌 미야자키 하야오는 고유한 판타지 세계를 창조하며 국내에서도 수많은 팬을 거느리고 있다. 그러나 그의 말년에 나온 사실주의적 성인물에서 그의 본심이 드러난 것 아니냐는 실망어린 평가도 나오고 있다. “아름다운 비행기를 만들고 싶다”며 “비행기는 살육과 파괴의 도구가 되는 숙명”이라는 말을 애써 회피하는 극중 주인공의 모습처럼 말이다.
일본 내에서도 논란을 일으킨 ‘바람이 분다’라는 일본어 타이틀을 구글 검색창에서 넣어보면 관련검색어로 ‘한국(韓国)’이 가장 먼저 뜬다. 그만큼 한국에서의 반응을 의식하고 있다는 얘기다. 지브리 스튜디오는 7월26일 무려 60여명의 한국기자들을 초청해 시사회와 함께 미야자키 하야오의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같은 사실은 이례적으로 다음날인 27일자로 일본 주요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일본최대 일간지 요미우리 신문은 “제로센 디자이너 호리코시 지로를 모델로 한 청년을 주인공으로 하는 것 등이 영화 개봉 전 한국의 인터넷상에서 비판되고 있는 것에 대해 미야자키 감독은 ‘당시 비행기를 만들려고 생각하면 군용기를 만들 수밖에 없었다. 호리코시 지로가 옳다고 생각하고 영화를 만든 것은 아니지만 그가 잘못했다고 쉽게 단정 짓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교도 통신은 “한국의 넷상에서 ‘전쟁을 미화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는 것에 대해 미야자키 감독이 ‘그 시대를 열심히 살아간 사람을 그 이유만으로 단죄해도 좋은 것인지 의문을 느꼈다’고 답했으며, 종군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일본이 진작에 청산해야했다. 하시모토 토루 오사카 시장의 발언이 문제가 되는 것은 굴욕이다. 일본은 한국과 중국에 사과해야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일본에 거주하며 현지 개봉한 이 애니메이션을 먼저 접한 한국인들의 분노도 거세다. “미국에서 핵폭탄 을 만든 오펜하이머를 주인공으로 ‘폭탄 터지다’라는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일본에서 개봉하면 참 볼만하겠다. 철저히 자신들을 피해자로 묘사한다”, “전쟁 참화를 다루는 영화임에도 그 원인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침묵한다. 명백한 일본 자국민의 자위용 우익영화다. 과거 개념발언을 했다고 해도 미야자키 하야오의 이런 기만적 태도에 면죄부를 줄 수는 없다” 등의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일부에서는 “작품성을 떠나 이런 작품을 꼭 국내에 상영해야하겠느냐”며 관람거부운동이라도 벌여야하는 것이 아니냐는 견해를 내놓고 있다. “일본 NHK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 ‘제로센, 개발자가 본 비극’을 보면 제로센은 개인이 만든 것을 군이 이용한 것이 아니라 일본해군에서 제작을 의뢰해 만들어진 것이다. 제로센 제작을 도운 사람 중에는 2차세계대전 전범 도조 히데키의 차남도 있다. ‘바람이 분다’는 이를 외면하고 개발자의 순수한 의도만 부각시킨다면서 말도 안 되는 포장을 하고 있다. 그 자체로 일본이 전범 국가라는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 국내 상영은 절대 안 될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도 있다.
“일단 작품을 보고 나서 판단하겠다”는 의견도 있지만,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을 좋아하나 이번 작품은 소재만으로도 국내 개봉을 거부해야한다”, “타국의 죄없는 생명을 사지로 몰아간 중심인물을 내세워 청춘과 사랑을 묘사하다니 관객모독”이라는 유의 질타가 더 눈에 띄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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