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원폭 피해 생존자 2283명…74년만에 첫 법적 실태조사
"건강·경제 불안에 차별까지"…96% 70~80대
장애·기초생활수급자 비율 상대적으로 높아
"사회적 차별에 자녀에 유전될까 불안감 多"
복지부 "올해 피해자 2세 건강상태 등 조사"
【서울=뉴시스】
피해자와 자녀들의 건강과 경제상황은 상대적으로 열악했다. 자녀들에게 유전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 속에 결혼이나 출산까지 기피하는 경향을 보여 막연한 불안감 해소 차원에서 역학조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74년 만에 처음으로 특별법에 따라 원폭 피해자 실태조사
보건복지부는 25일 '한국인원자폭탄피해자지원위원회'를 열고 이 같은 한국인 원자폭탄 피해자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2017년 7월 '한국인 원자폭탄 피해자 지원을 위한 특별법' 시행(2016년 5월 제정) 이후 이뤄진 첫 조사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해 6월부터 올해 3월까지 피해자 현황 등을 살폈다.
한국인 원자폭탄 피해자란 원자폭탄이 투하된 때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지역에 있었거나 2주 이내 투하 중심지역으로부터 3.5㎞ 안에 살고 있던 경우, 사후 처리 과정에서 방사능 영향을 받은 1세대는 물론 당시 태아였던 2세대를 가리킨다.
한국원폭피해자원호협회에 따르면 1945년 당시 한국인 피해자 규모는 약 7만명으로 추정된다. 그 가운데 4만명은 사망했으며 생존자 중 한국에 돌아온 사람은 2만3000명 정도로 보고 있다.
이 가운데 지난해 8월 기준 피해자로 대한적십자사에 등록된 생존자는 9.9% 수준인 2283명이다. 여성이 1358명(59.5%)으로 남성(925명, 40.5%)보다 많았고 연령대별로는 70대가 63%(75~79세 41.9%, 70~74세 20.9%), 80대가 33%(80~84세 23.3%, 85~89세 10.0%) 등이었다.
지역별로는 경남 725명(31.8%), 부산 504명(22.1%), 대구 326명(14.3%) 등 10명 중 7명 가량이 경상도 지역에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뉴시스】박미소 수습기자 = 25일 오전 서울 용산구 서울역 코레일 회의실에서 '제3차 한국인원자폭탄피해자지원위원회'가 열리고 있다. 2019.4.25. [email protected]
사망자를 포함한 등록 피해자 3832명의 건강보험진료비 청구자료를 분석한 결과 암과 희귀난치성질환 유병률이 대체로 높게 나타났다.
2012~2016년 주요 암의 인구 10만명당 유병률을 보면 남성은 전립선암-위암-대장암 순으로, 여성은 위암-대장암-갑상선암 순으로 질환을 겪고 있었다. 다만 인구사회학적 요소들이 보정되지 않아 질병을 곧 피폭 영향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비슷한 연령대와 비교했을 때 피해자들은 의료 이용과 의료비 본인부담 수준이 높은 편이었다.
2017년을 기준으로 원자폭탄 피해자들의 입원 이용률과 1인당 입원건수는 각각 34.8%와 3.8건으로 70세 이상 평균인 31%와 3.9과 비교해 입원하는 비율이 다소 높았다.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의료비 본인부담액은 113만원, 155만원, 124만원 수준으로 조사됐는데 이 또한 70세 이상 평균치인 96만원, 105만원, 110만원에 비해 상당히 높았다.
◇사회적 차별 경험…유전 우려에 결혼·출산 기피
1세대 100명과 2세대 105명을 대상으로 한 면접조사와 심층인터뷰(21명) 결과를 보면 어떤 점에서 피해자들이 어려움을 겪는지 가늠할 수 있다.
【서울=뉴시스】박미소 수습기자 = 25일 오전 서울 용산구 서울역 코레일 회의실에서 '제3차 한국인원자폭탄피해자지원위원회'가 열리고 있다. 2019.4.25. [email protected]
피해자 자녀들도 8.6%가 장애를 가지고 있으며 25.7%가 건강수준을 '나쁘다'고 답했다. 9.5%가 기초생활수급자였으며 월평균 가구 수입은 291만원 수준이었다. 35~74세 인구의 장애 비율 5.9%, 전체 인구 대비 기초생활수급자 비율 3.5%, 2017년 전체 가구 월평균 가구소득 462만원 등에 비해 열악한 수준이다.
1세대 11%, 2세대 9.5%는 원자폭탄 피폭과 관련해 사회적 차별을 경험했다. 이로 인해 피해사실을 노출하지 않으려는 경향을 보였다고 보건사회연구원은 풀이했다. 특히 피폭 영향이 유전될 수 있다는 불안감으로 결혼이나 출산을 포기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에 피해자들은 막연한 불안과 두려움 해소를 위해 정부 차원의 역학조사가 필요하다는 데 뜻을 모았다.
1세대는 의료비용 지원(85%), 병원 및 각종 복지시설 이용(58%), 질병에 대한 정보제공 및 건강상담(33%) 등 서비스를 요구했으며 2세대도 의료비용 지원(86.5%), 건강검진서비스(37.5%), 원폭 피해에 대한 정보제공 및 건강상담(33.7%) 암검진 서비스(32.7%) 등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일본 정부는 1990년 한·일 정상간 합의로 재한 원자폭탄 피해자를 위한 지원금 40억엔을 출연하고 2003년 건강수첩을 발행해 소지자에겐 진료비 등 연간 204억원을 지원하고 있다. 한국 정부도 수첩 미소지자 63명을 대상으로 진료비, 장제비, 건강검진비 등 매년 49억원을 지원 중이다.
김기남 복지부 질병정책과장은 "지금까지 정책이 피해자 1세에 초점을 맞춰왔다면 이제는 피해자 2세 등에 대해서도 국가가 실태를 파악하고 필요한 지원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올해 중 피해자 2세 건강상태 및 의료 이용 실태 후속 조사를 하고 정기적인 건강 실태조사, 건강 영향 등에 관한 시계열 분석 체계를 구축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email protected]
Copyright © NEWSIS.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