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 누드 퍼포먼스 故 정강자, 화가로 다시 보기
아라리오갤러리 서울, 5년만에 개인전
'나를 다시 부른 것은 원시였다' 회화 40점 전시
정강자, <달과의 대화(The Conversation with the Moon)>, 1997, 캔버스에 유채, 73 x 60 cm © Estate of JUNG Kangja & ARARIO GA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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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화가 고(故) 정강자(1942-2017). 1960~70년대를 흔들던 한국 실험미술계의 '강자'였다.
국내 1세대 행위예술가로 1968년 대한민국 최초로 누드 포퍼먼스를 선보였던 대표적인 여성 아방가르드 작가다. 옷이 찢기며 상반신이 드러난 이 퍼포먼스로 정강자는 요즘말로 '관종', 여성 작가의 일탈로 매도됐다. 당시는 앵포르멜 일색의 화단으로 젊은 작가들의 반란이 일었고 그 중심에 정강자가 있었다. 예술과 일상의 경계를 허물고자 한 새로운 시도들은 규제되었고 여성주의적 작품들은 선정성 논란을 겪었다.
정강자는 1942년 대구 출생으로 홍익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해 1967년 '청년작가연립전'으로 등단했다. 군사정권과 이데올로기가 대립했던 1960-1970년대에 ‘신전(新展)’과 ‘제4집단’의 동인으로 활동하는 등 다양한 조형적 실험으로 사회적 발언을 시도하며 당시 상당한 주목을 받았다. 특히 자신의 신체를 이용한 행위 예술과 여성의 몸을 형상화한 작품들을 통해 기성 체제에 도전하고 여성의 몸에 대한 문제의식을 표출했다.
이같은 전위예술에 대한 정부의 감시와 제재로 1970년 8월에 연 개인전 '무체전'이 강제 철거되는 등 작품 활동에 어려움을 겪으며 중단했다. 이후 가족과 함께 싱가포르로 이주해 10여 년간 한국 미술계를 떠나 있었다. 작가의 사회적 문제의식과 주체 정신은 1982년 한국에 귀국하며 회화에서의 실험으로 이어졌고, 위암 말기 판정에도 작고 직전까지 작업에 전념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회의 속박에서 해방되어 주체성을 가진 여성으로 살고자 했던 예술가였다. 오랜 기간 정당한 평가를 못 받았던 그의 작업이 2000년대가 되면서 재조명되고 있다. 특히 올해는 '정강자 부활의 해'라고 해도 과언이다 아니다. 정강자가 참여했던 '한국 실험미술 1960-70년대' 전시가 현재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전시 중이며, 내년 초 로스엔젤레스 해머 미술관으로 순회 예정이다.
아라리오갤러리가 정강자의 부활에 앞장서고 있다. 지난 10월 '프리즈 마스터즈 2023'에 참가, 정강자의 1966년 자화상부터 1982년까지의 주요 작품을 알렸다.
작품은 지금 봐도 신선하고 획기적이다. 2018년 아라리오갤러리 서울 및 천안에서 동시 개최한 회고전 이후 5년 만에 다시 개인전이 마련됐다.
정강자, 뜨개질로 우주를(The Universe through Knitting)', 1995-96, 캔버스에 유채, 162 x 130 cm © Estate of JUNG Kangja & ARARIO GA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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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원서동에 위치한 아라리오서울은 '나를 다시 부른 것은 원시였다'를 타이틀로 정강자의 개인전을 오는 15일부터 선보인다. 강렬하고 풍부한 색채와 특유의 도전의식이 돋보이는 1995년부터 2010년까지 작품 세계에 주목한 회화 총 40점을 전시한다.
전시장 지하 1층 및 1층 공간은 정강자의 1990년대 작품세계를 조명한다.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작가는 중남미, 아프리카, 서남아시아, 남태평양 등 다양한 세계를 여행하며 이국적인 풍경과 인물들을 화폭에 담았다. 순수한 자연과 원시의 삶을 찾아 떠난 여정이었다. 낯선 세상을 탐험하며 마주한 장면들에 스스로의 꿈이 투영된 환상적 이미지를 접목하여 회화로 기록했다.
정강자, <도시의 여인들(City Women)>, 1996, 캔버스에 유채, 162 x 130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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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기 화면은 넓은 세계를 누비며 얻은 시각적 경험을 드러내는 동시에 역설적으로 더 깊숙한 작가의 내면세계를 보여준다. 다채로운 색상과 그만의 상상력이 돋보이는 구성으로 독자적인 초현실적 화면을 제작해 낸 시기다. 1990년대 후반부터는 보다 추상적이고 초월적인 형태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한복의 형상을 재해석하여 조형요소로 활용하는 등 모국의 전통을 상징하는 소재에 집중한 면모가 두드러진다.
정강자, <새와 여인(The Bird and a Woman)>, 1997, 캔버스에 유채, 61 x 73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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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강자, <연못 위의 모자(Mother and Son on a Pond)>, 2007, 캔버스에 유채, 61 x 73 cm © Estate of JUNG Kangja & ARARIO GA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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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층과 4층 공간에서는 정강자의 2000년대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원시적 풍경을 바탕 삼아 더욱 깊고 내밀한 내면세계를 탐구해 나아간 시기다. 스스로의 분신이자 아이콘(icon)이라고 여긴 야누스(Janus)의 형상이 화면에 자주 보인다. 우주 만물의 최소 단위를 상징하는 원에 인위적인 직선을 결합해 만든 반원은 말년의 화폭에 두드러지게 등장하는 요소다. 모든 형태를 기하학적으로 환원하는 실험에 집중한 흔적이 엿보인다.
어떤 상황에서도 예술을 삶 그 자체이자 궁극적 목적으로 삼았던 여성 예술가의 '꿈과 환상 그리고 도전'의식이 드러난다. '명작은 빛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전시는 12월30일까지.
정강자, <숲에서의 오수(The Nap in the Forest)>, 2004, 캔버스에 유채, 98 x 131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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