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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코포니, 태도가 음악을 만든다…그건 해방구가 된다

등록 2023.12.18 09:5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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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피드'를 뒤집은 타이틀 'DIPUC' 정규 3집으로 호평

[서울=뉴시스] 카코포니. (사진 = 뮤지션 측 제공) 2023.12.18.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카코포니. (사진 = 뮤지션 측 제공) 2023.12.18.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태도가 음악을 만든다.

싱어송라이터 카코포니(김민경)의 정규 3집 'DIPUC'가 항변하는 사실이다. 그녀의 음악은 이전까지 절규 혹은 절망과 혈연관계였다. 이를 감당할 수 없어 노래로 토해내는 것이 그녀의 작업 방식이었다.

하지만 로마 신화 속 '연애의 신(神)'인 큐피드(그리스 신화에서는 '에로스'로 부른다)를 뒤집은 제목을 내세운 이번 앨범에선 자신에 대한 절규가 아닌 확신, 절망이 아닌 희망을 노래한다.

그런데 카코포니는 함부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일은 택하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폭력적일 수 있는 큐피드 식 사랑의 성사 방식을 노래 안과 무대 위에서만 구현한다. 그러면서 일종의 해방구를 만들어냈다. 무대 밑 한없이 친절한 김민경은 무대 위에서 어떠한 것도 될 수 있는 미지수 카코포니가 된다. 

카코포니의 예명 카코포니(cacophony)는 '불협화음'이라는 뜻이다. 카코포니는 삶에서 불화하는 것들을 나름의 방식으로 조정해나가면서 자신만의 방식대로 협화음을 찾는 경지에 이르렀다. 다음은 최근 홍대 앞에서 카코포니와 만나 나눈 일문일답.

-카코포니 씨랑 대면은 처음인데, 제가 상상했던 이미지랑은 조금 다릅니다.

"맞아요. 너무 다르죠. 보통은 무대 밑 저를 처음 보시면 아예 못 알아보세요. 알아보신 다음에 처음 하시는 말은 '왜 이렇게 밝으세요?'죠. 하하."

-들려주시는 음악이 다소 어두운데 무대 위에선 폭발적인 에너지를 보여주시니까요. 근데 이번 앨범 'DIPUC'는 또 기존 앨범과 많이 다릅니다.
 
"무대는 의미적으로도 공간적으로도 되게 특이한 곳이라고 생각을 해요. 무대에선 무엇을 해도 사람들이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이거든요. 그래서 제겐 무대가 '해방'이자 '자유'로 다가와요. 그래서 무대에 서는 걸 굉장히 좋아해요. 사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한국 사회에 어떻게든 맞춰온 사람이거든요. 그렇게 태어나지는 않았는데 남한테 사랑 받지 못하는 게 두렵고 남한테 인정 받지 못하는 게 두려워서 굉장히 이상한 형태로 저를 구겨 넣어서 살았던 것 같아요. 근데 무대라는 공간에서는 자유롭게 할수록 사람들이 박수를 쳐주고 멋지다고 해주시니까, 감춰오고 숨겨왔던 면을 폭발적이고 편안하게 보여줄 수 있는 공간이라고 느꼈죠. 그래서 저는 집보다도 무대가 더 편해요. 너무 좋아요."

-카메라 앞에서도 그런가요?
[서울=뉴시스] 카코포니. (사진 = 뮤지션 측 제공) 2023.12.18.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카코포니. (사진 = 뮤지션 측 제공) 2023.12.18.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카메라 앞에서도 약간 그런 느낌을 받아요. 카메라가 켜지는 순간에는 제가 뭘 해도 되니까요. 그게 이상한 게 아닌 것이 되니까요. 일상생활에서 만약 제가 이상한 표정을 짓거나 이상한 행동을 하면 진짜 이상한 사람이 되거든요. 무대 위나 카메라 앞에서 잘 풀어내다 보니까 일상생활에서 이렇게 고장나지 않고 그냥 잘 살고 있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무대 위랑 너무 다르니까 오히려 더 이상하다고도 해요. 하하."

-이상하지는 않아요. 하하. 더 건강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기 분리가 명확한 거잖아요. 음반 얘기를 해보죠. 1집 '화(和)'는 잘 알려진 것처럼 어머니가 주로 대상이었고, 2집 '몽(夢)'은 사랑을 노래했죠. 이번 앨범 작업은 어떤 것이 모티브가 됐나요?

"'문소문'(카코포니와 거누의 듀오) 합주하다가 갑자기 멜로디의 처음부터 끝까지와 특정 부분의 가사가 나왔어요. 그게 작년에 싱글로 공개됐던 '황홀한 실종'이었어요. 보통 이렇게 제게 곡이 많이 찾아오긴 하는데, 이 곡은 제가 썼던 곡들과는 너무 다른 거예요. 원래는 제가 항상 상처를 받았던 입장이나 슬펐던 입장에서 노래를 하거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할 거야 같은, 겨우 겨우 쥐어짜는 노래들을 많을 했거든요. 그런데 '황홀한 실종'은 제가 부르는 태도나 멜로디가 이전과는 너무 달랐어요. 상대방을 유혹하고 지배하려는 태도가 나와서 재밌다고 느꼈죠. 제가 그런 태도의 사람이 된다는 게 제 성향상 너무 안 어울린다고 생각했는데 노래를 부르는 방식과 폴댄스를 하면서 다듬어진 몸 때문에 그런지 그런 태도로 노래해도 어울리네라는 생각으로 바뀌었죠. '그럼 이런 분위기로 곡을 써볼까'라는 생각에서 시작한 앨범이에요. 웃기게도 이 곡은 다른 버전으로 앨범에 실리게 됐지만요."

