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 트위터
  • 유튜브

[문화人터뷰]이상문학상 최진영 "'깨끗한 계약서' 받고 죄책감 들었죠"

등록 2023.02.11 07:00:00수정 2023.03.21 11:57:19

  • 이메일 보내기
  • 프린터
  • PDF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소설가 최진영이 27일 서울 중구 달개비에서 2023년 제46회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 소감을 발표하고 있다. 2023.01.27. pak7130@newsis.com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소설가 최진영이 27일 서울 중구 달개비에서 2023년 제46회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 소감을 발표하고 있다.  2023.01.27.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신재우 기자 = "내가 이상문학상 대상 작가라니…"

소설가 최진영(42)은 아직도 믿기지가 않는다. 지난 1월27일 제46회 이상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

"어떻게 이 상을 받을 수 있었을까?"

2006년 등단한 최진영은 각종 문학상을 도장 깨기 하듯 섭렵했다. 한겨레문학상, 신동엽문학상, 만해문학상 등 걸출한 문학상을 수상한 이력을 다시 보며 "그래 이상문학상을 받을만했다"고 스스로 토닥였다.

'이상문학상'은 문제가 많았던 상이다. 대상 작가로 선정되면서 "내게 멀리 있던 상이었다"면서 "깨끗한 계약서를 받았다"고 수상소감을 말해 주목받았다.

이상문학상 '불공정 계약서' 논란..'3년 저작권 양도' 조항도 삭제

이상문학상은 44년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 하지만 지난 2020년 '저작권 양도' 논란으로 '불공정 계약'에 휩쓸렸다. 당시 우수상 수상작가가 이상문학상을 거부하며 파장이 커졌다. "계약서에 단편 저작권을 3년 간 양도한다는 내용이 있었다"고 알렸다.

이상문학상을 주관하는 문학사상사는 대상 수상작에 대해 3년 저작권을 양도 받는 조항이 지난해부터 서류 착오로 우수상 수상 작가에게도 잘못 전달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변명하지 말라"는 항의와 작가들의 수상거부 절필선언까지 쏟아졌다. 사태의 책임을 한 개인인 직원에게 전가한다는 비난도 이어지며 '갑질 출판사'로 낙인이 찍힌 바 있다.

이후 문학사상은 결국 수상자 발표를 취소하고 논란 한달 만에 사과했다. "계약서상의 표현이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고 해명했다. 대상을 받은 작가의 수상 작품에 적용했던 '3년 저작권 양도' 조항을 논란 뒤 ‘출판권 1년 설정’으로 수정했다.

“대상 수상작을 수상 작가의 작품집 표제로 삼지 못하게 한 기존 규정 역시 손보고 1년 뒤부터는 해제하기로 했다.” 또 우수상 수상자에게는 저작권 양도는 물론 그 밖의 아무런 요구도 달지 않기로 했다. 올해엔  ‘출판권 1년 설정’ 조항도 폐기했다.


[서울=뉴시스] '제46회 이상문학상 작품집'과 '2023 시소 선정 작품집'에 동시에 수록된 단편 '홈 스위트 홈 (사진=문학사상, 자음과모음 제공) 2023.02.11.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제46회 이상문학상 작품집'과 '2023 시소 선정 작품집'에 동시에 수록된 단편 '홈 스위트 홈 (사진=문학사상, 자음과모음 제공) 2023.02.11.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3년 저작권 양도' 없는 '깨끗한 계약서'..."받고 보니 죄책감"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가 불편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때 일이 거론되지 않길 바라는 작가들도 있지 않을까 생각도 들고요."

최진영은 '깨끗한 계약서'를 받아들고 죄책감을 느꼈다고 했다. 이러한 계약이 완성되기까지는 수많은 작가의 목소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상문학상 후보에도 오르지 못했고 문학사상과 일해본 적도 없는 그는 사태가 일어난 당시엔 소리를 내지 않았다. 나서서 이야기하는 성격도 아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 이후 '계약서'에 대한 작가들의 태도는 예민해졌어요. 작가의 권리에 대한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2020년부터 저도 출판 계약서를 꼼꼼히 보려고 노력했어요."

