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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넘어북한] 김정은, '부패와의 전쟁'... 마침표 찍을 수 있을까?

등록 2020.11.26 1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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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평양의대나 김일성고급당학교 사건은 대표사례

당, 군, 내각 산하 모든 기관, 사회 전반에 부패 만연

부패가 사회 안정과 권력 기반 위협뿐 아니라 내각 중심 경제도 방해

김정은위원장 사안의 심각성 인식하는 듯

오랜 물자 부족 탓인 만큼 충분한 경제발전만이 극복 방안

【서울=뉴시스】강영진 박수성 기자 =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사회 안정과 유지 위해 '부패와의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올해 2차례나 노동당 정치국회의에서 특정 부패 문제를 다뤄 공식적으로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부패와의 전쟁을 끝까지 마칠 수 있을까요? 이번 주 <창넘어 북한>은 북한에 만연해 있는 부패 문제를 고민해 봤습니다.
 


안녕하십니까. 뉴시스 북한 에디터 강영진입니다.

오늘은 부패와 전쟁을 벌이는 북한 김정은위원장에 대해 말씀을 드려보겠습니다.

지난 15일 열린 북한 노동당 정치국회의에서 교육기관들과 사회 전반에서 나타나고 있는 비사회주의적 행위들에 대하여 분석한 자료가 통보되고 이를 결정적으로 뿌리뽑기 위한 문제가 심각히 논의됐다고 다음날 노동신문이 보도했습니다.

회의에서는 특히 엄중한 형태의 범죄행위를 감행한 평양의과대학 당위원회와 이를 비호, 묵인, 조장시킨 노동당 담당 부서, 사법검찰, 안전보위기관들의 극심한 직무태만을 신랄히 비판했다고 노동신문은 전했습니다.

평양의대에서 벌어진 엄중한 범죄와 이를 방임한 노동당과 사법기관들의 직무태만이 평양의대에서만 국한해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 교육기관들과 사회전반에서 나타나고 있는 부패현상이 단적으로 드러난 것이라는 뉘앙스가 느껴집니다.

지난 2월말에도 '당중앙위원회 일부 간부들이 극도로 관료화되고 권세를 부리는데다가 당의 핵심 인재를 길러내는 당간부 양성기지에서 엄중한 부정부패현상이 발생했다'면서 노동당 조직지도부장 리만건을 해임한 적도 있습니다.

노동당 조직지도부는 '당속의 당'이라고 불릴 만큼 최고의 권력기관입니다.그런 부서의 책임자를 부패에 대한 책임을 물어 해임시킨 겁니다.

북한의 발표만으로는 부패행위의 구체적 내용을 알 수 없습니다.다만 이런 저런 소식통을 통해 알려진 내용들이 있습니다.

예컨대 평양의대 사건에 대해 탈북자들이 운영하는 데일리 NK는 '당간부 자식들인 평양의대 남학생 4명이, 여학생들에게 지속적으로 성적 학대를 가했고, 피해자 한 명이 극단적 선택을 했고, 그 부모가 가해자 처벌을 호소했지만, 평양의대와, 안전부, 중앙당 청원 담당까지 묵살하다가 들통이 나서, 가해 남학생들은 공개 처형되고, 평양의대 당위원회 일꾼 7명이 자강도 광산과 벌목장으로, 안전부 책임자들은 황해북도 농장으로 추방됐다'고 보도했습니다.

또 지난 2월말 리만건 조직지도부장이 해임된 사건은 노동당 핵심 간부들을 양성하는 김일성고급당학교 부교장 등 여러 명이 입학과 성적 채점 과정에서 돈을 받고 특혜를 준 일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돈을 주지 않는 학생들이 불이익을 당했을 정도였다고 하니까 부패가 일상화됐을 정도로 심했다고 봐야겠지요.

리만건 부장이 직접 연관되진 않았지만 조직지도부장이 김일성고급당학교 교장을 겸임하기에 책임을 지고 해임됐지만 부교장과 기타 관련자들이 처형되는 등 혹심한 처벌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최근 기억나는 대표적 사례들만 말씀드렸지만 북한에서는 하루가 멀다고 당과, 군, 내각 산하의 모든 기관들에서 부패문제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일일이 보도되지 않아서 그렇지 뒤늦게 파악되는 사례들을 모으다 보면 북한이란 사회는 하나에서 열까지 썩지 않은 곳이 없다는 생각이 저절로 듭니다.

