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외화 덕에 한강의 기적"…'징용소송 기각' 사유 논란
강제징용 피해자들, 日기업에 소송 '각하'
18년 대법은 日기업 배상책임 인정 판결
판결문 '한강의 기적', '국익' 등 표현 논란
선고기일도 급히 변경…"위법 없다" 해명
[서울=뉴시스]조성우 기자 =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 고(故) 임정규씨의 아들 임철호(가운데)씨가 지난 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일본제철 주식회사와 닛산화학 등 16곳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이 각하된 뒤 법원을 나서며 취재진 질문을 받고 있다. 2021.06.07. [email protected]
8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4부(부장판사 김양호)는 전날 강제징용 피해자 송모씨 등 85명이 일본제철 주식회사 등 일본기업 16곳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각하 판결했다.
재판부는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에 따라 개인청구권이 완전히 소멸된 것까지는 아니라도 대한민국 국민이 일본 국가나 일본 국민을 상대로 소를 제기해 권리를 행사하는 것은 제한된다고 해석했다.
나아가 재판부는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청구를 인용하는 판결이 확정되고 강제집행까지 마쳐질 경우 국제적으로 초래될 역효과 등도 이번 판결에 고려했다.
이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지난 2018년 10월30일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4명이 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재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한 것과 다른 결론이다.
이를 두고 법조계 일각에서는 전날 재판부 판단이 기존 대법원 판결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결과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또 선고 결과와 더불어 판결문 속 표현들로 인한 여진도 계속되고 있다.
우선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타결된 무상 3억달러가 과소해 개인의 손해배상 청구권협정에 포함된다고 볼 수 없다'는 주장을 배척하기 위한 근거로 '한강의 기적'을 언급했다.
재판부는 "1인당 국민소득에서 대한민국이 일본국에 접근한 현재의 잣대로 당시 낙후한 후진국 지위에 있던 대한민국과 이미 경제대국에 진입한 일본국 사이에 이뤄진 과거의 청구권협정을 판단하는 오류를 범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당시 대한민국이 청구권협정으로 얻은 외화는 이른바 '한강의 기적'이라고 평가되는 세계 경제사에 기록되는 눈부신 경제 성장에 큰 기여를 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한일청구권협정은 대한민국 및 그 국민의 청구권 등에 대한 보상을 일괄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조약으로 일괄처리협정에 해당한다"며 "단지 양국의 외교적 보호권만 포기하는 합의를 담은 조약이라고 해석하기 어렵다"고 했다.
[부산=뉴시스] 3·1절 100주년인 지난 2019년 3월1일 오후 부산 동구 일본총영사관 인근 정발 장군 동상 앞에 강제징용 노동자상이 놓여진 가운데 '3·1운동 100주년 부산시민대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뉴시스 DB). [email protected]
재판부는 "만약 국제재판에서 패소하는 경우 대한민국 사법부의 신뢰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게 되고 이제 막 세계 10강에 들어선 대한민국의 문명국으로서의 위신은 바닥으로 추락한다"고 판시했다.
이어 "여전히 분단국의 현실과 세계 4강의 강대국들 사이에 위치한 대한민국으로서는 일본과의 관계가 훼손되고 이는 결국 미합중국과의 관계 훼손까지 이어져 헌법상 '안전보장' 훼손과 '질서유지' 침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더욱이 일본과 사이에서는 '강제징용 사안' 외에도 '영유권 주장 사안', '위안부 사안'이 있는바 세 사안 모두 또는 일부라도 국제 재판에 회부돼 한 사안이라도 패소하면 국격 및 국익에 치명적 손상을 입을 것이 명백하다"고 말했다.
이 같은 판단에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등 15개 시민단체는 "일본 보복과 나라 걱정에 법관으로서 독립과 양심을 저버린 판단을 했다"며 "개인보다 국가가 우선이라는 논리를 별다른 부끄러움 없이 판결문에 명시했다"고 비판했다.
이와 더불어 재판부가 당초 10일로 예정됐던 선고를 당일 급하게 앞당겨 판결한 것을 두고도 논란이 일었다. 원고 측은 기습적으로 선고기일을 변경한 것이 황당하다는 입장이었다.
재판부는 "선고기일 변경은 당사자에게 이를 고지하지 않더라도 위법하지 않은바 이 사건은 법정의 평온과 안정 등 제반 사정을 고려해 선고기일을 변경하고 소송대리인들에게 전자 송달 및 전화연락 등으로 고지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재판부는 판결과 관련해 불거질 논란을 의식한 듯 "이 법원은 헌법기관으로서 헌법과 국가 그리고 주권자인 국민을 수호하기 위해 위와 같이 판결할 수밖에 없었다"고 판단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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