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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금 명인' 강은일 "이 세상 모든 딸은 소중하다"

등록 2020.02.12 18:07:44수정 2020.02.12 18: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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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미래: 내 엄마의 엄마의 엄마의 이야기'

22~23일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서 공연

[서울=뉴시스] 강은일. (사진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2020.02.12 realpaper7@newsis.com

[서울=뉴시스] 강은일. (사진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2020.02.12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민화(民畵)를 살펴 봐도 해금 연주자는 꼭 다른 곳을 보고 있어요. 지금 현장이 아닌 다른 곳을 보면서 꿈꾸는 악기가 해금이죠."

'국악계의 이단아'로 불리는 '해금 명인' 강은일(53)이 여전히 새로운 방향을 바라보며, 해금뿐 아니라 국악의 지평을 넓혀가고 있다. 이번에는 세상의 엄마들이 겪어낸 무지막지한 삶에 대한 긍정과 엄마가 될 수 있는 잠재력을 연주한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19 창작산실 올해의신작'의 전통예술 부문 선정작인 '강은일 해금플러스'의 '오래된 미래 : 내 엄마의 엄마의 엄마의 이야기'가 그것을 담는 판이다. 오는 22~23일 오후 5시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선보인다.

강은일을 필두로 재즈 피아니스트 김윤곤, 타악연주가 박광현, 피리·태평소·생황 연주가 최소리 등이 나서 국악과 양악의 소리를 뒤섞는다.

 이번 공연의 주제는 질곡의 근현대사를 살아온 대한민국의 '어머니', 그리고 '여성의 삶'이다. 강은일은 여성으로 태어나 50년을 살아오며 겪었던 자전적인 이야기를 토대로 지난 100년간의 할머니, 어머니, 나, 그리고 내 딸로 이어져 온 여성 서사를 톺아본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추억하고 그리워하는 장면을 해금 선율로 그린 '제망모가', 할머니·어머니·나 그리고 딸에 이르기까지 여성들의 이야기가 담긴 '4대', 고통스러웠던 한국전쟁 속 여성들의 기억을 담아낸 '떠오른 기억', 날개를 마음속에 접고 생을 살아온 대한민국의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존경심을 표현한 '날개'가 연주된다.

12일 대학로 예술가의 집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강은일은 "여성들에게 우리의 존재가 얼마나 아름답고 훌륭한지 말하고 싶다"고 말했다.
 
1남1녀를 둔 강은일은 최근 딸의 고민이 마음 깊숙히 박혀왔다고 했다. 외모, 지성적인 측면에서 스스로 부족하게 여기는 딸에게 '존재 자체로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에 대해 음악으로 이야기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서울=뉴시스] 강은일, 한진구 모자. (사진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2020.02.12 realpaper7@newsis.com

[서울=뉴시스] 강은일, 한진구 모자. (사진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2020.02.12 [email protected]

딸을 향한 화살표는 전방위로 확산됐다. "제 딸뿐만 아니라 친구 딸 그리고 이 세상의 모든 딸도 소중하다는 생각으로 만들게 된 공연이에요. 이 세상의 딸들에게 본인이 얼마나 아름답고 가치가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결국 여성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딸 부잣집 셋째딸로 태어난 강은일이 세상의 빛을 본 당시만 해도 아들을 선호했다. 세상의 풍토가 현재에 비해 여성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이런 흐름에서 강은일은 자신감이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키도 작고, 외모도 특별하지 않고, 지성도 넘쳐흐르지 않고, 실력더 채워나가야 할 부분이 많았다"고 했다.

하지만 "자식 둘을 잘 키우면서 같이 성장한 느낌을 받았다"며 "저의 이야기는 누추해서 이 땅의 모든 여성들, 수많은 엄마들에 대한 이야기를 시공간을 넘어 공감하고 싶었다"고 바랐다

이번 공연 작곡 라인업은 화려한 다국적 작곡가로 채워졌다. 국립국악관현악단 상주 작곡가를 역임한 김성국, 국악을 사랑하는 미국 출신의 작곡가 도널드 워맥, 콜롬비아국립대학교 음악대학 교수 겸 작곡가 모세 베르트랑, 영화음악·뮤지컬 작곡가 우디 박(Woody Pak) 등이다.

강은일의 아들인 젊은 국악 작곡가 한진구가 작품의 주제곡과 같은 '제망모가'를 지었다.

여성의 이야기인데 남성 작곡가들만 참여한 점이 특기할 만하다. 강은일은 "처음에는 여성 작곡가의 참여도 생각을 했는데 여성의 이야기니 남자들과 해보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런 의도와 별개로 작곡가들 삶의 배경도 작품의 여러 내용과 맞물렸다. 섬인 제주와 하와이로부터 영감을 받아 '떠오르는 섬'을 작곡한 워맥은 하와이대학 교수. 제주와 하와이는 모두 여성 신으로부터 만들어졌는 전설이 있다. 강은일은 "제주민요와 하와이 민요를 섞어서 '창조한 자' '잉태한 자'로서의 여성의 넓은 마음과 무한한 경계를 담고자 했다"고 소개했다.

스페인 내전의 아픔을 겪은 카탈루냐 출신 베르트랑의 작곡한 '떠오른 기억들'은 전쟁에서 발휘되는 여성의 내재된 힘에 대한 내용을 녹여냈다. 한국의 강강술래와 스페인의 전통춤 카타란 사르다나를 접목시키기도 했다. 카타란 사르다나는 강강술래처럼 서로 손을 잡고 동그랗게 추는 춤이다.
 
미국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이민 2세대' 우디 박이 작곡한 '4대'에는 4세대에 걸친 여성, 할머니, 어머니, 나, 그리고 딸에 대한 이야기가 자연스레 녹아 있다.

모두 강은일과 적극 교감하며 만들어진 곡들이다. 20년 전 강은일을 처음 알았고 2012년 한국의 사계절에 경의를 표해 쓴 '사계'를 통해 강은일과 본격적으로 작업한 우디 박은 그녀에 대해 "강하고 에너지 넘치는 모습을 많이 봤다"고 귀띔했다.

두 줄로 돼 있는 해금은 연약해 보이는데 강은일 연주에서는 다른 결을 발견한다는 피아니스트 김윤곤은 "선생임이 해금의 줄을 그을 때마다 붓글씨를 쓰는 느낌이 든다. 여백의 미가 느껴진다"고 했다. 한진구는 모친인 강은일에 대해 "철의 여인"이라고 증언했다.

[서울=뉴시스] 창작산실 '오래된미래'. (사진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2020.02.12 realpaper7@newsis.com

[서울=뉴시스] 창작산실 '오래된미래'. (사진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2020.02.12 [email protected]


1986년 국립국악고등학교를 나와 1990년 한양대 국악과를 졸업한 강은일은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뮤지션들과 협업하며 해금의 스펙트럼을 넓혀왔다. 2000년대 초반 독일 재즈 그룹 '살타첼로'와 협업한 후 바비 맥퍼린, 요시다 형제, NHK 체임버오케스트라, 루치아노 파바로티, 유키 구라모토 등과도 작업했다.

강은일은 "해금의 힘은 엄청나다"며 이렇게 말했다. "해금의 장점은 소통력이 좋다는 거예요. 작은 이야기라도 아기자기하게 재미있게 할 수 있고, 슬픈 이야기는 슬프게 풀면서 힘을 주죠. 누구와 만나도 대화를 할 수 있어요."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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