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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춘향' 의상 디자이너 이진희 "젊은 에너지 담고 싶었죠"

등록 2020.05.14 13:2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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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창극단 신작 창극 14~24일 달오름극장

'성균관스캔들'·구르미 그린 달빛' 담당 스타 디자이너

[서울=뉴시스] 고범준 기자 = 창극 '춘향' & 드라마 '더 킹 : 영원의 군주'의 이진희 의상 디자이너가 12일 오후 서울 중구 국립극장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마치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0.05.14. bjko@newsis.com

[서울=뉴시스] 고범준 기자 = 창극 '춘향' & 드라마 '더 킹 : 영원의 군주'의 이진희 의상 디자이너가 12일 오후 서울 중구 국립극장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마치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0.05.14.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12일 오후 장충동 국립극장은 새옷을 갈아입는데 한창이었다. 해오름극장과 주차장이 리모델링 중이었고, 봄기운은 만연해지고 있었으며, 14일 개막하는 전속 단체 국립창극단의 신작 창극 '춘향'이 막바지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 가운데 '춘향' 마무리 작업 등으로 전날 2시간밖에 수면을 취하지 못했지만 형형한 눈빛을 간직한 이가 있었다.

이진희 의상·장신구디자이너.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과 '구르미 그린 달빛'의 의상을 맡아 사극에 푸르른 기운을 불어넣었다는 평가를 받는 의상계 새로운 장인이다. 현대적인 '춘향'으로 재탄생하는 이번 창극 작업에 이 디자이너가 최적이라고 생각한 국립창극단이 러브콜을 보낸 이유다.

이 디자이너는 "젊은 에너지와 깊이를 꾸미지 않고 담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임했다"고 말했다. 독일 오페라 거장 아힘 프라이어가 연출한 '수궁가'의 동양 회화적 해석, '패왕별희'에 참여한 홍콩의 디자이너 예진텐의 과감한 해석을 눈여겨 본 이 디자이너는 이번 '춘향'에서 "평소 잘 안 쓰는 색깔로 과감한 시도를 해보고 싶었다"고 했다.

"국립창극단의 과감한 소통과 철학을 존중해요. 사실 전통에서 파스텔은 잘 안 쓰는 색깔이죠. 그런데 '봄의 설렘'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단오'의 축제처럼 풀어내고 싶었습니다."

[서울=뉴시스] 고범준 기자 = 창극 '춘향' & 드라마 '더 킹 : 영원의 군주'의 이진희 의상 디자이너가 12일 오후 서울 중구 국립극장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마치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0.05.14. bjko@newsis.com

[서울=뉴시스] 고범준 기자 = 창극 '춘향' & 드라마 '더 킹 : 영원의 군주'의 이진희 의상 디자이너가 12일 오후 서울 중구 국립극장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마치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0.05.14. [email protected]

이번 '춘향'에서는 그간 편견처럼 박혀온 지고지순한 춘향은 없다. 몽룡이 가져온 혼인증서를 찢어 버리는 주체적인 춘향이는 20, 30대도 충분히 공감할 만하다.

그런데 살아가는 것이 팍팍해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한 지금의 '삼포세대'에게 사랑 이야기가 어떻게 받아들여질까라는 고민이 이 디자이너에게는 있었다. 김명곤 연출은 그런 그녀에게 "젊은 세대에게 사랑이 값지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의상은 연출 의도를 시각적으로 증명해야 하는 작업. 이 디자이너는 새롭게 제작되는 80여 벌의 의상의 전통 한복의 형태감은 유지하되, 선명한 원색 계열보다 연노랑과 연분홍 에메랄드 등 파스텔 색감을 써 봄향기(春香)를 물씬 풍기게 만들었다.

13일 프레스콜에서 '춘향'의 일부 장면이 공개됐는데, 보고만 있어도 세상의 무대엔 우중충한 잿빛보다 마음을 몽글몽글하게 만드는 색감이 더 많다는 걸 깨닫게 한다.

[서울=뉴시스] 이진희 디자이너. 2020.05.14. (사진= 하무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이진희 디자이너. 2020.05.14. (사진= 하무 제공) [email protected]

청춘들의 사랑과 성장 이야기였던 '성균관 스캔들'과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 각각 송중기와 박보검이 입었던 의상이 시청자를 얼마나 설레게 했는지를 떠올리면 수긍이 된다. 김 연출도 두 드라마를 보고 이 디자이너를 염두에 뒀던 것으로 알려졌다.

'성균관 스캔들'과 '구르미 그린 달빛' 등 인기 사극 드라마와 모던함이 인상적 영화 '화장', 고구려 시대 의상을 완벽하게 재현한 영화 '안시성' 등 영상 매체를 통해 이 디자이너의 이름이 더 알려지긴 했지만 사실 그녀의 진가를 확인하려면 무대를 접해야 한다.

이 디자이너는 한예종 연극원 출신들이 2001년 결성한 공연창작집단 뛰다의 원년 멤버다. 창작집단 노니 등과 작업하면서 무대 위에서 의상만으로도 시공간을 전달하는 공력을 익혔다. 특히 노니 같이 전통연희를 하는 팀의 작업에서는 옷 자체가 오브제가 된다. 

