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주 아트클럽]65년만에 예술가가 점령한 DMZ 캠프그리브스
DMZ남방한계선에서 2km, 51년간 미군 막사 문화공간으로 변신
캠프 그리브스 DMZ 평화정거장 사업 '예술창작전시' 11일 개막
탄약고·정비고 등에 김명범·박찬경·장용선 등 10인(팀) 17점 전시
이은경 예술총감독 "장소성 초점 분단의 아픔 예술품으로 중화"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기자 = 나무처럼 자라난 뿔이 압도적인 사슴 한마리가 탄약고를 초현실적인 분위기의 공간으로 변모시켰다. 김명범 작가가 국내에 첫 공개하는 '놀이터' 시리즈 신작이다.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기자 = 미술은 개인과 공동체의 치유를 위해 존재한다. 일상에서 숭고에 대한 자각은 대개 찰나에 이루어지고 무작위로 찾아온다. 예술, 특히 미술 작품을 볼때다. 알랭 드 보통에 따르면 "예술은 인간의 조건인 고난을 웅대하고 진지하게 바라볼 수 있는 유리한 관점을 제공한다."
미군 막사에서 문화예술 공간으로 변신한 'DMZ 캠프 그리브스'는 우리가 잊어버린 것을 되돌아보게 한다. 남북 정상회담으로 해빙무드인 남북 관계속 가장 먼저 주목받고 있는 DMZ에 부동산개발업자가 아닌 예술가들이 점령한 건 위로와 치유가 우리에게 필요하기 때문이다.
'캠프 그리브스'는 파주시 민간인 통제구역 내, DMZ 남방한계선에서 불과 2km 떨어진 곳에 위치했다. 1953년부터 2004년까지 미군기지로 사용되었던 공간이다. 2004년 마지막 주둔부대인 제 506연대 철수 이후 캠프 그리브스는 평화, 생태, 문화의 공간으로 변화하고 있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미군 시설이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고, 체험형 숙박시설을 갖추고 있다.
오는 11일 ‘캠프 그리브스 DMZ 평화정거장(DMZ 피스플랫폼) 사업’의 메인 행사인 예술창작 전시를 개막한다. 경기도와 경기관광공사가 추진하는 사업이다.
8일 미리 가 본 '캠프 그리브스 DMZ 평화정거장' 전시는 서늘한 아름다움으로 분단 국가의 아픔을 다시 상기 시켰다.
금지 구역 '캠프 그리브스'로 가는길은 묘한 긴장감을 선사했다. 서울 광화문에서 자동차로 1시간 남짓 거리. 내비게이션에 '통일대교'를 찍고 가는 길은 파주로 들어서면서 4차선에서 3차선, 2차선으로 좁아지며 최북단 도로로 안내한다. 녹슨 가시철망이 이어지는 임진각→판문점 도로 간판을 따라 들어선 통일대교는 더 이상 세차게 달릴수 없다. 검문을 통과해야 입장할 수 있다.(주민등록증은 필수지참)
판문점과 가까운 곳, 65년만에 공개된 DMZ '캠프 그리브스'는 평화롭게 보였다. 초록으로 우거진 수풀, 푸른 하늘과 뭉게구름, 짱짱하게 울어대는 매미소리가 한 여름을 농축되게 연출했다.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기자 = 정보경 작가는 직접 디자인한 '미사일 아이콘'을 도로 표지판으로 제작해 미사일 금지구역을 만들었다.
"예측하지 못하는 반전을 이루는 컨셉으로 접근했다."
'캠프 그리브스 DMZ 평화 정거장' 이은경 예술총감독은 "장소성에 초점을 두고 전시를 기획했다"고 말했다. "DMZ가 문화예술 상징 공간으로 바꾸기 위해 올해 처음으로 추진되는 전시이니 만큼 분단의 아픔을 가진 이 장소를 예술작품으로 중화시키겠다"는 의지였다.
이 총감독은 "캠프그리브스는 전쟁의 역사라는 가치와 문화 인터렉션 접목, 안보 역사 체험보다 미래지향적인 공간으로 변모시켜 젊고, 가족단위 관람객이 올수 있는 문화공간으로 생성했다"고 소개했다.
