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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례, 고조부모까지 4대봉사가 절대적 규범인가

등록 2023.02.04 10:0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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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자가례' 신봉 유학자들, 4대봉사 보급

경북 종가, 생전에 뵌 3대·2대봉사 증가

"조상제사 대상 '대면조상' 한정 합리적"

경국대전 (사진=한국국학진흥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경국대전 (사진=한국국학진흥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안동=뉴시스] 김진호 기자 = 조상제사는 부모, 조부모, 증조부모, 고조부모까지 지낸다.

이것을 4대봉사라고 한다. 하지만 4대봉사가 절대적 규범은 아니라는 견해가 제시되고 있다.

4일 한국국학진흥원에 따르면 조선시대에는 누가, 누구의 제사를 지내는지를 법으로 규정해 뒀다.

1484년 성종 때 편찬된 조선시대 법전 '경국대전'에는 '6품 이상의 관료는 부모, 조부모, 증조부모 3대까지를 제사 지내고, 7품 이하는 2대까지, 벼슬이 없는 서민은 부모 제사만을 지낸다'라고 명시돼 있다.

신분제 사회였던 조선시대는 관직의 품계를 중심으로 상하 구분을 했다.

6품 이상(현재 공무원 5급 이상)은 증조부모까지의 제사를, 7품 이하(현재 공무원 6급 이하)는 조부모까지의 제사를, 관직에 오르지 않은 일반 백성들은 부모의 제사만을 지내도록 법률로 제정해둔 것이다.

이처럼 조선시대에는 고조부모까지의 제사를 지내는 이른바 4대봉사원칙이 제도적으로 명시된 적은 없었다.

그렇다면 4대봉사는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김미영 한국국학진흥원 수석연구위원은 "경국대전을 비롯해 1474년에 편찬된 '국조오례의' 등에도 신분별로 조상제사의 대상에 차등을 두고 있었지만 주자가례를 신봉하는 유학자들에 의해 4대봉사가 보급되기 시작했다"라고 말한다.

원래 유교에서는 신분에 따라 조상제사의 대상을 각각 달리했는데 주자가례에서 신분과 지위에 상관없이 4대봉사를 주장하면서 정착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조선시대에는 15세 전후의 어린 나이에 결혼하는 조혼(早婚) 습속에 의해 고조부모까지 4대가 함께 사는 경우가 흔했다.

이에 고조부모의 제사를 모시는 4대봉사가 당연시 됐지만 조혼 습속이 사라진 오늘날에는 고조부모나 증조부모를 대면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고, 기억도 없는 상황에서 4대봉사를 이어간다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는 의견이 많다.

김 수석연구위원은 "유교적 성향이 강한 경북지역 종가에서도 증조부모까지의 3대봉사, 조부모까지의 2대봉사로 변화하는 사례가 점차 증가하고 있다. 이 때 생전에 뵌 적이 있는 '대면조상'인지 아닌지를 기준으로 삼고 있다. 그 이유는 조상에 대한 기억이 많을수록 제사에 임하는 정감이 다르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이어 "조상제사는 개개인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일종의 추모의례이다. 따라서 조상과 생전에 주고받은 정서적 추억이 풍부할수록 추모의 심정은 더욱 간절해진다. 이런 점에서 조상제사의 대상을 '대면조상'으로 한정시키는 것은 매우 합리적 방안이라고 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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