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수저' 이재명, "부당한 비 맞아도 물러설 수 없다"
선두 집중포화에도 의욕 "나 혼자만의 여정 아냐"
"내가 멈추면 보통사람의 실낱같은 희망도 멈춰"
'미필' 지라시 반격 "프레스에 팔 끼어 장애 얻어"
경쟁 주자들과 대비되는 '흙수저 대통령' 이미지
'부자 몸조심' 해왔지만 추격세에 파이터로 전환
[파주=뉴시스] 국회사진기자단 = 더불어민주당 제20대 대통령선거 예비후보자인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7일 경기 파주의 한 스튜디오에서 열린 대선 후보 정책 언팩쇼에서 발표를 하고 있다. 2021.07.07. [email protected]
이 지사는 지난 15일 페이스북을 통해 "거창한 이야기를 하고자 함은 아니다. 선거가 한창이고 저를 향한 마타도어도 난무하지만 중요하지 않다"며 "내가 신경 쓰는 것은 오직 국민께서 우리 정치를 어떻게 보실까이다"라고 운을 뗐다.
이어 "주제넘지만 저에게 주어진 소명이 있다고 생각한다. 벼랑 끝의 서민들, 내 삶을 바꿀 정치에 관심 가질 여력조차 없는 절박한 주권자들의 뿌리 깊은 설움이 저를 여기까지 오게 했다고 믿는다"며 "때로 부당한 비를 맞을 수도 있고 저의 부족함으로 매서운 비판에 직면할 때도 있다. 그럼에도 제가 물러설 수 없는 이유는 어느새 저 혼자만의 여정이 아니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특히 "내가 멈추면, 아프고 서럽고, 무시당해서 억울하고, 돈 없어서 절박한 우리 사회 보통 사람들의 실낱같은 희망마저 멈춘다"며 "겸허히 직면하고 끝끝내 승리하겠다. 저의 도전이 이재명이라는 흙수저 정치인 한 명의 도전보다 훨씬 더 큰 무언가 임을 무겁게 유념하겠다"고 강조했다.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의 유튜브 '황교익TV'에 출연해서도 가난했던 어린시절을 술회했다. 이 지사는 "감자를 잘 안 먹는다. 감자를 주식으로 했다. 매일 끼니를 때우니 감자가 얼마나 싫겠나"라며 "잘 안먹는 게 수제비다. 호박 소금물에 수제비, 잘 하면 된장에 수제비를 (띄워서) 거의 주식 비슷하게 먹었다"고도 회고했다.
이 지사의 군면제를 이낙연 전 대표와 빗대어 '미필야당'으로 지칭한 출처불명의 지라시가 돌아다니자 마찬가지로 어려웠던 시절로 응수하기도 했다.
이 지사의 흙수저 삶은 비교적 탄탄대로를 걸어온 여타 경쟁주자와 대비되는 지점이다. 유력 주자 중 유일무이한 '서민 대통령'으로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것이다. '사이다'로 대표되는 탁월한 언변과 공격력이 자칫 비호감을 줄 수 있지만 굴곡졌지만 자수성가의 인생스토리를 어필하는 것으로 이를 상쇄할 수도 있다.
이재명 캠프 남영희 대변인은 "이 후보는 복숭아를 삶아 먹을 정도로 가난한 경북 안동의 농군 아들로 태어나 성남 빈민촌에서 성장했다. 중학교 대신 공장잡부로, 흔한 용어로 시다로 구슬공장 고무공장을 전전했다"고 전했다. 또 "어느 날 프레스에 팔이 끼어 크게 다쳤지만 당시 산업재해란 개념 자체가 없었다. 장애를 얻어서 군에 가지 못했다. 정확히 말하면 당시 군에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권내 적통 논쟁에 "서글프다"면서도 자신이 '비주류'임을 숨기지 않았다. 이 지사는 16일 기자간담회에서 "나는 어차피 당원의 한 사람일 뿐이고 또 힘의 관계로 따지면 실제로는 중심에 있지는 못한 사람이었으니까"라고 했다.
자신을 흙수저로 칭한 이 지사는 실제 옛 경북 안동군 예안면 도촌리 출신의 가난한 화전민 집안에서 5남 2녀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지난 2017년 낸 에세이 '이재명의 굽은 팔'에선 길가의 쓰고 신 개복숭아를 삶아먹었던 어린시절을 회고하기도 했다.
가난 끝에 일가족이 경기도 성남으로 상경했고, 이 지사는 중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다른 사람의 이름을 빌려 공장에 취업해 2년간 소년공 생활을 했다. 공장 프레스기에 팔이 끼여 비틀어져 장애를 얻은 것도 이 때다.
대입검정고시 합격 후에도 공장 일을 하다가 화학약품에 노출돼 후각을 잃기도 했다. 이후 복숭아 냄새를 못 맡는 탓에 아내와 다툰 일도 있었다고 술회했다. 이 지사는 에세이에서 "후각이 둔해져서 좋은 점이 한가지 있다. 곁에 있는 사람에게서 혹시라도 날지 모르는 냄새를 맡지 못한다는 점"이라며 "그렇다고 권력의 악취를 못 맡는 것은 아니다. 그건 코가 아니라 사회적 후각을 필요로 하는 까닭"이라고 했다.
생계를 위한 공장 일과 공부를 병행한 그는 검정고시를 거쳐 학력고사에서 전국 순위 3000등 안에 드는 고득점을 냈고, 서울대 입학도 가능했지만 전액 장학금에 매월 생활비 30만원이라는 파격 조건을 내민 중앙대 법학과에 진학했다.
이 지사는 2015년 페이스북에 "어렸을 적 지독한 가난으로 초등학교만 졸업한 뒤 성남의 한 공장에서 일을 해야 했고, 어느 날 기계에 왼쪽 팔을 눌려 장애 판정을 받았다"는 내용의 글을 올리기도 했다. 언론 인터뷰에서도 여러 차례 자신을 '흙수저', '무수저' 등으로 표현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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