김정은위원장도 북한의 부패문제의 심각성을 잘 아는 것 같습니다.2017년 12월에 열린 노동당 세포위원장 대회 연설은 물론 연초에 발표하는 신년사 연설에서도 매년 부패척결 문제를 빠트리지 않고 언급해왔습니다.평양의대나 김일성고급당학교의 부패 사건 처리도 김정은의 결심이 없으면 불가능했을 겁니다.

그런데 김정은이 왜 부패와 전쟁을 벌일까요?여러가지 설명이 가능할 것 같네요.

가장 대표적인 설명이 자신의 정권 기반을 안정시키고 세대교체를 이루기 위해 부패청산을 내세워 기득권 세력을 제거했다는 시각이 있습니다.이 관점은 집권 초기 장성택을 비롯한 100여명을 처형, 숙청한 일을 잘 설명합니다.

그런데 2016년 이후부터는 고위층을 숙청, 처형하는 사례가 거의 사라지면서 세대교체를 위한 부패척결이라는 설명은 잘 들어맞지 않게 됩니다.

그보다는 보다 근본적으로 북한 사회 전반에 만연돼 있는 부패를 제거해야만 사회 안정을 이룰 수 있고, 무엇보다 내각을 중심으로 한 경제 발전을 달성할 수 있다는 전략적이고 원칙적인 관점에서 부패와 전쟁을 벌이고 있다는 설명이 더 잘 맞을 것 같습니다.

잠시 화제를 돌려 보겠습니다.

저는 올해 만으로 예순한 살입니다.제가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이니 대략 1965년 정도의 일인 것으로 기억합니다.

제가 살던 곳은 서울의 대방동이었습니다.어머니를 따라 몇 차례 동사무소에 간 적이 있었습니다. 주민등록등초본과 같은 서류를 떼기 위해서였을 겁니다.

어머니는 어떤 날은 아침 일찍 서둘러 나가셨고 드물지만 어떤 날은 오후에 가시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 어머니한테 왜 아침 일찍 가시느냐고 여쭤봤습니다. 어머니의 답변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동사무소 직원한테 담뱃값이라도 주지 않으면 서류를 떼는데 하루 온종일 걸린다는 겁니다. 아침 일찍 가는 날은 아침에 접수해 놓고 장이라도 보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오후 늦게 동사무소로 가서 서류를 받을 수 있었던 거지요.반면에 시간이 급한 경우엔 여지없이 담뱃값을 주고 서류를 떼야 했을 겁니다.

당시 버스비가 1-2원이었으니까 담뱃값은 5-10원 정도였을 겁니다. 지금으로 치면 한 3천원 정도되는 돈 아닐까 싶네요. 큰 돈은 아니지만 팍팍한 살림을 꾸려야 하는 주부였던 어머니는 담뱃값 아끼려고 아침부터 서둘러 동사무소를 찾았던 겁니다.

이처럼 우리 사회도 50-60년 전엔 말단부터 최상층까지 부패하지 않은 곳이 없었습니다.

지금은 주민등록등초본은 돈 한 푼 안들이고 책상에 앉아서 프린터로 뽑을 수 있는 세상이 됐습니다.요즘도 권력형 비리 사건이 끊이질 않는 걸 보면 상층부의 부패는 아직도 근절되지 않은 것 같지만 그래도 일반 서민들이 살면서 부패를 직접 경험하는 일은 50년 전보다는 크게 줄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 북한의 부패 문제는 50년 전 우리 사회와 비슷한 수준일지도 모릅니다.

왜 그럴까요?북한이 모든 것이 부족한 사회이기 때문일 겁니다.

1980년대 중반까지 북한은 물자가 풍족하진 않더라도 크게 부족하진 않은 사회였습니다. 국가가 북한 주민 대부분을 상대로 생필품을 배급할 수 있었기 때문이지요. 생산과 소비를 계획에 맞춰 실행하는 사회주의 계획경제가 어느 정도 잘 굴러가던 시기였습니다.

그러다가 1980년대 들어 공산권 국가 전체가 경제난에 빠지면서 북한도 경제난에 빠집니다.공산권 경제 블록이 붕괴한 뒤인 1990년대 들어서는 가장 기본적인 식량 배급마저 국가가 감당할 수 없게 되면서 수십만 명이 굶어 죽는 '고난의 행군'이 벌어졌지요.당연한 말이지만 당시 굶어 죽은 사람들은 대부분 북한의 하층민들입니다.

'고난의 행군' 이후 북한의 경제는 어느 정도는 나아졌지만 기본적으로 궁핍한 상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수십 년 동안 자원 부족이 이어지면서 권력이 센 부문에서 자원을 독점하는 현상이 진행됐을 겁니다.

