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해버려야 직성이 풀리는 김성철
넷플릭스 시리즈 '지옥' 시즌2 정진수 역
전작 배우 유아인 대체 배우로 투입 돼
"캐릭터 매력 있어 망설임 없이 선택해"
"부담 없었다면 거짓말…나만의 연기해"
"집에선 두려워했지만 현장에선 확신"
[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배우에게 '대체 배우'가 된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쉽지 않은 일이다. 같은 작품 안에서 동료 배우가 했던 역할을 그대로 이어 받아 연기한다는 것. 그건 꽤나 혼란스러운 작업일 것만 같다. 앞선 배우가 했던 것처럼 연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거니와 같은 인물을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연기할 수도 없으니 말이다. 게다가 먼저 연기한 동료가 유독 아우라 강한 배우였다면 그 부담은 배가 될지도 모른다. 그런데 배우 김성철(33)은 그걸 하고 말았다. 그리고 꽤나 멋지게 해냈다. 그는 "시간을 되돌리더라도 똑같은 결정을 하겠다"고 말했다.
넷플릭스 시리즈 '지옥' 시즌2는 지난해 초 촬영을 코앞에 두고 큰 타격을 입었다. 전작에서 주인공 '정진수'를 연기한 배우 유아인이 마약 파문으로 동행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 작품에서 정진수라는 캐릭터의 비중이 워낙 크고, 유아인의 연기가 워낙 강렬했기 때문에 업계에선 '지옥' 시즌2가 무산되는 것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왔다. 하지만 넷플릭스와 연상호 감독은 대체 배우를 구해 촬영을 강행하기로 했고, 김성철이 유아인을 대신하게 됐다.
"생각해보세요. 이건 사실 진짜 어려운 도전입니다.(웃음) 누군가는 그냥 배우가 바뀌었구나 정도로만 생각하겠지만, 정말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부담이 없다면 거짓말이죠. 계속 다짐하는 겁니다. '난 할 수 있어'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자'고요. 완성된 작품을 보고 나니까 성취감이 있어요. 그래도 '해냈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옥' 시즌2는 전작에서 지옥 사자에게 시연(試演) 당해 종적을 감춘 정진수가 8년만에 부활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지옥을 겪고 돌아온 정진수는 새 삶을 얻고 난 뒤에도 계속 이어지는 고통을 이해하기 위해 또 다른 부활자 박정자를 찾아나서고, 박정자를 만나기 위해 새진리회·화살촉·소도·정부 사이에서 줄타기를 시작한다. 이번 작품에는 정진수라는 인물이 가진 강력하면서도 묘한 카리스마와 그가 새롭게 느끼는 세상에 대한 공포가 표현돼 있다. 김성철은 "분명 쉽지 않은 연기가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선택을 할 땐 전혀 망설임이 없었다"고 말했다.
"6회 분량 대본을 한 번에 다 읽기는 쉽지 않은데, 쉬지 않고 읽었을 정도로 흡인력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정진수라는 인물은 다시 만나기 힘들 거라고 생각했어요. 이런 캐릭터와 서사를 가진 인물은 정말 찾기 힘들어요. 다시 안 올 기회이기 때문에 반드시 해야 한다고 느꼈어요." 위험 부담이 있는 연기라서 주변에서 말리진 않았냐고 묻자 김성철은 "제 성격을 아는 분들은 '그래, 너 하고 싶은 대로 해라'는 반응이었다"고 했다.
유아인의 정진수와 김성철의 정진수는 큰 틀에서 보면 유사하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분명한 차이가 느껴진다. 유아인은 상대적으로 안으로 더 파고 들어가는 듯한 연기를 하는 것처럼 보이고, 김성철은 특유의 에너지를 상대적으로 더 드러내듯 연기한다. 김성철은 시즌1에서 유아인의 연기를 감탄하면서 봤지만, 그걸 따라할 수도 없었고 따라하고 싶지도 않았다고 했다. 그는 "그저 내 걸 하고 싶었다"고 했다.
"제가 연기한 정진수의 바탕은 시즌1의 정진수가 아니라 원작 만화 속 정진수였습니다. 만화 속 정진수와 시즌1 정진수가는 조금 다릅니다. 아마도 그건 유아인 배우의 해석이겠죠. 전 만화 속 캐릭터를 가지고 제 나름의 해석을 한 겁니다. 그렇게 태어난 게 시즌2의 정진수입니다."
김성철이 촬영 전 정진수 연기를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은 약 4개월이었다. 이 기간 그는 10㎏ 가량 감량했다. 지옥에 다녀와서 피폐해진, 그래서 볼이 움푹 파인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평소 운동을 좋아하고 몸을 크게 유지하는 걸 선호하지만 준비 기간엔 식단 조절을 해가며 몸을 줄여 갔다. 김성철은 "조금 아쉬운 건 준비 시간이 조금 부족했다는 점"이라며 "시간이 조금만 더 있었으면 완전히 피골이 상접한 모습으로 연기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연상호 감독은 김성철 연기를 확신에 차 있었다고 했다. 연 감독은 어렵고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이 연기를 어떻게 그렇게 확신을 갖고 연기할 수 있었는지 놀라웠다고도 말했다. 이 얘기를 전하자 김성철은 "집에선 걱정과 두려움 속에 있었다"고 말하며 웃었다. "집에선 이렇게 연기하면 괜찮을까, 내 연기에 반대 의견이 나오면 어떡하나, 계속 걱정했습니다.(웃음) 하지만 현장에선 확신이 있는 것처럼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현장에서도 제가 혼란스러운 상태이면 감독님과 스태프는 얼마나 불안하겠어요. 제가 확신을 보여야 감독님께서도 확신할 수 있다고 봤던 겁니다. 내겐 확신이 있다고 절 세뇌한 거나 다름 없어요."
김성철은 뮤지컬로 먼저 이름을 알렸다. 무대 위에서 내뿜는 폭발적인 에너지와 빼어난 노래 실력으로 먼저 재능을 증명한 뒤에 드라마·영화로 활동 범위를 넓혔다. 시리즈 '스위트홈'(2020) '그 해 우리는'(2021), 영화 '올빼미'(2022) '댓글부대'(2024) 등을 거치며 작품 내 비중을 점점 키워가고 있다. 김성철은 "책임져야 할 것들이 커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현재 가장 큰 도전"이라고 말했다. "짧게 나와서 강한 인상을 남기는 것 말고 오래 나오면서 천천히 스며드는 역할을 해낼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최선을 다해봐야죠."
앞으로도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다양한 플랫폼에서 관객·시청자를 만나고 싶다고 했다. "공연은 제가 표현하고 싶은 걸 즉각적으로 제 목소리와 제스처로 전달할 수 있고, 영화·드라마에선 눈으로 담아내는 게 있죠. 다 매력이 있습니다. 제 체력이 되는 데까지 다작 하는 게 목표입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Copyright © NEWSIS.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