미군이 쓰던 막사와 탄약고, 볼링장등을 그대로 전시장으로 활용한 공간은 '민통선안의 미술관'이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장소성에 집중한 전시기획력을 보여준다.
'예술창작전시'는 전쟁과 냉전의 상징이었던 DMZ를 평화와 놀이의 공간이자, 평화지대로 재탄생시켰다.
탄약고, 정비고, 미디어 프로젝트와 '평화의 정원'으로 구성되어, 총 17개 작품을 선보인다. 김명범, 박찬경, 정문경, 정보경 등 초청작가 4인과 강현아, 박성준, 시리얼타임즈(강민준, 김민경, 송천주), 인세인박, 장영원, 장용선 등 공모 선정작가 6인(팀)이 DMZ와 캠프그리브스의 역사와 공간특수성을 재해석했다.
캠프그리브스의 미군시설 중에서도 전쟁과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었던 탄약고는 '놀이터'로 탈바꿈했다. 김명범 작가는탄약고 프로젝트 #1을 통해 '플레이그라운드' 시리즈를 국내에서 첫 공개하며, 평화와 희망의 메시지를 더욱 선명하게 전달하고 있다.
탄약고 한 가운데 미끄럼틀과 그네가 설치됐다. 미끄럼틀은 한쪽 벽으로 쏠려 있어 남과 북의 두 방향으로만내려갈 수 밖에 없게 만들었다. 미끄럼틀 위의 하얀 수건은 실제로 캠프그리브스에서 사용되었던 물건으로, 항복, 영역표시, 경계 등의 중의적인 의미를 갖는다.
또한 다른 탄약고에는 거대한 나무같은 뿔을 자랑하는 사슴 한마리가 자리하고 있다. 작가가 미국에서 박제해온 사슴으로, 1989년에 지은 군사 시설물인 탄약고의 정체성을 잊게 할 정도로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전한다.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기자 = 미디어작가 박찬경의 '소년병'과(위), 캠프그리브스 입구에 설치된 인세인박의 네온조각 'ISM!'ISM!'ISM!'.
미군이 사용했던 퀀셋 막사를 리뉴얼한 전시관에는 미디어작가 박찬경의 '소년병', 다큐멘터관에는 장용선 작가의 Treasure N37°53'56.8212" E126°43'43.2192'과 선보인다.
퀀셋막사는 비품실, 화장실 및 샤워실, 보일러실, 중대사무실, 저장고와 보급소 등 다양한 목적으로 설치된 곳으로 원형 그대로의 형태와 내부가 보존된 퀀셋막사를 직접 볼 수 있는 곳은 캠프그리브스가 유일하다.
박찬경의 '소년병'은 애잔함과 슬픔을 전한다. 기존 12분짜리 작업을 덧대 16분으로 늘인 이 작품은 어린 소년병을 통해 북한의 이미지를 서정적이면서 여린 이미지로 바꾸어 놓는다. 군대를 벗어난 가상의 북한 소년병이 책을 읽고, 노래를 읊조리다가 휴식을 취한 모습을 느린 화면으로 반복하는데 그속에서 나오는 북한 인기곡 '휘파람' 노래는 소년의 모습과 어우러지면서 비가(悲歌)처럼 들린다. 막사를 떠났는데도 이 노래가 계속 머릿속을 맴돌정도로 강렬하다. 이은경 예술총감독은 "시적이고 서정적인 전시를 만들고 싶어 이 작품을 꼭 전시하고 싶었다"고 했다.
