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누워 버린 배우가 전하는 페이소스…연극 'X의 비극'
국립극단 서계동 판…4월4일까지
[서울=뉴시스] 연극 'X의 비극'. 2021.03.19. (사진 = 국립극단 제공) [email protected]
그는 1990년대 젊은 세대를 대변하는 X세대다. 민주화된 시기를 거쳐, 자본주의와 산업화의 혜택을 받아 풍요 속에 성장했다.
하지만 마음이 병들었다. 기존 가치와 세대에 반발했고 개인주의 특징을 보였다. 하지만 영원할 거 같던 그들도 삶에서 탈진하게 됐다.
'번아웃 증후군'(burnout syndrome)에 빠진 것이다. 'X의 비극'에서 현서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선언을 하고 그대로 누워 버린다.
이 무모하리 만큼 대책 없음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아내 도희, 아들 명수, 어머니 영자, 친구 우섭이 돌아가면서 설득하고 화를 내도 현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게 6개월의 시간이 흐른다.
누군가는 현서의 행위가 과장이 아니냐고, 의문을 표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연극은 어떤 행위를 몰아붙여 보는 이를 자각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조금만 더 버티면, 아파트 대출을 다 갚을 수 있는 상황에서 현서가 드러누울 수밖에 없는 절박함은 얄팍해 보이지 않는다. 특히 잘 살기 위해 노력하는 것들이 스스로를 피해자 또는 가해자로 만들기도 하는 현실에 환멸을 느끼고 있다는 고백에서 그 고민의 무게감이 느껴진다.
생에서 탈진에 가까운 절박함을 겪어본 자가 현서의 외로움을 알 수 있다. 탈진해서 고독하다는 것은 바닥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는 일이다.
현서의 행위에 대해 제일 궁금하고 호기심을 갖는 대학생이자, 치열하게 살면서 죽음을 늘 생각하는 '애리'의 존재는 연극의 내용이 X세대만이 아닌 전 세대의 고민으로 만들어버린다.
[서울=뉴시스] 연극 'X의 비극'. 2021.03.19. (사진 = 국립극단 제공) [email protected]
실제 X세대인 이유진 작가가 쓴 극본은 좀 더 서사성이 도드라졌다. 현서와 그를 둘러싼 이들의 드라마가 유기적으로 얽혀 있었다. 윤혜진 연출이 가세한 뒤 움직임과 형식이 구조화되면서, 좀 더 포스트모던해졌다.
도희가 빨래하는 움직임, 명수가 공부하는 동작 등을 반복하는 등 해당 캐릭터가 일상에서 하는 일들이 극 처음부터 끝까지 반복되면서 우리 사회구조의 문제점 등이 도드라진다.
이런 연출은 보는 시각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연출 앞에선 유독 관객들이 서성이게 된다.
드라마 자체로 생각할 거리를 충분히 던질 수 있지만, 국립극단의 잘 훈련된 시즌제 배우들의 움직임은 또 다른 생각 거리를 던진다. 텍스트를 소외시키지 않고 외려 확산하는 난해한 이상함이다. 사유의 감각을 다시 환기시켜준다.
배우들도 호연한다. 특히 국립극단의 대표작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에서 사냥개 역 '신오'를 연기하고, 고선웅 예술감독이 이끄는 극공작소 마방진 1기 단원인 김명기는 몸을 잘 쓰는 배우인데, 현서 역을 맡아 누워 있는 것만으로도 페이소스를 드러낸다.
김명기를 비롯 문예주, 이상홍, 이유진, 송석근, 김예림 등 이번 작품에는 국립극단 시즌단원들만 출연한다. 오는 4월4일까지 서계동 소극장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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