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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살인의 추억’이 내 인생 바꿨다”…엄친아 스페인 감독

등록 2013.07.24 11:26:27수정 2016.12.28 07:4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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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박문호 기자 = 영화 '페인리스'의 후안 카를로스 메디나 감독이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동 다우기술 본사에서 뉴시스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3.07.22  go2@newsis.com

【서울=뉴시스】박문호 기자 = 영화 '페인리스'의 후안 카를로스 메디나 감독이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동 다우기술 본사에서 뉴시스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3.07.22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김태은 문화전문기자 = 8월8일 개봉하는 스페인·프랑스·포르투갈 합작영화 ‘페인리스’의 감독 후앙 카를로스 메디나(36)가 왔다. 지난 18일 개막한 제17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참가했다.

 미국 유학 중 만난 스페인인 아버지와 프랑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 태어난 그는 두 살 때 스페인으로 돌아왔고, 12세 때 프랑스로 이주했다. 지구촌 시대 다문화 수혜 ‘엄친아’다. 누벨바그를 이끈 인물 가운데 하나이자 유명 영화잡지 ‘카이에 뒤 시네마’ 편집장을 지낸 영화감독 에리크 로메르(1920~2010)의 지도로 소르본 대학에서 영화학 석사를 받았다. 영어, 스페인어, 프랑스어에 모두 능통한 그는 미국과 달리 다국적 투자를 받아야만 영화제작이 가능한 유럽영화계에서 한결 유리한 입장이다.

 더구나 그의 장편 데뷔작 ‘페인리스’는 기예르모 델 토로(49) 감독 등에게서 볼 수 있는 스페인 판타지 영화의 전통과 시대적 아픔을 바탕으로 프랑스 영화의 세련된 촬영방식과 영상미를 덧입힌 수작이라는 칭찬을 받고 있다. 차기작은 영어로 만들어 미국시장 진출을 노리고 있기도 하다. 영국 소설가 피터 애크로이드(64)의 ‘댄 레노와 라임하우스 골렘’을 각색한 범죄 스릴러다.

【서울=뉴시스】박문호 기자 = 영화 '페인리스'의 후안 카를로스 메디나 감독이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동 다우기술 본사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3.07.22  go2@newsis.com

【서울=뉴시스】박문호 기자 = 영화 '페인리스'의 후안 카를로스 메디나 감독이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동 다우기술 본사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3.07.22  [email protected]

 메디나 감독의 입에서 나온 말은 뜻밖이었다. “한국영화의 열렬한 팬이다, 봉준호의 ‘살인의 추억’이 내 인생을 바꿔놨다”면서 한국영화를 줄줄이 예찬하기 시작했다. 인터뷰 당일인 22일은 마침 봉 감독의 신작 ‘설국열차’가 언론에 첫선을 보이는 날이었다. 그는 “‘설국열차’ 프리미어가 언제인가? 정말 보고싶다”며 기대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설국열차’에는 ‘페인리스’의 주인공 중 한 명인 아이슬란드 배우 토머스 레마르퀴스가 ‘에그-헤드’ 역으로 나온다.

 “봉준호는 정말 위대한 감독이고, 그의 ‘괴물’을 정말 좋아한다. 박찬욱의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김지운의 ‘달콤한 인생’도 좋아한다. 요즘 한국영화는 세계영화계에서 가장 중요하고 잘나가는 영화 인더스트리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며 가장 최근 본 한국영화는 ‘황해’(감독 나홍진)라고 밝혔했다. ‘스토커’(박찬욱 감독의 미국 진출작)를 더 최근에 보기는 했지만, 그것을 한국영화라고 해야할는 지는 잘 모르겠다고 부연했다.

【서울=뉴시스】박문호 기자 = 영화 '페인리스'의 후안 카를로스 메디나 감독이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동 다우기술 본사에서 뉴시스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3.07.22  go2@newsis.com

【서울=뉴시스】박문호 기자 = 영화 '페인리스'의 후안 카를로스 메디나 감독이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동 다우기술 본사에서 뉴시스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3.07.22  [email protected]

 본래 기타노 다케시 등 일본영화, 존 우(우위썬·오우삼) 같은 홍콩영화 등 아시아 영화에 관심이 많은 그를 한국영화로 이끈 것은 무엇일까. “장르영화도 좋을뿐 아니라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메시지도 담겨있고, 다면적이며 다양하게 읽힐 수 있는 것이 한국영화의 장점”이라고 봤다. “2005년 ‘살인의 추억’을 보게 됐는데, 그 전에는 연쇄살인범을 그런 식으로 연출한 영화를 본 적이 없다. 전통적인 영화 관습을 따르는 부분도 있지만 굉장히 시적이다. 그 시대를 그린 한 폭의 그림과도 같았다. 캐릭터가 완벽하지는 않지만 현실적”이라고 평하며 이후로 한국영화의 팬이 됐다고 털어놓았다.

