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천 해인사 영산회상도'·'김천 직지사 석가여래삼불회도' 국보된다
[서울=뉴시스] 합천 해인사 영산회상도 (사진=국가유산청 제공) 2024.10.31.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이수지 기자 = 국가유산청은 조선 후기 후불도인 보물 '합천 해인사 영산회상도'와 '김천 직지사 석가여래삼불회도'를 국가지정문화유산 국보로 지정 예고했다고 31일 밝혔다.
1997년 보물로 지정된 '합천 해인사 영산회상도'는 화면 아래 화기(畵記)를 통해 1729년(조선 영조 5)이란 제작 연대와 의겸(義謙)을 비롯, 여성(汝性), 행종(幸宗), 민희(敏熙), 말인(抹仁) 등 화승(畵僧)들을 명확히 알 수 있는 불화다.
이 가운데 제작 책임자 격인 의겸을 붓의 신선 '호선(毫仙)'이란 특별한 호칭으로 기록해 그의 뛰어난 기량을 짐작할 수 있다.
합천 해인사 영산회상도는 비단에 색을 칠해 석가여래가 설법하는 장면을 묘사했다. 가운데 석가여래는 크게 부각시키고 나머지 도상들은 하래부터 위로 갈수록 작게 그려 상승감을 표현했다.
국가유산청은 "전체적으로 조선 후기 불화 색채를 유지하면서도 제자들 얼굴 표현과 세부 문양에서는 조선 전기 불화의 전통을 확인할 수 있다"며 "불·보살 얼굴과 신체를 금으로 칠하고 불·보살을 포함해 모든 존상 복식 문양을 가는 금선으로 세밀하게 표현해 화려함을 더하는 등 뛰어난 예술성을 지녔다"고 평가했다.
[서울=뉴시스] 김천 직지사 석가여래삼불회도 (사진=국가유산청 제공)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1980년 보물로 지정된 '김천 직지사 석가여래삼불회도'는 가운데 영산회상도, 왼쪽에 약사여래설법도, 오른쪽에 아미타여래설법도 3폭으로 구성됐다. 현존 삼불회도 중 3폭이 온전하게 남은 가장 오래되고 가장 큰 작품이다.
세관(世冠)을 비롯, 신각(神覺), 밀기(密機) 등 화승들이 1744년(조선 영조 20) 이 작품을 완성해 직지사 대웅전에 봉안했다.
이 작품은 조선 후기에 유행한 공간적 삼불회도의 전형으로 평가받는 불화다. 장대한 수많은 등장인물을 섬세하고 유려한 필치로 장중하게 그려냈다. 3폭 모두 사방 테두리 부분에 '조상경'에 근거한 원형의 범자문 진언을 배치해 상징성을 부여한 점도 주목된다.
세 폭의 아래에 제작에 참여한 화승들의 정보가 담긴 화기가 있다. 이를 통해 직지사 화승 외에 인근 사찰의 화승들이 다수 참여했음을 알 수 있다.
국가유산청은 "화승 여러 명이 공동작업으로 작품을 완성했지만 유기적 분업과 협업을 통해 세 폭 모두 한 사람이 그린 듯 통일감이 느껴진다"며 "화기에 화승 역할에 따라 차례를 구분하고 화승의 이름 뒤에는 소속 사찰이 함께 기록돼 있어 화승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했다.
[서울=뉴시스] 나전국화넝쿨무늬상자 (사진=국가유산청 제공) 2024.10.31.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국가유산청은 이날 '나전국화넝쿨무늬상자', '화성 용주사 감로왕도', '양양 선림원지 출토 금동보살입상', '상교정본자비도량참법'은 국가지정문화유산 보물로 각각 지정 예고했다.
'나전국화넝쿨무늬상자'는 지난해 국가유산청이 일본에서 환수한 유물로, 뚜껑과 몸체, 안쪽에 공간을 분리하는 속상자로 구성되어 있다.
이 유물은 목심저피법으로 제작됐다. 이 기법은 침엽수 계통 나무로 만든 백골 위에 천을 바르고 그 위에 골회(骨灰)를 입혀 자개를 붙인 다음 여러 번 옻칠해 마감하는 전형적인 고려 나전칠기 제작 방식이다.
표면에 전체적으로 국화넝쿨무늬 770개가 배치됐다. 부수적으로 마엽무늬(원을 중심으로 한 수평, 수직, 사선의 조합으로 이뤄진 기하학적 무늬), 귀갑무늬(거북 등딱지 모양을 띤 무늬), 연주무늬(점이나 작은 원을 구슬을 꿰맨 듯 연결해 만든 무늬)가 사용됐다.
국화넝쿨무늬는 얇게 갈아낸 자개를 오려내어 붙인 줄음질 기법으로, 마엽무늬와 귀갑무늬는 자개를 가늘게 잘라내 끊어가며 무늬를 표현하는 끊음질 기법으로 표현했다. 넝쿨무늬의 줄기는 황동선을 꼬아 사용했다.
크기는 세로 18.5㎝, 가로 33.0㎝, 전체 높이 19.4㎝로 일반 고려 나전칠기 경함(經函)보다는 크기가 작은 편이다. 몸체 앞, 뒤, 옆면에는 경첩이나 금속제 못을 박았다가 빼서 패인 흔적이 있어 큰 경함을 작게 개조한 것으로 추정된다.
