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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갈매기' 명동예술극장 '비움의 미학' 통했다

등록 2016.06.04 10:34:01수정 2016.12.28 17: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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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국립극단 연극 '갈매기'

【서울=뉴시스】국립극단 연극 '갈매기'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뜨레쁠례프가 작가가 된 순간 천장에서 수많은 종이가 쏟아져내려와 무대를 뒤덮는다. 배우가 됐으나 실패한 니나가 '목이 마르다'라고 외치는 순간 천장에서 물이 떨어져내리기 시작한다.

 무엇인가를 좇아 하늘을 날았지만 총에 맞아 죽은 갈매기의 변형이다. 루마니아 연출가 펠릭스 알렉사는 국립극단(예술감독 김윤철)과 손잡고 재해석한 안톤 체홉의 '갈매기'를 자유낙하운동을 하는 욕망의 미장센으로 풀어냈다.

 정지돼 있던 물체가 중력을 받아 속력이 커지면서 지면을 향해 떨어지는 것이 자유낙하운동이다. 새로운 흐름을 만드는 작가가 되고 싶었던 뜨레쁠례프, 유명인사에 대해 환상을 품고 있었던 배우 지망생 니나.

 이들의 꿈은 정지된 물체처럼 간직되고 있었다. 하지만 유명 배우이자 뜨레쁠례프의 어머니인 아르까지나, 그녀의 애인이자 유명한 작가인 뜨린고린의 비틀린 욕심과 욕망의 중력으로 두 젊은이의 꿈은 총에 맞은 갈매기처럼 날개 없이 추락한다.  

 모던한 미장센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알렉사 연출은 2014년 국립극단과 협업한 '리차드 2세'에서도 종이와 물을 중요한 모티브로 사용했다. 권력을 빼앗긴 뒤 몹시 탄식하는 영국 국왕 리차드 2세 앞에서 수많은 종이배들이 물에 젖어 들어갔다.

 '갈매기'에서도 뜨레쁠례프가 써내려간 수많은 종이가 빗물에 하릴 없이 젖어들어간다. 뜨레쁠례프가 예전보다 훨씬 뜨겁게 니나에게 구애해도, 그녀는 자신을 버린 뜨린고린을 더 사랑하게 됐다며 떠나버린다.   

 물에 젖은 종이처럼 인간의 영혼은 얼마나 손쉽게 너덜너덜해지는가. 결국 뜨레쁠례프는 자신의 머리를 향해 총구를 겨눈다. 이 장면을 비롯해 내내 반복돼 울려퍼진 칼 오르프의 오페라 '카르미나 부라나' 중 '오 운명의 여신이여'의 비장한 웅장함은 비극성의 절정이다. 뜨레쁠례프가 운명을 맞이하는 순간, 그의 작품에 출연했을 때의 니나의 모습이 점처럼 사라진다.  

【서울=뉴시스】국립극단 연극 '갈매기'

【서울=뉴시스】국립극단 연극 '갈매기'

 뜨린고린은 뜨레쁠례프가 죽여 니나 앞에 내려놓았던 갈매기를 아르까지나의 오빠 소린의 집사인 샤므라예프에게 박제를 부탁했다. 그는 하지만 마지막에 그 박제를 부탁한 일이 생각나지 않는다고 반복한다. "명성은 견디는 능력"이라는 니나의 말이 겹쳐진다.

 세련된 모던극으로 재탄생한 '갈매기'의 한 축을 이루는 또 다른 점은 신구 배우의 조화다. 이 역의 제안을 세 번 거절한 뒤 네 번째인 국립극단의 권유를 받아들인 이혜영은 영락 없는 아르까지나다. 당당하고 화려하며 고뇌에 찬 이 캐릭터의 불안한 고혹을 한껏 품었다. 존재만으로 무게 중심 축을 잡는 소린 역의 노배우 오영수도 있다.

 단단한 발성의 뜨린고린 역의 이명행, 뜨레쁠례프만 바라보며 인생의 수렁에 빠져드는 마샤 역의 황은후, 마샤만을 바라보는 무기력한 남자지만 그마나 극에 온기를 주는 메드베젠꼬의 박완규도 기억해야 한다. 최근 서울시극단이 선보인 셰익스피어의 '헨리 4세'에서 '폴스타프'를 맡아 풍자적인 캐릭터의 절정을 보여준 이창직은 샤므라예프를 맡아 '갈매기' 속 셰익스피어의 '햄릿' 대사를 끄집어낸다.

 이 작품으로 데뷔한 뜨레쁠례프 역의 김기수, 데뷔 3년 차를 맞은 니나 역의 강주희는 풋풋하면서 신선한 기운을 불어넣는다. 편견 없는 캐스팅으로 앙상블을 창조해낸 알렉사의 또 다른 성과다.

 극의 또 다른 주인공은 극장인 명동예술극장 자체다. 연극을 다루며 이에 대한 상징과 은유를 포함한 '갈매기'의 주요 배경은 극장이다. 과하지 않게 세련됨을 풍기는 고급 극장인 명동예술극장 무대의 노출된 구조는 그 자체만으로 캐릭터가 된다. 무대디자이너 이태섭의 '비움 미학'은 이번에도 통했다. 29일까지. 1644-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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