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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인터뷰]"이헌재 전 부총리, 대우 망하길 원했다"

등록 2012.03.25 11:50:03수정 2016.12.28 00:2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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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김기태 기자 = 24일 오후 서울 중구 충무로 뉴시스 본사 회의실에서 대우그룹 해체당시 구조조정을 담당했던 김우일 대우 M&A 대표가 대우그룹 해체 원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presskt@newsis.com

김우일 前대우그룹 구조본부장 대행, 몰락 비화 밝혀 "한국반도체 인수 실패 후 서로 틀어져 악연 시작" "김우중 회장 대선 출마도 김영삼에 막혀 포기해" 대우건설·대우조선해양 인수해 대우그룹 재건할 것

【서울=뉴시스】김훈기 최현 기자 = 과거 대우그룹 구조조정본부장 대행을 지낸 '대우맨'이 대우그룹 몰락의 주요 원인을 두고 "이헌재 전 부총리가 그룹이 망하길 원했기 때문"이라고 언급해 파문이 예상된다.

 김우일 전 대우그룹 구조조정본부장(현 대우M&A 대표)은 24일 뉴시스와 단독 인터뷰를 통해 "대우그룹 해체를 주도했던 이 전 부총리(당시 금감위원장)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과 매우 불편한 관계"였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최근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가 한 일간지에 회고록을 연재하며 대우그룹의 몰락이 "구조조정에 소극적이라 시장의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라고 언급한 것에 대한 반박이다. 김 대표는 1983년 대우그룹 기획조정실 대리 시절 상무였던 이 전 부총리와 한 팀에서 일했다.

 김 대표는 "이 전 부총리가 1983년 대우통신 상무로 있었을 때 팀을 이뤄 정부소유인 구미 한국반도체공장을 인수하는 미션을 맡았었다"며 "입찰 끝에 300억원에 낙찰 받았지만 실사를 해 보니 인수가치가 전혀 없었다. 결국 정부에 계약취소를 통보했다"고 말했다.

 문제는 계약금 30억원이었다. 김 대표는 "계약금 30억원을 받기 어려워지자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이 전 부총리에게 '너는 2년 동안 계약금 30억원 회수에만 힘쓰라'고 했더니 (이 전 총리가) 열 받은 것 같았다. 1년간 노력했지만 돌려받지 못했고 2년가량 지나 스스로 사표를 냈다. 악연의 시작이었다"고 말했다.

 이 전 부총리의 장인이 당시 진의종 국무총리여서 계약금 회수 미션을 김 전 회장이 부여했지만 결국 실패했고, 김 회장은 이를 두고 매우 화를 냈다고 한다. 그때부터 이 전 부총리는 대우통신 상무 직급에서 배제됐고 결국 불편한 감정을 지닌 채 스스로 물러났다는 것이다.

 이 후 이 전 부총리는 대우에 악감정을 갖게 됐고 대우그룹 구조조정 당시 금융감독위원회 위원장으로서 대우의 결정적 몰락에 한 몫 한 '그룹 및 업종 특성을 무시한 부채비율 200% 한도'를 주도했다는 것이다.

 그는 "1990년대 후반 구조조정 당시 금융감독위원회가 요구했던 '부채비율 200%' 한도를 도저히 맞출 수 없어서 기준을 완화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이 전 부총리는 물론) 정부도 수수방관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이 전 부총리가 그룹을 나가 한국신용평가 사장으로 갔을 때 대우그룹을 나쁘게 평가할 수 있겠다고 걱정을 했다"며 "실제로 당시 다른 그룹보다 조금 불리하게 레이팅이 됐다. 그전까지는 안 그랬는데 이 전 부총리가 가고 나서 계속 불리하게 평가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 전 부총리가 신용평가회사를 그만두면서 한숨 놨더니 갑자기 DJ(김대중) 정부 때 금융감독원 원장이 되는 것을 보고 불안했다. 김 전 회장과 사이가 나빠진 그가 그룹의 운명에 좋지 않은 역할을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고 언급했다. 그의 말대로라면 이후 이 전 총리는 대우그룹 출신으로서 그룹을 해체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그야말로 악연이었던 셈이다.

