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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침묵이 정확하네…'우리가 서로 알 수 없었던 시간'

등록 2021.08.20 13:14:51수정 2021.08.20 14:3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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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22일까지 성산동 문화비축기지 T2 야외공연장

[서울=뉴시스] 무언극 '우리가 서로 알 수 없었던 시간'. 2021.08.19. (사진 = 임종진·극단 무천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무언극 '우리가 서로 알 수 없었던 시간'. 2021.08.19. (사진 = 임종진·극단 무천 제공)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때론 침묵이 정확하다.

극단 무천의 비언어 총체극 '우리가 서로 알 수 없었던 시간'(연출 김아라)이 그런 예에 적확하다. 발화(發話)하지 않음으로써, 발화(發花)한다. 고요함으로 생명력을 꽃 피운다.

러닝타임 2시간 동안 배우 20명이 변신하는 320여 인간 군상은 말이 없다. 성산동 문화비축기지 T2 야외공연장 주변이 어둑해지면, 캐릭터들은 대사를 내뱉는 대신 발화(發火)한다.

오스트리아 극작가 겸 소설가 페터 한트케의 동명 침묵극이 바탕. 배우들과 대사는 본래 연극에서 혈족이나, 이 무언극(無言劇)은 핏줄을 이용해 쉽게 가지 않는다.

[서울=뉴시스] 무언극 '우리가 서로 알 수 없었던 시간'. 2021.08.19. (사진 = 임종진·극단 무천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무언극 '우리가 서로 알 수 없었던 시간'. 2021.08.19. (사진 = 임종진·극단 무천 제공) [email protected]

중요한 건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말이 없는 순간이다. 그 여백이 오히려 많은 말들을 머금고 있다. 회사원, 학생, 청소부, 장애인 등 우리가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은 걷고나 뛰거나 넘어지거나 또는 주저 앉는다.

중요한 건 평범하고 흔한 모습에서 유유히 흐르는 삶의 박동이다. 우리 주변 인물들을 이렇게 넋 놓고 바라본지가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급물살 같은 삶의 흐름에 취해, 인생을 굴리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사실 '우리가 서로 알 수 없었던 시간'도 침묵극이지만 소리가 완전히 없지는 않다. 풀벌레 소리, 바람에 흔들리는 잎사귀 소리, 저 멀리서 들려오는 자동차 경적소리 그리고 별이 깜빡이는 소리까지. 

[서울=뉴시스] 무언극 '우리가 서로 알 수 없었던 시간'. 2021.08.19. (사진 = 임종진·극단 무천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무언극 '우리가 서로 알 수 없었던 시간'. 2021.08.19. (사진 = 임종진·극단 무천 제공) [email protected]

광활하지만 포근한 이 관조의 미학을 선사하는 총체극은 삶의 단면을 말하지 않음으로써 보여준다. 쓸쓸한 기운을 머금고 있지만, 그 정서의 바닥으로 가지는 않는다.

노숙자의 행색을 하고 있지만, 사실인 천사인 캐릭터의 온기 덕이다. 배우 정동환이 연기하는 이 인물은 두 눈으로 삶을 듣는다. 그 안에 수많은 언어가 날개 돋친 듯 퍼져 있다.

관객들이 꾸역꾸역 삼킨 그 말들은 야외공연장을 벗어나자마자 반가운 탄성이 된다. 배우들이 일렬로 서 집으로 향하는 관객들을 배웅한다. 공연이 끝나도 삶은 이어지고, 삶은 공연이 된다. 수많은 말들이 방종하는 시대, 침묵함으로써 자유로워진다. 오는 22일까지.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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