-트랙리스트 배치가 확실한 서사가 있더라고요.

"1번 트랙('당겨요, 바로 지금')부터 7번 트랙('없어')까지 가사는 제가 직접 들었던, 상처 받았던 말들이에요. 이 글들을 쓰면서 되게 힘든 지점들이 많았어요. 끔찍한 상황을 복원해 제가 거기로 들어가서 그 상황을 계속 떠올려야 했으니까요."

-힘든 걸 정면으로 마주하는 작업이었네요.

"원래 카코포니였다면 상처 받았던 입장을 그대로 노래했을 텐데 '황홀한 실종' 이후 제가 들었던 말을 내뱉는 사람이 돼보자고 생각했죠. 사실은 그게 정말 어려웠어요. 제 성향이랑 너무 안 맞다 보니까 트랙을 쓰는 게 되게 어려웠고 보컬이 잘 안 묻어났어요. 그래서 굉장히 녹음을 많이 했고, 제 보컬을 굉장히 많이 바꿨어요. 사람들은 '이전 카코포니 목소리네'라고 생각을 할 수 있지만, 상처를 준 입장이 계속 돼보면서 노래를 했죠. 그렇게 하다 보니 이 말들이 너무 별 게 아닌 거예요. 멋있는 지점이 진짜 하나도 없고 오히려 비어 있었죠. 그 말들이 '별 의미가 아니었구나'를 깨닫고 나서 오히려 제가 겪었던 트라우마적인 상황들을 치료할 수 있었어요."

-8번 트랙 '마법'부터는 또 어떤 변화가 시작되는 건가요?

"'마법' '프시케'(9번 트랙) '변화'(10번 트랙)는 제가 다시 원래 입장으로 돌아와서 변화하는 과정을 담고 있어요. 이제 마지막에서 '살아남은'(11번 트랙)이랑 '미라클!'(11번 트랙)에서는 밑바닥까지 갔지만 결국 이겨냈고 내 주변에는 날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고 난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어 행복하다고 노래해요. 그런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고 싶다는 거죠. 앨범 마지막 트랙인 '황홀한 실종'은 갑자기 흘러나온 노래라 원래 싱글이나 EP 단위로 내려고 했어요. 근데 제가 생각보다 해결하지 못한 지점들이 너무 담긴 노래가 됐고 그건 앨범 단위로만 해결이 가능하다 싶어서 13곡이나 담게 됐죠."

-여태까지 내셨던 앨범 중에서 가장 자가 치유가 된 앨범이었나요?
[서울=뉴시스] 카코포니. (사진 = 뮤지션 측 제공) 2023.12.18.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카코포니. (사진 = 뮤지션 측 제공) 2023.12.18.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그랬던 것 같아요. 다른 앨범들은 상처를 겨우 드러내는 데 급급했던 앨범이라면 이번 앨범은 직시를 할 수 있어야만 쓸 있던 말들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치유가 많이 된 것 같아요. 상처를 명확히 인지를 한 상황이었던 거죠."

-달라진 보컬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셨나요?

"일단은 힘을 정말 많이 빼려고 노력했어요. 그러면서도 감정이나 어떤 톤들이 매력적으로 들리게 하려고 발음에 특히 신경을 많이 썼어요. 저는 대중음악은 가사가 잘 들리는 게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하거든요. 발성, 발음, 리듬 타는 것, 뉘앙스에 대해 많이 연구를 했죠. 보컬 프로듀싱도 굉장히 신경을 많이 썼어요. 보컬이 정말 많이 겹쳐져 있고, 코러스도 세세하게 들어가 있어요. 미묘한 뉘앙스를 위해 공을 정말 많이 들였죠."

-앨범은 일종의 콘셉트 앨범 같아요.

"'황홀한 실종'이라는 곡이 나와서 이런 '내가 매혹적인 캐릭터로 분해 노래를 해봐야겠다'가 앨범의 시작이었고, '사랑을 강제적이고 매혹적으로 하는 사람이 누구 있었지'라는 생각을 하다가 그냥 '큐피드'가 떠올랐어요. 저는 큐피드가 화살을 쏴서 사랑하게 만든다는 게 너무 폭력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것이 뭔가 예쁘게 포장이 돼 있어 너무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죠. '내가 지금 되려고 하는 입장이 저런 입장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거죠. 근데 제가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는 것이라 큐피드를 뒤집어서 'DIPUC'로 쓴 거고요. 그리고 큐피드와 (큐피드의 연인인) 프시케의 사랑을 신화 속에서 제 내면의 과정으로 가져와보자는 생각에 프시케를 파트2에 가져왔어요. 둘이 결혼해서 나온 애가 헤도네(Hedone)라는 여신인데 '쾌락의 신'이더라고요. '살아남은' '미라클!'이 포함된 파트3에 '헤도네'를 붙인 이유죠."

