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공무원의 한숨…누가 식물정부를 만들었나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2주…관가 여전히 뒤숭숭
분노·씁쓸함·무력감 숨기고 맡은 일 하는 공무원들
"입법부에 총 들고 간 행정부가 무슨 권한이" 일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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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뉴시스]성소의 기자 = "언론에서 정국을 좀 바로 잡아주세요. 행정부는 권한이 없네요. 입법부에 '총' 들고 갔던 행정부라서."
평소 가까운 부처 공무원에게 취재차 전화를 걸어 지난 3일 비상계엄 사태 이후 관가 분위기를 물어보자 이렇게 말했다. 민생현장의 최일선에서 일하는 공무원들이 대통령의 계엄 선포와 그로 인한 일련의 사태들을 지켜보면서 어떤 감정을 느꼈을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3일 간밤 긴급담화문을 통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2시간 여 만에 국회가 계엄 해제 요구안을 가결시키면서 사태는 빠르게 일단락됐지만, 그 2시간이 남긴 여파는 작지 않다. 과거 계엄령을 경험한 세대들의 깊은 트라우마를 건드렸고 삶을 살아내기 바쁜 청년 세대들을 거리로 나오게 했다. 이는 '헌정사상 세번째 대통령 탄핵소추안 국회 의결'이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반면 대통령의 손과 발인 행정부 소속 공무원들은 속으로 분노를 삭인다. 관가의 다른 한 관계자는 "저도 느끼는 게 있지만, 기자님께 지금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냐"며 "나중에 시간이 많이 흐르고 술자리에서 솔직하게 말씀드리겠다"고 말했다.
관가 공무원이라면 국회의 반대에 가로막혀 소관 법안 통과가 좌절되거나 담당 사업 예산이 깎이는 경험을 한번쯤은 하게 된다고들 한다. 하지만 이들조차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한 것과 이후 대국민 담화문에서 이를 '고도의 통치행위', '사법 심사 대상이 아니다'라고 표현한 것에는 회의적인 반응이다.
헌법기관인 국회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무장한 군인들을 보낸 행정부는 이유를 불문하고 정당성을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을 공무원들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누구 하나 공감하지 못하는 계엄의 여파로 관가는 그야말로 초토화됐다. 국정 동력은 최악으로 떨어졌고 대통령이 추진하겠다고 한 4대 개혁들은 이미 '죽은' 정책처럼 취급되고 있다. 국회와 경색된 관계, 대통령 직무정지로 빚어지는 업무 차질 등도 앞으로 일선 공무원들이 풀어내야 하는 과제가 됐다.
장관들은 혼란한 국정을 수습하기 위해 수차례 간부회의를 열고 민생을 잘 챙기라고 당부하고 있다.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지난 14일 국회를 통과하고 한덕수 국무총리의 권한대행 체제로 전환된 직후 대다수 부처들이 긴급 간부회의를 열었다. 일각의 '식물정부' 우려를 지우기 위해 "하던 일을 차질 없이 하겠다"는 메시지도 연일 내고 있다.
행정부 공무원들도 분노, 무력감 등 각자 감정을 숨긴 채 담당 사업과 정책을 재점검하는 등 각자 맡은 업무를 살피기 바쁘다. 다른 관가 관계자는 "이럴 때일수록 '사고가 나면 안 된다'고 서로 얘기한다"며 평소보다 더욱 조심한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계엄 이후 공직사회는 여전히 뒤숭숭하다. 벌써부터 내년 조기 대선이 치러지고 감사를 걱정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한 부처 관계자는 "맡은 일이야 지금 그대로 하면 되지만, 정권이 바뀌면 감사를 받게 될까 하는 걱정이 든다"고 말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지 않냐, 할 일을 할 뿐"이라며 씁쓸함을 드러내는 공무원들도 적지 않다.
윤 대통령은 지난 12일 대국민 담화문에서 "지금 대한민국에서 국정 마비와 국헌 문란을 벌이고 있는 세력이 누구냐"며 야당을 그 주범으로 지목했다.
그러나 이쯤에서 되묻고 싶다. 누가 국정을 마비시켰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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