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2년째 적자예산…코로나19 변수에 나라곳간 '비상'
3년 연속 8%대 재정지출↑…'확장재정' 유지
총수입-총지출증가율 -8.2%…역대 최대 수준
한국판 뉴딜 관련 산업·환경·R&D 예산 늘어
내년 세수 9조2000억 줄어…법인세 17.2%↓
89조7000억 적자국채 발행…사상최대 규모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 46.7%…건전성 악화
[세종=뉴시스]강종민 기자 =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달 2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올해보다 43.5조원(8.5%) 늘어난 555.8조원으로 편성된 2021년도 예산안을 발표하며 안경을 고쳐쓰고 있다. 2020.09.01. [email protected]
[세종=뉴시스] 박영주 기자 = 정부가 내년에 555조8000억원 규모의 '슈퍼 예산안'을 편성한 배경에는 재정을 마중물로 삼아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침체된 경기를 빠르게 회복하겠다는 의도가 반영됐기 때문이다.
소비·생산·투자 등 내수가 회복 조짐을 보이는 상황에서 코로나19의 재확산에 따른 경기회복 모멘텀 약화 가능성에 대비하기 위해 확장적 재정이 불가피하다는 판단에서다. 초유의 감염병 사태에 따른 비대면 경제 전환의 가속화, 양극화 심화 등 경제·사회구조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하는 상황도 고려됐다.
하지만 정부가 총수입보다 총지출이 많은 '적자 예산'을 2년 연속 편성하면서 나랏빚이 900조원을 훌쩍 넘어서고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도 45%를 웃돌 전망이다. 전문가들도 빨라진 국가채무 속도에 따른 재정건전성 악화를 우려했다.
[세종=뉴시스]강종민 기자 =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달 2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올해보다 43.5조원(8.5%) 늘어난 555.8조원 규모의 2021년도 예산안 발표를 위해 단상에 오르고 있다. 2020.09.01. [email protected]
◇산업·중소·에너지 22.9%↑, 환경 16.7%↑…뉴딜분야 예산 확대
정부는 올해 512조3000억원 규모의 슈퍼 예산에 이어 내년에는 사상 최대인 555조8000억원 규모의 '초슈퍼 예산'을 짰다. 내년 총지출 증가율은 8.5%로 2019년(9.5%), 올해(9.3%)에 이어 3년 연속 8%대 '확장 재정'을 유지했다.
아울러 총지출(555조8000억원)이 총수입(483조원)보다 많은 '적자 예산'으로 편성됐다. 앞서 정부는 2010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0년 만에 올해 예산을 적자 예산으로 편성한 바 있다. 세수가 줄어들면서 정부의 적자 재정은 당분간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총수입증가율과 총지출증가율로 보면 3년째 '적자 예산'이다. 내년 총지출증가율은 8.5%지만 총수입증가율은 0.3%로 총수입증가율과 총지출증가율의 차이는 -8.2%포인트(p)다. 특히 내년 총수입과 총지출증가율 격차는 역대 최대 수준이 될 전망이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국가채무를 감내하더라도 재정이 적극적인 역할을 해서 성장률을 높이고 다시 재정건전성을 회복시키는 선순환체계를 구축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판단했다"며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보다 재정 여력이 있다는 점도 반영됐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내년 예산을 편성하면서 빠르고 강한 경제 반등과 선도형 국가발전전략인 한국판 뉴딜 뒷받침에 중점을 뒀다. 이에 따라 디지털·그린뉴딜과 관련한 사업 예산이 크게 늘어났다.
세부적으로 보면 산업·중소·에너지 예산은 29조1000억원으로 12개 분야 통틀어 가장 높은 증가율인 22.9%(5조4000억원)를 보였다. 디지털 경제·저탄소 에너지 전환 등 한국판 뉴딜 핵심 사업 중심으로 예산이 대폭 늘었다. 5년 연평균 증가율(10.7%)보다 2배 이상 높은 수준이다.
기후변화 위기 대응을 위한 그린뉴딜과 공기·물·녹색공간 등 생활환경 개선 투자 확대를 위한 환경 예산도 올해보다 16.9% 늘어난 10조5000억원이 책정됐다. 지난해보다 약 1조5000억원 늘어난 규모다.
연구·개발(R&D) 예산은 27조2000억원으로 올해보다 12.3%(3조원) 늘었다. 일본의 수출 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국내 소재·부품·장비 등 미래 첨단혁신기술을 중심으로 집중적으로 확대했다.
