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대통령 "김복동 할머니 좀 더 사셨으면 평양도 가실걸…"
"3·1절 100주년도 보고, 평양도 다녀오셨을텐데"
"김 할머니, 어머니보다 더 정정, 참 꼿꼿하셨다"
【서울=뉴시스】전신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29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 김복동 할머니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2019.01.29. [email protected]
문 대통령은 29일 오후 3시부터 약 30분 간 서울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김 할머니의 빈소를 찾아 고인을 애도했다. 현직 대통령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의 빈소를 찾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문 대통령의 방문에 앞서 언니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키고자 힘든 몸을 이끌고 한달음에 달려온 길원옥 할머니가 빈소를 지키고 있었다. 문 대통령은 생전의 김 할머니를 떠올리며 20여분 간 담소를 나눴다.
김 할머니의 법적 후견인인 윤미향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은 문 대통령과 길 할머니 사이에서 생전에 고인이 남긴 말들을 전하며 함께 추모했다.
막 분향을 마치고 응접실로 막 들어선 문 대통령을 가장 먼저 반긴 것은 길 할머니였다. 손목에 차고 있던 '문재인 시계'를 들어보이며 미소 지었다. 지난해 1월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 초청 오찬 때 받은 시계였다.
윤 이사장은 "김복동 할머니가 수술 받은 뒤 진통제를 맞아가며 의지 하나로 버티셨다"며 "아흔넷 나이에 온몸에 암이 퍼졌는데도 9월 오사카를 다녀오고 수요집회도 다녀오시는 등 정신력으로 버티셨다. 의료진이 다 놀라워했다"고 전했다.
문 대통령은 "(김 할머니가) 우리 어머니와 연세가 비슷한데 훨씬 더 정정하셨고, 참 꼿꼿하셨다"고 고인을 떠올렸다.
윤 이사장은 "돌아가시면서도 말씀을 많이 하셨다. '끝까지 해달라', '재일 조선인 학교 계속 도와달라'고 하셨다"면서 "나쁜 일본이라며 일본에 대한 분노를 나타내셨다"고 김 할머니의 생전 말씀을 옮겼다.
문 대통령은 "조그만 더 사셨으면 3·1절 100주년도 보시고, 북미 정상회담이 열려서 평양도 다녀오실 수 있었을텐데"라며 안타까운 심경을 나타냈다.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 성대하게 준비 중인 100주년 기념식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은 것에 대한 아쉬움을 짙게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아울러 남북관계가 풀리면 평양을 함께 가자던 김 할머니의 소원을 더이상 들어줄 수 없게 된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도 담긴 것으로 보인다.
윤 이사장은 "김정은 위원장이 빨리 와야한다고 말씀하셨다. '오면 금으로 된 도장을 만들어 주겠다. 김정은이 새겨진 금도장으로 통일문서를 찍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곤 했다"고 전했다.
문 대통령은 "이제 스물 세 분 남으셨죠. 한 분 한 분 다 떠나가고 계신데,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 떠나보내게 돼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평양이 고향인 길 할머니와 함경남도 흥남이 고향인 어머니와의 공통점으로 대화를 이어나갔다.
문 대통령은 "저는 남쪽에서 태어나 고향에 대한 절실함이 덜하지만, 흥남출신들은 모여서 고향 생각을 많이 한다"며 "이산가족들이 한꺼 번에 다 갈 수는 없더라도 고향이 절실한 분들이라도 먼저 다녀올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고향은 안 되더라도 평양, 금강산, 흥남 등을 가면서 반 소원이라도 풀어야 하지 않겠는가"라며 "할머니, 오래오래 사십시오"라고 당부했다.
이에 길 할머니는 "늙은이가 오래 살면 병이고, 젊은이가 오래 살아야 행복"이라고 손사레를 쳤다. 문 대통령은 "함께 오래 살면 된다. 젊은 사람들이 부족한 점이 많으니 어르신들이 이끌어 달라"고 했다.
길 할머니는 "아니다. 젊은이들은 노인들에게 배울 게 하나도 없다"며 "늙은 사람들은 젊은이들을 가르칠 재주가 없다"고 말해 주변의 웃음을 자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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