창극 작업은 이번이 처음인데 이 디자이너는 일찌감치 "우리나라에서 내로라하는 예인들이 모인 집단"이라는 마음을 품고 존중해왔다. "20, 30대와 소통하는 시도가 좋았어요. 전통 연희를 무대적으로 수용하면서 과감하게 걸어온 행보가 대단하다고 느꼈죠. 훌륭한 소리로 감정을 전달하는 배우들에게 존경심을 품어왔고요."

[서울=뉴시스] 국립창극단 '춘향'. 2020.05.14. (사진= 국립극장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국립창극단 '춘향'. 2020.05.14. (사진= 국립극장 제공) [email protected]

부산 출신인 이 디자이너는 사실 서양화가가 꿈이었다. 성격이 활달하고 운동을 좋아하던 그녀는 빈센트 반 고흐 관련 책을 읽고 스스로 고립된 삶을 꿈꾸며 "예술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 수업 커리큘럼이 마음에 들어 한예종 무대미술과에 진학을 했다.

학교에서 아힘 프라이어, 로버트 윌슨 등을 알게 됐고 무대미술을 너머 공간 연출을 접하게 됐다. 하지만 순수미술을 공부한 이 디자이너에게는 다소 낯설었다. 그러다 인형 연극학 수업에서 인형에 빠져들게 됐고, 프랑스 국립 인형제작 학교로부터 합격 통지서까지 받았다. 하지만 입학 직전에 교통사고가 크게 나 유학은 물거품이 됐다. 

그러나 운명은 이 디자이너를 가만두지 않았다. 휴학 도중 여행을 간 체코에서 우연히 방문한 전쟁박물관이 그녀의 마음을 움직였다. 피가 묻은 옷과 소품에서 치열한 시대를 읽은 것이다. "옷이 엄청 무서운 것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시공간이 한번에 다 표현이 되잖아요. 이후 학교에 복학을 하고 나서는 옷에만 파고들었죠."

한예종 무대미술과 교수를 지낸 윤정섭 선생의 말은 여전히 그녀의 귓가에 남아 있다. "매번 멀쩡히 만들어야 할 의상들을 무대가 어둡다고 장난쳐서 만들지 마라"는 이야기였다. 그녀의 모든 옷의 밀도가 촘촘한 이유다. 

[서울=뉴시스] 고범준 기자 = 창극 '춘향' & 드라마 '더 킹 : 영원의 군주'의 이진희 의상 디자이너가 12일 오후 서울 중구 국립극장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마치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0.05.14. bjko@newsis.com

[서울=뉴시스] 고범준 기자 = 창극 '춘향' & 드라마 '더 킹 : 영원의 군주'의 이진희 의상 디자이너가 12일 오후 서울 중구 국립극장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마치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0.05.14. [email protected]

"모든 의상은 등장인물이 겪었던 일들의 시간성과 공간성을 반영해야 한다고 생각해야 해요. 그래서 저는 '공간 연출'을 한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어요. 동시에 '옷에 그림을 그린다'는 생각도 하고 있고요."

이 디자이너의 의상을 통한 공간 연출과 시간성 반영은 배우 이민호·김고은이 주연한 김은숙 작가의 신작 드라마 '더킹: 영원의 군주'에도 반영이 돼 있다. 대한민국과 대한제국의 평행 세계를 그린 이 드라마에서 시간성과 공간성은 특히 중요하다.

입헌군주제인 대한제국 의상에 더 복고스러움을 투영하자는 이 디자이너의 의견은 제작 환경상 덜 반영이 됐다. 대신 전통과 모던함의 조화를 중요하게 여기는 이 디자이너의 마음은 '춘향'에서 더욱 만개한다. 이 디자이너의 패션 브랜드 '하무(河舞)'도 '물의 춤'을 뜻하는 브랜드명처럼 우리 옷에서 영감을 받은 것을 물 흐르듯, 모던하게 풀어내고 있다. 

그래서 이번 국립창극단의 '춘향'의 의상에서도 동시대성을 발견한다. 코로나19로 삭막해진 늦봄의 공연계에 찾아온 춘향, 즉 봄향기는 파스텔톤을 타고 더 여운을 남긴다. 이 디자이너는 "코로나19로 인해 봄이 왔음에도 많은 분들의 마음은 아직도 한겨울에 머물러 있는데, 이 작품을 통해 잠시나마 봄의 강인한 생명력과 아름다움을 한껏 느끼셨으면 한다"고 바랐다.

한편, '춘향'은 24일까지 달오름극장에서 공연한다. 작창을 맡은 유수정 국립창극단 예술감독을 비롯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국립극장 극장장을 지낸 김명곤 연출, 김성국 작곡가, 정승호 무대디자이너, 조수현 영상디자이너, 구윤영 조명디자이너까지 창작진 라인업이 화려하다. 춘향은 국립창극단 간판 이소연, 신예 소리꾼 김우정이 나눠 연기한다. 이번 공연은 '생활 속 거리두기'의 하나로 '객석 띄어 앉기'를 시행한다. 발열 체크, 마스크 착용 등은 필수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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