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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마에 휩싸인 제천 스포츠센터서 소중한 목숨 구한 '의인들'

등록 2017.12.24 15:3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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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뉴시스】강신욱 기자 = 지난 21일 충북 제천시 하소동 복합건축물 화재현장에서 많은 사람을 살린 할아버지 이상화(왼쪽)씨와 손자 재혁군. 2017.12.22. ksw64@newsis.com

【제천=뉴시스】강신욱 기자 = 지난 21일 충북 제천시 하소동 복합건축물 화재현장에서 많은 사람을 살린 할아버지 이상화(왼쪽)씨와 손자 재혁군. 2017.12.22. [email protected]


【제천=뉴시스】천영준 기자 = 29명의 소중한 목숨을 앗아간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는 불길 속에서 위험을 무릎쓰고 탈출을 도운 '시민 영웅'이 있었기에 더 큰 희생을 막을 수 있었다.

 이 영웅들의 이야기가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지난 21일 오후 이상화(69)씨는 손자 재혁(15)군과 제천시 하소동 스포츠센터를 찾았다. 센터 4층 헬스장은 이들이 체력 단련을 위해 자주 가는 곳이다.

 이날도 평소처럼 운동하던 이씨는 "불이야"라는 다급한 목소리를 들었다. 그는 손자와 함께 아래층으로 급히 내려갔다.

 2층에 다다랐을 때 미처 피하지 못한 여성들이 눈에 띄었다. 이씨와 손자는 여성들을 바로 옆 창문으로 빠져나가도록 도왔다.

 60대 여성이 주춤하며 용기를 내지 못하자 이들은 아래로 내려가 이 여성을 온몸으로 받아냈다. 이렇게 할아버지와 손자가 살린 구조자는 15명에 이른다.

 이씨와 재혁군은 이 과정에서 목과 다리를 다쳐 제천 서울병원에 입원했다. 이씨는 "유리창을 깨려고 화분을 던졌는데 끄떡도 하지 않았다"며 "탈출하지 못하고 3층으로 올라간 여성들이 걱정되고 피해가 너무 커 안타깝다"며 말했다.

【제천=뉴시스】박재원 기자 = 민간 크레인 업체 대표 이양섭(54)씨가 지난 21일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대형화재 현장에서 자신의 장비를 투입해 난간에 피신한 3명을 구조했다. 2017.12.22. (사진= 이양섭씨 제공)  photo@newsis.com

【제천=뉴시스】박재원 기자 = 민간 크레인 업체 대표 이양섭(54)씨가 지난 21일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대형화재 현장에서 자신의 장비를 투입해 난간에 피신한 3명을 구조했다. 2017.12.22. (사진= 이양섭씨 제공)   [email protected]


 화마 앞에서 소중한 생명 3명을 구조한 영웅도 있다. 민간 크레인 업체 대표 이양섭(54)씨다.

 이씨는 화재 소식을 듣고 현장으로 달려갔다. 스포츠센터와 일대는 처참했다. 검은 유독가스에 뒤덮여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다.

 불이 난 건물을 살피던 중 어렴풋이 8층 난간에서 애타게 구조의 손길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확인했다.

 이씨는 곧바로 아들 기현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모든 일 제쳐두고 빨리 장비(크레인) 끌고 와".

 기현씨가 크레인 장비의 일종인 '스카이'를 끌고 현장에 도착하자 운전대를 넘겨받았다. 크레인 운전 베테랑인 이씨는 스포츠센터 건물 외벽에 장비를 붙였고, 난간에 매달려 있는 이들에게 바구니를 댔다.

 "다 탔어요"라는 소리를 듣고는 조심스럽게 바구니를 내렸다. 남자 3명이 바구니에 있었다.

【제천=뉴시스】고승민 기자 =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사고 사흘째인 23일 오전 충북 제천시의 한 장례식장에서 희생자 고 장 모씨의 발인이 엄수되고 있다. 2017.12.23. kkssmm99@newsis.com

【제천=뉴시스】고승민 기자 =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사고 사흘째인 23일 오전 충북 제천시의 한 장례식장에서 희생자 고 장 모씨의 발인이 엄수되고 있다. 2017.12.23. [email protected]


 지난 23일 사랑하는 아내를 먼저 떠나보낸 남편 김인동(64)씨도 시민들이 탈출하는 데 도움을 줬다.

 김씨는 화재가 발생한 날 아내 고(故) 장경자(64)씨와 4층 헬스장을 찾았다. 한 시간 정도 함께 운동하던 중 김씨는 불이 났다는 소리에 뛰쳐나갔다.

 그는 2층 목욕탕에서 나오는 여성들을 보고 다른 사람들과 구조를 도운 뒤 건물을 빠져나왔다.

 이때 아내가 생각났다. '무사히 탈출했겠지'라는 마음에 전화를 걸었으나 아내는 안타깝게도 건물 안에 있었다.

 김씨는 지난 23일 오전 아내를 먼저 하늘나라로 보냈다. 그는 "고마웠소"라며 아내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화재가 더 큰 참사로 이어지는 것을 막은 시민도 있다. 가스 판매업에 종사하는 윤주천씨다.

 제천LP가스판매협회장을 맡고 있는 그는 지난 21일 오후 "불이 난 스포츠센터 바로 앞에 있는 대형 LPG 탱크의 가스 밸브를 잠가달라"는 다급한 전화를 받았다.

 화재 현장에서 10분 정도 거리에 있던 윤씨는 현장으로 급히 달려갔다. 그는 온몸에 물을 뿌린 뒤 건물과 연결된 가스·기화기 배관의 밸브 8개를 모두 잠갔다.

 이 배관은 스포츠센터 건물의 각 층과 연결돼 자칫 가스가 누출되면 대형 폭발로 이어질 수 있다.

 건물이 무너지는 최악의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윤씨는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탱크에 물을 뿌려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제천 스포츠센터는 지난 21일 오후 3시53분께 대형 화재가 발생했다. 이 불로 이용객 29명이 숨지고 37명이 다쳤다.

 많은 시민이 소중한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불길 속에서 시민들을 적극적으로 구출해 낸 영웅들이 있어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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