 김 대표는 "당시 대우는 대우전자, 대우통신, 경남기업, 대우정밀, 대우부품 등 모든 계열사와 부동산, 주식 등 팔 수 있는 것은 다 내놨지만 국내 대기업은 알짜만 빼가고, 외국펀드는 제시한 가격의 40%로 후려치는 등 상황이 무척 나빴다"고 말했다.

 또 "우량기업인 통신교환기사업, DCN(현 OCN), 대우카드(현 현대카드), 힐튼호텔도 팔았지만 업종 특성상 레버리지가 평균 800%인 중공업, 조선, 자동차 등의 부채비율은 도저히 200%에 맞출 수 없었다"고 강조했다.

 특히 "조선의 경우 통상적으로 배를 수주하고 넘기기 전까지는 마이너스 구조인데, 이를 부채비율 200%로 맞추라는 것은 조선소를 팔라는 소리와 다름없는 얘기였다"고 지적했다.

 김 대표는 "김 회장은 구조조정 전에 지분 전부를 대우재단에 기부했다. 지분이 아니라 창업자 프리미엄으로 그룹을 지배한 것"이라며 "채권자들은 외국 자본이 많았지만 주주 대부분이 일반인인 국민기업이었다"고 말했다.

 또 "대우는 이 같은 상황을 거론하며 금감원에 매달렸지만 '맞추지 못하면 퇴출'이라는 냉담한 대답만 들었다"며 "1차적인 책임은 대우에 있었지만 중환자에 아무 처방도 않고 수수방관하며 국가적으로 큰 피해가 오게 하는 일을 (이 전 부총리가) 경제수장으로서 할 짓이냐"고 반문했다.

 김 대표는 "이 전 총리가 마치 대우가 망하기를 바라는 심정인 것 같았다"며 "대우를 부도내지 않게 하기 위해 물심양면으로 힘썼다는 (그의)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김 전 회장이 정치권에 하도 당해서 1992년에 대통령 출마까지 하려 했다. 당시 700만표가 당선권이었는데 계산해 보니 1000만표 가량 나왔다. 위기를 느낀 김영삼 후보가 김 전 회장을 위협했다"며 "당시 노태우 정권이 대우실업 세무조사를 벌여 세금 700억원을 맞았다. 김 회장은 결국 대통령 출마를 포기했다. 그때 나갔으면 당선되어 대우그룹도 살았을 것이다"고 주장했다.

 한편 김 대표는 대우그룹 재건을 위해 현재 산업은행 소유인 대우건설과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할 계획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그는 "이들 기업을 인수하기 위해 국내 30~60위 그룹 두 곳과 이름만 말하면 다 알 정도의 일본 대기업과 협의가 진행 중"이라며 "대우건설을 인수하면, 대우건설을 전략적투자자(SI)로 삼아 더 큰 기업인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해 대우그룹을 재건할 계획이다"고 설명했다.

 반면 이헌재 전 부총리는 한 일간지에 기고한 회고록에서 대우그룹 파산에 대해 "시장원칙을 외면하고 뒤늦게 구조조정을 시작하는 바람에 최대한 연착륙시키려 노력했지만 그것마저 너무 어렵고 복잡했다"며 "금융권을 설득하고 '긴급피난'적 조치를 취했지만 그때 이미 대우는 파국을 맞고 있었던 것 같다. 'DJ 정부가 대우를 죽였다'고 주장하는데 다 허튼소리일 뿐이다. '시장의 신뢰를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고 밝혔다.

 다음은 김 대표와의 일문일답.

 -악연의 시작이라는 한국반도체공장 인수 건은 어떻게 된 것인가.

 "김 회장이 선견지명이 있었다. 1987년에 반도체 사업은 상상도 못하는 시절이다. 그때 럭키(현 LG)도 인수전에 참여했고, 김 회장은 이 전 부총리에 '네가 팀장으로서 해봐라'고 했고 팀은 10명 정도였다. 입찰은 정보전인데 럭키가 반도체 공장을 인수할 가치가 없는 것으로 상황파악을 했다. 실제로 한국반도체공장의 재무구조는 안 좋았다. 하지만 300억원에 오퍼를 넣었다. 81~2년도에 300억이면 지금은 1조 간다고 봐야 된다. 당시 위세가 하늘을 찔렀던 대우의 월급이 10만원 이었으니까 정말 큰돈인 셈이다. 럭키는 인수라기보다는 방해목적으로 5억원을 냈다. 낙찰 받아서 공장실사를 갔는데 엉망이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회장에게 보고하니 계약취소 통보하라고 했다. 하지만 계약금 30억원을 돌려받지 못했다. 그때 김 회장이 엄청 화를 냈다. 그때부터 이 전 부총리는 대우통신 상무 직급에서 배제됐다. 김 회장은 이 전 부총리에 '2년 정도를 30억 계약금 받는 것만 일에만 몰두하라'고 했고 그때 이 전 부총리가 열 받았다. 악연이 시작 된 거다"