장용선의 작품도 DMZ에서 어울리지않을 만큼 서정적이다. 캠프그리브스에 이전부터 있었지만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던 재료들을 작업의 오브제로 사용하고 캠프그리브스의 좌표값을 작품명으로 명명했다. 캠프그리브스 한 켠에 뒹굴고 있었던 군대물품인 윤형 철조망 끝에서 강아지풀 조명이 뻗어져 나와 캠프그리브스를 낭만적으로 밝힌다.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기자 = 8일 오전 캠프그리브스를 예술창작 전시공간으로 재탄생시킨 이은경 DMZ 평화정거장 예술총감독이 강현아 작가의 기이한 DMZ 생태누리공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예술창작전시의 또 다른 섹션인 'DMZ 평화의 정원'은 DMZ와 캠프그리브스의 과거와 현재, 미래의 모습을 제시하고 있다. 볼링장에 인터랙티브로 설치된 박성준 작가의 시리얼타임즈 작품은 전쟁 게임 같다. 작품 'your flame II'는 새의 다양한 울음소리로 가득한 공간에서 관람객이 센서를 지나가는 순간, 전쟁의 한복판으로 인도한다. 이라크 전쟁 때 벌어진 어둠 속에서의 총격 장면은 이곳이 과거에 한국전쟁의 중심지였음을 상기시킨다.
정문경 작가의 'Full square', 'fort'는 전쟁과 군대의 강압적인 이미지를 부드러운 헌 옷들로 채워 유연하게 뒤바꾸면서 고통스러운 전쟁의 기억을 아련한 유년시절의 기억으로 뒤덮는다. 정보경 작가는 '미사일금지구역', '탕탕탕탕탕, □□□□'을 통해 좀 더 직접적인 방식으로 캠프그리브스를 평화지대로 설정하고 있다.
인세인박 작가는 캠프그리브스 입구에 'ism! ism! 'ism!'이라는 네온 조각을 설치하여, DMZ를 만들어낸 전쟁과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대립이라는 과거의 산물을 무지개처럼 보이게 한다. 장영원 작가는 반공 이데올로기의 산물인 대전차 방호벽이 이제는 기능을 상실한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로 전락해 버린 상황을 작가적 시선으로 해석하여,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 전쟁 공포 이데올로기 ‘유사시(有事時)’가 허구였음을 밝히고 있다.
DMZ의 생태와 장소 특수성을 결합한 작업으로 강현아 작가의 '기이한 DMZ 생태 누리공원'은 캠프그리브스 산책로에서 선보인다. DMZ에 서식하는 동식물로 가정한 상상의 동물들을 통해 DMZ라는 특수한 자연환경 속에서 70여 년간 상
상의 진화를 해온 동식물을 주제로 하고 있다.
예술창작전시 기간 동안 캠프그리브스 곳곳에서 만나게 되는 17점의 작품 대다수는 반영구적으로 설치된다. 전시기간 동안 정비고와 스튜디오 BEQ에서 오픈스튜디오와 아티스트 워크샵 등 다양한 부대행사도 열려 관람객과 소통할 예정이다.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기자 = 파주시 민간인 통제구역 내, DMZ 남방한계선에서 불과 2km 떨어진 곳에 위치한캠프그리브스는 1953년부터 2004년까지 미군기지로 사용되었던 공간이다. 송중기 송혜교 주연의 드라마 '태양의 후예'가 촬영됐던 곳이다.
문화예술의 공간으로 재탄생한 캠프 그리브스는 송중기 송혜교 주연 드라마 '태양의 후예'를 촬영한 곳으로 한류 관광지로도 탈바꿈했다.
경기도와 경기관광공사가 2013년 민간인들을 위한 평화안보 체험시설로 리모델링하여 민간인 통제구역내의 유일한 체험형 숙박시설로 활용되고 있다. 캠프그리브스 유스호스텔로 변경되어 1박2일 청소년수련활동 인증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통일에 대한 열망과 우리가 어떻게 해야할지 잘알게 되었다", "항상 이런 평화가 지속되면 좋겠다.이번 DMZ활동을 통해 평화의 중요성과 통일의 필요성에 대해 알게 되었다"는 고등학생들의 후기가 남아있다
이번 '캠프그리브스 DMZ 평화정거장 사업 예술창작 전시'는 잊고 있었던 분단국가의 무사태평한 의식을 일깨워준다는 점에서 의미있다. 예술작품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평화의 중요성이 그 빛을 발하고 있다. 전시는 2019년 7월 31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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