국가유산청은 "나전을 비롯한 고려 후기 우수한 공예 기술을 다양하게 확인할 수 있다"며 "보존상태도 뛰어나고 나전 고유의 빛깔이 잘 남아 있으며 문양의 정교함이 돋보인다는 점에서도 높은 학술적·예술적·기술적 가치를 지녔다"고 평가했다.
[서울=뉴시스] 화성 용주사 감로왕도 (사진=국가유산청 제공")2 024.10.31.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화성 용주사 감로왕도'는 화기를 통해 1790년(조선 정조 14)이란 제작 연대, 상겸(尙兼), 홍민(弘旻), 성윤(性玧), 유홍(宥弘), 법성(法性) 등 제작 화승을 명확히 알 수 있는 불화다.
정조는 1789년 아버지 장헌세자(1735~1762) 무덤을 화성으로 옮겨 현륭원으로 조성하고, 명복을 빌기 위해 건립한 사찰인 용주사를 창건한 뒤 이곳에서 수륙재를 열었다. 이 수륙재에 사용될 목적으로 제작된 것이 이 작품이다. 조성 후 대웅보전에 모셔졌다.
이 작품의 위에는 불·보살의 강림을, 아래에는 음식을 베푸는 시식(施食) 의식과 무주고혼(無主孤魂)을 배치해 천도 의식을 통해 불·보살의 구제를 받아 망자가 천도하는 과정을 유기적으로 표현했다.
화면 위에 지옥에 빠진 어머니를 구했다는 부처님 10대 제자 중 목련존자를 그렸다. 이는 효사상을 강조하는 유교적 표현이다.
화면 하단에 그려진 죽음 장면 중 18세기 풍속화를 연상시키는 여러 장면들과 당시 유행했던 소설 삽화에 영향을 받은 표현이 있어 조선 후기 불화에 미친 일반 회화의 영향 관계를 파악할 수 있다.
국가유산청은 "화면의 안정된 구도나 세부 표현 기법에서 완성도가 높다"며 "18세기 후반 불화에 수용된 일반 회화의 양상만이 아니라 불교의 구제신앙과 유교의 효사상이 결합하는 양상을 보여주는 정조대 대표작"이라고 평가했다.
[서울=뉴시스] 양양 선림원지 출토 금동보살입상 (사진=국가유산청 제공)2 024.10.31.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양양 선림원지 출토 금동보살입상'은 2015년 강원도 양양군 선림원지에 승려들이 거주하던 승방터로 추정되는 곳에서 발굴됐다.
선림원은 통일기 신라 선종의 요람이다. 존속 기간이 길지 않지만, 9세기 불교사에서 뚜렷한 흔적을 남긴 순응 염거화상(?∼844), 홍각선사(814∼880) 등이 머물며 그 계보를 이어간 역사적 의의가 큰 사찰이다.
광배를 포함한 높이가 66.7㎝로, 정확한 출토지를 알 수 있는 발굴품 중 가장 큰 보살상이다. 국가유산청은 "이 작품은 이례적으로 광배와 대좌까지 온전히 갖춘 희귀한 사례"라고 평가했다.
엎어진 채로 발견된 이 작품의 도금 상태로 볼 때 제작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매몰된 후 1100여 년이 지나 원래 봉안 장소에서 그대로 발견된 것으로 추정된다.
광배와 대좌 장식 일부가 떨어져 나갔지만 전체적으로 도금이 거의 벗겨지지 않아 상태가 양호하다.
보살상, 광배, 대좌, 영락 심지어 정병도 각각 별도로 만들어 탈부착이 가능하도록 제작됐다.
머리카락은 남색 안료로 칠하고 얼굴의 눈썹과 눈, 콧망울, 수염, 머리카락과 이마를 경계 짓는 발제선 등을 먹으로 그려 넣었다.
보살상 얼굴에서 보이는 도드라진 윗입술 표현과 입체적 옷주름, 천의와 낙액(絡腋) 등은 9세기 보살상의 우수한 조형적 특징을 잘 보여준다.
[서울=뉴시스] <상교정본자비도량참법 (사진=국가유산청 제공) 2024.10.31.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상교정본자비도량참법'은 여러 경전에 들어 있는 참회 방법과 내용을 일정한 체계로 엮은 '자비도량참법'을 후대에 다시 교정하고 정리한 책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책이 중국에서 전래된 고려 때부터 여러 차례 간행되어 조선시대까지 많이 전파됐다.
이번에 보물로 지정 예고된 '상교정본자비도량참법'에는 조선시대 문신인 김수온이 쓴 발문(跋文)이 남아 있다.
이를 통해 이 책을 찍기 위한 목판을 1474년 세조 비 정희왕후가 돌아가신 세종과 소헌왕후, 세조와 아들 의경왕(후일 덕종), 예종, 성종 비 공혜왕후 등의 극락천도를 기원하며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1481년(성종 12)에 인쇄하며 적은 발문을 통해 예종 계비 안순왕후가 양조모(養祖母)인 신숙화의 처 김씨의 영가천도를 위해 펴냈음을 알 수 있다.
국가유사청은 "조선 왕실이 발원해 제작을 주도한 왕실판본으로, 간행과 인출 시기 및 목적까지 명확해서 가치가 있다"며 "이번 지정 예고 대상은 10권 5책의 완질본이고 보존상태가 우수한 선본이므로 자료적 가치가 높다"고 평가했다.
현재 이 판본의 다른 불완전본은 보물로 이미 지정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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