 또 “한국영화가 칵테일처럼 여러 가지 장르를 섞는 방법을 연출 시 참고했다. 한국영화 중에는 엔터테인먼트적인 재미도 있으면서 깊이가 있고 비주얼적으로도 아름다운, 뛰어난 장르영화들이 많다”면서 “특히 ‘살인의 추억’은 연쇄살인범을 찾으려는 형사 이야기뿐만 아니라 80년대 독재치하 시대상이 담겨있고, 바보 캐릭터를 사람들이 어떻게 다루는지를 보여주면서 그 사회의 분위기도 알 수 있다. 인간성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좋아한다”고 설명했다.

【서울=뉴시스】박문호 기자 = 영화 '페인리스'의 후안 카를로스 메디나 감독이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동 다우기술 본사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3.07.22  go2@newsis.com

【서울=뉴시스】박문호 기자 = 영화 '페인리스'의 후안 카를로스 메디나 감독이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동 다우기술 본사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3.07.22  [email protected]

 호러영화로 분류되는 ‘페인리스’에서는 이러한 영향이 많이 드러난다. 1931년 스페인의 어느 마을에서 고통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아이들이 나타나 위험한 존재라는 이유로 격리수용되는 이야기가 한 축이다. 교통사고로 아내를 잃고 림프종(임파선암) 선고를 받은 저명한 신경외과 의사 다비드(알렉스 브렌데몰)가 골수이식을 받기 위해 부모를 찾아갔다가 자신이 입양됐다는 사실을 알게되고 친부모를 찾아나선다는 현재의 이야기가 또 다른 축이다. 계속 교차되던 두 이야기가 엮이며 잔혹한 과거의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무통증을 앓는 아이들이 겪는 일들은 그저 판타지 같지만, 이들은 스페인 내전과 프랑코 독재체제를 겪는 민중의 은유이기도 하고, 실제 비극의 반영이기도 하다.

 메디나 감독은 “이 영화는 진실을 받아들이기는 상당히 힘들지만 그 진실과 대면하기 위해서는 어디까지 희생을 할 수 있느냐를 묻고 있다. 악몽같은 비참한 결말이기는 하지만 그 진실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유발하고 있다. 다비드가 진실을 알게 되며 정화됐다는데 의미가 있다”고 자평했다.

【서울=뉴시스】박문호 기자 = 영화 '페인리스'의 후안 카를로스 메디나 감독이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동 다우기술 본사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3.07.22  go2@newsis.com

【서울=뉴시스】박문호 기자 = 영화 '페인리스'의 후안 카를로스 메디나 감독이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동 다우기술 본사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3.07.22  [email protected]

 그러면서 “스페인 역사를 배우는 것은 나의 가족사를 발견하는 일이기도 했다. 공화군이었던 증조부가 사형당하면서 할머니는 고아가 됐다. 이 영화를 만드는 일은 스페인 출신 나의 아버지를 좀 더 알게되는 과정이기도 했다”고 고백했다.

 첫 방문한 한국에 대한 인상을 묻자 “많이 둘러볼 시간은 없었지만 부천판타스틱국제영화제에서 만난 한국 관객들이 굉장히 똑똑하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답했다. “베르카노가 감옥 안에서 어떻게 그렇게 근육질의 강한 몸매를 유지할 수 있었느냐”와 같은 황당한 질문을 받기도 해 “스웨덴식 운동방식을 따라했기 때문”이라고 답변해줬다고도 한다.

 짧은 일정 탓에 존경하는 한국 감독들을 만날 시간이 없는 것을 아쉬워하는 그는 기회가 된다면 송강호, 최민식, 이병헌, 김옥빈 같은 한국 배우들과도 일해보고 싶어 했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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