이 때문에 이번 '이상문학상' 계약서는 더 자세히 봤다. "쉽게 풀어 쓴 용어로 작가의 권리를 보장하는 정말 '깨끗하고 단정한 계약서'였어요."

작품에 대한 권리는 온전히 작가에게, 출판사는 작품을 출판하는 권리만을 가지는 내용이 정확하게 들어있다.

공교롭게도 이번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작인 '홈 스위트 홈'은 자음과모음 출판사에서 진행하는 '시소' 프로젝트에도 선정, 이상문학상 작품집과 시소 선정 작품집에 함께 실렸다.  그의 수상작은 두 권의 책을 통해 동시에 나오게 됐다.

 최 작가는 "이전의 계약서라면 불가능했을 일"이라고 했다.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 상금은 5000만 원이다.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소설가 최진영이 27일 서울 중구 달개비에서 2023년 제46회 이상문학상 대상을 수상하고 있다. 이상문학상 심사위원회는 본선에 오른 16편 작품집에서 최진영 작가의 단편소설 '홈 스위트 홈'을 대상작으로 선정했다. 2023.01.27. pak7130@newsis.com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소설가 최진영이 27일 서울 중구 달개비에서 2023년 제46회 이상문학상 대상을 수상하고 있다. 이상문학상 심사위원회는 본선에 오른 16편 작품집에서 최진영 작가의 단편소설 '홈 스위트 홈'을 대상작으로 선정했다. 2023.01.27. [email protected]

이상문학상 대상 '홈 스위트 홈'..."감각적인 문체 요즘 보기 드문 미덕"

"사랑을 두고 갈 수 있어서 나는 정말 자유로울 거야. 사랑은 때로 무거웠어. 그건 나를 지치게 했지. 사랑은 나를 치사하게 만들고, 하찮게 만들고, 세상 가장 초라한 사람으로 만들기도 했어. 하지만 대부분 날들에 나를 살아 있게 했어. 살고 싶게 했지. 어진아, 잘 기억해. 나는 이곳에 그 마음을 두고 가볍게 떠날거야." ('홈 스위트 홈' 중)

스스로 의심하기도 했지만 '홈 스위트 홈'은 공을 많이 들인 단편소설이다. 최 작가는 그간 우수상에도 오른 적이 없이 대상을 받아 더욱 주목됐다. 심사위원회로부터 “수상작은 집이라는 공간을 통해 ‘장소의 기억’ 만들기를 절묘하게 서사화하고 있다”면서 "치밀하고도 감각적인 문체는 요즘 소설에서 보기 드문 미덕이었다”는 평을 받았다.

"지난해 단편소설을 더 잘 쓰고 싶은 마음에 제주도로 이사를 와서 쓴 두 번째 이야기입니다. 그간 글쓰는 기계처럼 쫓기듯이 단편을 마감했다면 이제는 천천히 정성을 들여 쓰는 시간을 갖기 위해 제주까지 왔어요."

최진영은 "원체 소심하고 조용한 성격에 하고 싶은 말을 소설에서만 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쓴 소설은 자유의 공간이었다. 사건과 배경을 원하는 대로 만들고 인물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다.

"소설에서만큼은 사회문제와 퀴어와 여성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수 있고 사랑, 죽음, 절망에 대해서도 논할 수 있는 '뻔뻔한 사람'이 되지요."

어느덧 중견작가가 된 그는 이제 자신의 소설에 대한 책임감을 느낀다. 10년 넘게 글을 쓰며 그는 자신이 쓴 글에 스스로도 변하고 있다는 것을 체감한다. 소설은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 공간에서 어느덧 무언가를 하고 싶게 만드는 곳이 됐다.

"소설 속 문장을 쓰다 보면 그 문장처럼 살아야겠다고 다짐하는 순간이 찾아와요. '홈 스위트 홈'을 쓰면서도 지금의 사랑과 지금의 삶에 최선을 다하고 싶은 마음이 피어납니다."

이상문학상의 깨끗하고 단정한 계약서 덕분에 작품 욕망도 강해지고 있다. "저를 조금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드는 글을 계속 써야겠습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