복건·복지·고용 분야 예산도 올해보다 10.7%(19조4000억원) 늘어난 199조9000억원으로 편성됐다. 내년 전체 예산의 36.0%를 차지하는 규모다. 이 중 일자리 예산은 올해보다 20%(5조1000억원) 증가한 30조6000억원이 배정됐다. 기초생활보장제도 사각지대 해소, 국민취업지원제도 시행 등 고용·사회안전망 강화를 위해 200조원 수준으로 반영했다고 기획재정부는 밝혔다.
건설·교통 등 사회간접자본(SOC) 분야 예산은 올해보다 11.9%(2조8000억원) 많은 26조원으로 책정됐다. SOC 디지털화·그린리모델링 등 뉴딜투자 소요와 노후 SOC 안전 투자에 중점을 둬 2년 연속 두 자릿수 증가율을 기록했다.
국방전력의 고도화·전투역량 강화 등 스마트강군 기반 구축을 위한 투자를 위해 국방 예산도 올해보다 5.5% 증가한 52조9000억원으로 짰다. 문화·체육·관광(8조4000억원), 농림·수산·식품(22조4000억원), 외교·통일(5조7000억원)도 각각 5.1%, 4.0%, 4.3% 증가했다.
공공질서·안전(21조8000억원), 일반·지방행정(86조5000억원)도 각각 4.4%, 9.5% 증가했다. 교육 예산은 올해보다 2.2% 줄어든 71조원으로 12개 분야 중 유일하게 감소했다.
◇법인세 부진에 세수 9조 감소…국가채무는 900조 '훌쩍'
내년 정부 지출은 급증하는 반면 세수는 쪼그라들면서 국가 재정건전성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정부는 내년 국세 세입은 올해보다 9조2000억원(-3.1%)이나 감소한 282조8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코로나19 등으로 인한 법인 영업이익 감소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내년 법인세는 올해 본예산보다 11조1000억원(-17.2%) 줄어든 53조3000억원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에 따라 소비가 위축되면서 부가가치세도 올해 본예산 대비 3.2% 감소한 66조7000억원이 걷힐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악화하는 세입 여건에도 확장 재정 기조를 유지하기 위해 내년 89조7000억원의 적자국채를 발행하기로 했다. 이는 본예산 기준으로 사상 최대 규모에 해당한다. 다만 정부는 올해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1~3차 추경을 편성하면서 총 97조1000억원의 적자국채가 발행될 것으로 봤다. 올해 현재까지 발행된 적자국채는 82조3000억원이다.
재정건전성에도 비상이 걸렸다. 재정 지출을 국채발행으로 충당하면서 내년 나랏빚은 945조원으로 900조원을 넘기게 된다. 지난해(728조8000억원) 700조원을 넘어선 데 이어 올해(839조4000억원) 800억원, 내년에는 900억원을 돌파하며 매년 앞 숫자를 갈아치우는 것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올해 본예산 기준 39.8%에서 내년 46.7%까지 오르게 된다.
통합재정수지(총수입-총지출) 적자 규모는 올해(30조5000억원·본예산 기준)보다 2배 이상 증가해 72조8000억원으로 확대된다. 통합재정수지에서 4대 사회보장성기금수지를 제외한 관리재정수지도 109조7000억원 적자를 기록하고 GDP 대비 관리재정수지비율은 -5.4%까지 추락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정부는 2021~2023년 관리재정수지 비율이 -3.9 수준으로 유지될 것으로 봤다. 하지만 코로나19에 따른 1~3차 추경으로 올해 관리재정수지 비율은 -5.8%로 내려가 사상 처음으로 -5.0%를 밑돌 것으로 예상된다.
재정 악화 속도가 빨라지자 정부는 재정준칙을 마련하기로 했다. 홍 부총리는 "최근 경제 위기와 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하면서 재정 증가율이 높아진 만큼 국가채무, 재정수지 등 재정건전성도 약화된 측면이 있다"며 "우리나라도 재정준칙 도입이 필요하다고 판단, 검토 후 이달 내 발표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확장재정 방향성에 대해서는 공감하면서도 지나치게 빠른 국가채무 속도를 경계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양준석 가톨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내년 재정지출 증가율 8.5%는 적절하다고 판단하지만, 국가채무 증가 속도가 많이 빠르다"면서 "코로나19가 끝나고 나면 재정 적자 규모와 비율은 개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역시 "국가채무 규모는 한국 역사상 유례없는 일이자 사상 최대 수준"이라며 "다른 선진국보다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낮지만, 고령화 등으로 빠르게 증가하는 고정 지출을 고려하면 추후 재정 운영에 막대한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도 "2024년에는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60%에 육박하게 되는데 너무 빠르다"면서 "본예산 규모는 줄여놓고 경제 상황에 따라 추경을 편성해 대응하는 방법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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