 -계약금 30억원은 소송으로 돌려받을 순 없었나.

 "모든 사람들은 겉만 보고(이 전 부총리가 금융감독원 원장이 된 것) 대우가 잘나갈 것으로 봤는데 30억원 사건은 김 회장을 포함해서 몇 명밖에 몰랐다. 30억은 그룹이 해체될 때까지 15년가량 장부에 잡혀있었다. 소송을 걸었으면 계약무효가 될 수도 있었다. 소송보다는 이게(이 전 부총리와 당시 국무총리와의 관계 이용) 빠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 군사정권시대여서 정부의 눈총 받게 되면 오히려 위험했다."

 -김우중 회장은 어떤 사람인가.

 "1983년 대우카드(현 현대카드)를 2억원에 시티뱅크한테 샀다. 대우가 무너지면서 2000억에 팔았다. 이것 하나만 봐도 김 회장이 M&A에 귀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故이병철 회장이 가장 무서워했던 회장이 김우중 회장이었단 얘기가 있었다. '김 회장이 내 아들이었으면'했다는 얘기도 있었다. 김 회장은 세계경영화두를 잘 읽었다. 90년대 초반에 프랑크푸르트로 본사를 옮기자고 했다.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 전화를 걸어 "세계경영이 뭐꼬?"라고 묻기도 했다. 하지만 너무 앞서 나갔다. 90년대 초반에 세계경영은 너무 멀리 나간 거다. 김 회장의 아이디어는 높이 평가하지만 약점은 세일즈맨 출신이라는 것이다. 내부관리까지 혼자서 다 하니 구조가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대우 지분이 없는 김 회장이 회사 경영은 어떻게 했나.

 "대우는 다른 회사와 다르게 총수인 김 회장의 지분이 없었다. 대우재단에 모두 기부했다. 1980년대 노태우 정부가 총수의 지분을 줄이면 최우량 계열 기업군이라는 지정을 해줬다. 여기에 지정되면 세금 등 여러 가지 혜택을 줬다. 그때 김 회장이 개인 지분을 다 처리하고 대우재단에 넘겼다. 결국 회장은 대우그룹 지배를 지분으로 지배한 것이 아니고 창업자 프리미엄으로 했다. 주주 대부분이 해외 자본이 아닌 일반 국민이었다."

 -대우그룹 몰락의 결정적인 요인은.

 "당시 조선, 중공업, 자동차 업계의 평균 부채비율은 800%였다. 금감원에서 200%로 낮추라고 압박을 했고 500%, 400%로 차차 낮추게 해달라고 부탁했지만 거절당했다. 장치산업이 아닌 금융업 같은 경우는 비용 투자가 적어 200%를 충분히 맞출 수 있었다. 하지만 조선의 경우 수주하면 계약금이 들어오지만 목돈은 배를 건네줘야 받는다. 그래서 조선업종은 통상적으로 부채비율이 높은 편이다. 이런 기본적인 것들을 무시하고 무조건 200%로 낮추려면 조선소를 팔아야하는데 이는 회사를 접으라는 얘기다. 또 정부에서 10조를 지원해 줬다고 했는데 알맹이를 보면 6조원은 리볼빙(대출기간연기)이었고 실제로 현금이 들어온 것은 4조원에 불과했다. 더군다나 그 4조원의 이자가 30%였다. 즉 고금리 이자가 붙은 쥐약이었다."

 -대우의 잘못은 없었나.