-신화적 상상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데 도움이 많이 됐나요?

"도움이 됐어요. 만약에 이걸 제가 저의 언어로 설명을 했으면 이해하기가 더 어려웠을 것 같아요. 근데 올해 특이하게 '프시케'라는 언어 자체가 르세라핌, 뉴진스 같은 K팝 아이돌 가수들의 노래에서 굉장히 많이 인용 됐거든요. 대중에게 이 단어 자체가 노출되다 보니까 제가 앨범 소개를 쓰는 데도 훨씬 편하더라고요."

-카코포니 씨의 적극적인 태도 변화는 꾸준히 운동을 한 영향도 있어 보입니다.

"사실 폴댄스는 집 앞에 강습소가 있어 다니게 됐어요. 폴댄스를 하면서 벗은 몸을 처음으로 오래 응시하는 경험을 했는데 너무 좋은 거예요. 사실 제 몸을 다른 사람들이 섹슈얼하게 보는 것이 너무 두려웠어요. 근데 폴댄스는 마찰력 때문에 옷을 벗지 않으면 못 타요. 너무나 실용적인 이유로 옷을 벗어야 되는 거죠. 그것이 너무 좋았어요. 남한테 섹슈얼하게 보이는 게 아니라, 그냥 내 몸을 보는 게 멋있고 근육이 생기는 게 멋있어서 몸 자체를 드러내는 것에 대한 태도가 바뀐 거죠. 그런 변화에서 노래가 튀어나오지 않았나 생각해요."

-너무 진부한 얘기지만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를 경험한 실제 예네요.
[서울=뉴시스] 카코포니. (사진 = 뮤지션 측 제공) 2023.12.18.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카코포니. (사진 = 뮤지션 측 제공) 2023.12.18.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맞아요. 저는 그말을 너무 너무 경험한 사람이라서요."

-그래서 다른 여성 싱어송라이터들인 쓰다·예람·윤숭·장명선·정우 씨와 뭉친 운동 모임 '뮤지션 스포츠클럽'(뮤스클)이 너무 좋았습니다.

"전 정말 갑자기 음악 신(scene)에 앨범을 냈어요. 그러다 보니 동료라는 개념이 없었어요. 저랑 비슷한 음악을 하는 뮤지션을 만나기도 어려웠죠. 근데 제가 쓰다 씨의 프로듀싱을 맡게 됐고 쓰다 씨가 클라이밍 모임에 저를 초대하면서 음악 얘기 안 하고 그냥 운동을 하는 모임이 만들어졌어요. 음악 동료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게 너무 좋았죠. 근데 단톡방에서는 음악 얘기를 되게 많이 해요. 저와 장명선 씨, 정우 씨는 비슷한 시기에 정규 음반을 내서 서로 물어볼 것도 많았죠. 정말 든든한 동료 집단이 이제 생긴 것 같아요."

-인디신 에서 함께 음악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되게 중요할 거 같아요.

"너무 중요한 것 같아요. 가끔은 '나만 이렇게 의미 없는 일을 하고 있는 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요즘 같은 시대에 자본주의 관점으로 본다면, 정규 앨범을 만든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바보 같은 일이에요. 그런데 그 바보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이 옆에 두 명이나 더 있었으니 올해 너무 위로가 됐죠. 하하."

-이번 앨범으로 많이 성장을 하셨죠?

"네 많이 많이 성장을 했어요. '뭘 해도 하겠지'라는 마음이 크게 자리잡았어요. 옛날이라면 절대 엄두를 못 냈을 일인데 이걸 해냈다는 것 자체가 너무 저한테 큰 용기와 자신감을 줬어요. 또 제 많은 부분들 중에서 일부분만 강조해서 보여주는 방법을 배운 것 같아요. 아직까지 정확한 반응은 모르겠지만 그런 부분들이 일단 매력적으로는 비춰지고 있는 것 같아서 어느 정도는 목표를 달성한 것 같아 기분이 좋습니다."

-대중적인 것에 대한 카코포니 식의 타협이 가능했다고 보면 될까요? 그런 부분이 미학적으로 세련되게 잘 포장이 됐다는 거죠?

"스스로 포지셔닝이 애매했다고 느껴졌던 부분이 있었어요. 그러니까 예술을 토해내는 아티스트처럼 하는데, 정돈된 느낌은 아니었거든요. 사실 제가 되고자 했던 아티스트 그리고 제가 되고 싶었던 아티스트는 장인 같은 사람이더라고요. 그렇게 되려고 처음으로 노력했던 앨범이에요. 주변 반응 덕분에 일정 부분은 달성했다는 생각이 들고, 그래서 조금은 후련해요. 앨범을 낸 후에 항상 우울증이 찾아왔는데 이번엔 그렇지 않아요. 오히려 더 강해졌다는 느낌, 괜찮아졌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리고 '뭘 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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