그 결과 북한의 경제는 당과 군, 내각이 각각 30%, 40-50%, 20-30% 정도를 차지하는 기형적 형태가 됐습니다. 권력이 센 만큼 더 많은 자원을 차지할 수 있었던 거지요.

내각에 20-30%밖에 돌아가지 않는다는 건 북한 주민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일반 주민들에 주어지는 자원의 몫이 그렇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궁핍경제로 인한 어려움은 중하층 주민들이 전부 감당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겁니다.

이런 상태가 언제까지 계속될 수 있을까요?글쎄요, 가난한 나라라고 해서 무너진다는 법은 없을 겁니다.
 
다만 사회 안정은 기대할 수 없을 겁니다. 또 김정은의 권력 기반도 위협을 받을 위험성이 다분히 커집니다.당연히 새로 권력을 잡은 집권자로선 권력층이 가진 재원을 조금이라도 빼앗아 내각으로 돌리고 싶을 겁니다. 세상의 부조리에 맞서려는 의지가 강한 젊은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겠지요.

부분적이나마 이것이 아직 30대 청년인 김정은이 부패와 전쟁에 나서는 이유에 대한 설명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요, 북한이 모든 부문에서 부패하게 된 단초를 제공한 건 김정은의 아버지 김정일이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1970년대 초 후계자로 지정되면서 김정일은 자기 세력을 형성하기 위해 매일같이 파티를 열고 참석자들에게 막대한 선물을 줍니다.당시 후계자 신분이었지만 그가 가진 돈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 돈을 어떻게 댔을까요?김정일에게 집중된 권력이 비결입니다.

예컨대 자기가 즐겨 찾는 파티장소인 특각에 특정 지역, 또는 특정 부문의 경제를 독점하는 권리를 주는 겁니다. 거기서 생기는 이익으로 자신의 파티와 선물정치를 감당하도록 한 겁니다. 물론 남는 돈은 이른바 충성자금으로 받아 챙겼지요. 특각을 운영하는 사람들로선 국물이 떨어지는 일이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었습니다.

김정일은 한 군데서만 파티를 열고 선물을 뿌린 것이 아닙니다.그 결과 김정일이 자주 찾는 전국 곳곳의 특각에 특권이 주어졌습니다.김정일은 또 자신의 권력을 지켜주는 여러 특수기관에도 비슷한 특권을 주었습니다.

모든 권력기관들이 저마다 이권을 챙긴 끝에 결국 인민경제를 책임지는 내각이 관할하는 자원은 전체의 20% 전후까지 쪼그라들게 됐지요. 이런 부패구조의 최상층은 바로 김정일 본인이었습니다.
 
지금은 노동당 39호실로 불리는 조직이 바로 증거입니다. 39호실은 지금 금광과 같은 최고의 알짜 특권을 직접 보유하고 있는 건 물론이고 다른 모든 권력기관으로부터 충성자금을 거둬들입니다. 그것이 김정일이 북한을 통치하는 당자금의 원천이 된 겁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런 경제구조는 시장경제가 발전하기 이전까지 왕과 귀족들이 이권을 장악했던 거의 모든 전근대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39호실이 여전히 운영되고 있으니 김정은도 김정일이 만든 부패구조에 상당한 정도로 의존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겁니다. 결과적으로 김정은위원장이 현재 벌이고 있는 부패와의 전쟁은 '내 건 빼고'라는 수식어가 빠져 있는 셈입니다.

부패와의 전쟁은 어느 시대, 어느 정권도 소홀히 할 수 없는 과제입니다. 부패를 방치해 걷잡을 수 없게 되면 사회안정을 크게 해치고 결국 그 사회가 붕괴하고 해체되는 가장 큰 원인이 됩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경험은 경제가 충분히 발전해서 재원이 사회 수요를 상당한 정도로 뒷받침할 정도가 되지 못하면, 다시 말해 심한 궁핍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부패에서 벗어날 길도 요원하다는 걸 보여줍니다.

김정은이 벌이는 부패와의 전쟁도 궁극적으로는 얼마나 경제 발전을 이루느냐에 따라 성패가 달라질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는 겁니다.

현재로선 김정은이 경제발전을 위해 핵을 포기하고 개혁, 개방에 나서는 전략적 선택을 할 것 같지 않습니다. 그만큼 현재 김정은이 벌이는 부패와의 전쟁이 커다란 성과를 내기 어렵겠지요.

그래도 부패와의 전쟁을 포기하는 것보다는 열심히 하는 것이 북한 주민들에게 좋은 일이겠지만요.

창넘어 북한,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창넘어북한] 김정은, '부패와의 전쟁'... 마침표 찍을 수 있을까?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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