 "정부와 우리 반반이라고 본다. 우리 쪽 잘못은 세계경영이라는 모토 아래 자동차 공장에 올인 했다는 것이다. 당시 인도, 폴란드, 체코,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등 유럽 동부와 인도에 공장을 세웠다. 회사채 15조원을 발행해서 쏟아 넣었다. 그게 우리 패인이다. 물량을 너무 크게 했다. 김 회장은 규모의 경제를 중시했다. 많이 투자해야 단가가 낮아지고 경쟁력이 가격이라고 생각했다. 당시 공장의 캐파가 연 20만대였는데 국내는 4만대 가량으로 가동률이 20%에 불과했다. 당시 환율이 2000원대였는데 외환위기를 벗어나려면 수출을 많이 했어야 했다. 회장의 방법은 옳았다. 하지만 정부 쪽에서 수출의 선봉자인 대우의 발목을 부채비율 200%로 잡았다. 눈덩이같이 불어날 수 있는 자기자본 한계치를 없애버렸다."

 -김 회장이 대통령 출마를 하려 했다는데 어떻게 된 것인가.

 "재벌총수가 제일 약한 게 정치인이다. 그래서 김 회장도 92년에 대통령 나가려고 했었다. 김영삼이 93년도에 대통령에 당선됐다. 92년에는 정주영도 출마했었다. 검토를 해보니 김 회장은 경기고, 연세대 출신에 당시 자서전인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책도 1500만부나 팔렸다. 경기고, 연세대 인맥이 컸고, 정치 쪽에는 인맥이 별로 없었지만 관료층은 많았다. 충분히 된다고 봤는데 노태우 대통령이 김영삼 후보를 밀어줬다. 김영삼은 위기를 느꼈고 김우중 회장을 위협했다. 노태우 정권 당시 출마 얘기가 발표되자 국세청이 대우실업에 세무조사를 했다. 일주일가량 국세청 조사를 받았고 세금 700억원을 맞았다. 그래서 보고하니 김 회장이 대통령 출마를 결국 포기했다. 그때 나갔으면 됐고 대우그룹도 살았을 것이다. 따져보니 그때 당선이 700만표 정도면 된다고 했는데 김 회장은 1000만표 정도 나온다는 계산이 나왔다."

 -김 회장이 대통령 당선이 됐으면 대우그룹 경영은 누가할 예정이었나.

 "고민하다 집단체제를 생각했다. 총수가 아니라 각사 대표들이 모여 그룹 전체를 논의하게끔 하는 것이다. 어떤 문제가 생기면 같이 상의해서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래서 중공업담당 무역담당 전자담당 등 조직도도 만들었다. 이름도 다 회장이었다. 대통령 출마가 수포로 돌아간 뒤에 잠시였지만 이 체제로 운영하기도 했다."

 -대우그룹이 다시 출범할 가능성은.

 "이제 대우 브랜드가 없어지는데 현재 대우건설과 대우조선해양은 산업은행 소유다. 금년에 팔아야 하는데 살 곳이 없다. 대우조선해양은 한화가 뱉어냈고 대우건설은 금호가 뱉었다. 천상 해외펀드밖에 없다. 대우그룹이 부활하려면 이 두 회사만 사도 살리는 것이 가능하다."

 -구체적인 시나리오는.

 "현재 대우세계경영연구회는 친목단체다. 대우를 살리기 위해서는 대우건설이나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해야 한다. 산업은행이 가진 대우건설 지분 51%를 인수하는데 3조원이면 가능하다. 산은은 지금 자금 여력이 없다. 예금을 가져오는 기능도 없고 대우조선, 대우증권 등에 자금이 많이 묶여있다. 또 민영화단계에 있기 때문에 임자만 만나면 넘길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회사를 경영하는 전략적 투자자(SI)로 국내 30~60위권 그룹 두 곳, 이름만 대면 알만한 일본 대기업 한 곳과 협의 중이다. 이들이 SI로 5000억원 정도 마련해서 들어오고 FI(재무적 투자자)는 해외펀드를 통해 2조5000억원 정도 끌어오면 된다. 이미 SI쪽과는 구조에 대해 합의를 했고 충분히 승산이 있는 게임이다. 대우건설을 먼저 M&A하고 대우조선해양은 대우건설이 SI로 들어가는 플랜이다. 그럼 부활할 수 있다. 주주야 당시 대우 때도 김 회장 지분은 없었다. 그리고 대우 임원들의 훌륭한 경영능력은 이미 인정받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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