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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서, 눈이 부셔서 그렸다"…김보희 '자연이 되는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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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7-04-09 20:5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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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박현주 기자= 제주 작업실 정원의 싱그러움을 화폭에 담아낸 김보희 화백이 학고재갤러리에서 4년만에 개인전을 연다.
■제주에 작업실 짓고 작업한지 13년째
원시림같은 풍경에서 '씨앗'으로 생명력 경탄
학고재갤러리에서 4년만에 신·구작 36점 전시


【서울=뉴시스】박현주 기자 = "좋아서, 재미있어서, 눈이 부셔서 그렸다"는 그림은 생명의 환희가 넘친다. 초록의 싱그러움으로 절로 숨통이 터지고, 자연의 위대함을 느끼게 해준다.  

 제주에서 작업한지 13년, 금우(琴雨) 김보희 화백(65·이대 교수)이 4년만에 학고재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연다.

 지난 2013년 작업실 앞에 있는 '제주 바다'를 보여줬다면, 이번에는 다시 식물로 돌아왔다. ‘자연이 되는 꿈’을 주제로 신작과 구작을 모아 전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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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김보희 화백 개인전 '자연이 되는 꿈'
  거대한 초록 정원같은 대형 회화와 달리 신작은 '씨앗'에 집중했다. 마치 파인애플같아 보이기도 하는 씨앗은 자세히 보면 딱 그런 모습도 아니다.  표면에 기하학적 무늬가 시야를 가득 채워져 있다.

 김화백이 표현한 씨앗은 원래의 형태를 띠고 있는 경우도 있지만 상상에 의해 그려졌다.

 터질 듯 부풀어오른 열매 하나, 씨앗 한 톨은 그 자체가 생명력으로 가득한 하나의 우주다. 대상에의 몰입과 재해석을 통해 작가 자신의 내면적 성찰을 시도하려는 면모로 이번 전시 타이틀(자연이 되는 꿈)에 메시시가 들어있다. "스쳐 지나는 작은 식물들도 저마다 고유한 생김새와 그들만의 질서를 가지고 자라난다."

 나이 덕분이기도 하다. "김 화백의 인생은 이제 이순(耳順)의 나이를 지나 마음 가는 대로 하여도 순리를 거스르지 않는다는 종심(從心)을 향해 간다. 삶이 성숙해져 갈수록 그의 화폭은 자연의 본질 가장 가까운 곳을 향하며 자연과 동화되어 물아일체의 경지로 나아가고 있다."(류지연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관)

 학고재 본관에 전시된 신작은  여백을 강조하여 절제의 미학을 드러낸다. 화면을 꽉채운 이전과 달리 초충도나청과(淸果)도를 떠오르게 하는 단아한 화면 구성이다. 대상의 형태가 전면적으로 드러나는 작품은 솜털까지 세필화된 고요하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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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김보희 화백 개인전 '자연이 되는 꿈'
 붉은 빛이 오묘한 키위 나무줄기를 그린 작품 '투워즈'는 김화백의 진지한 관찰력을 엿볼수 있다. "어느 날 키위 나무를 살펴보다가 줄기와 이파리에 키위 열매 같은 털이 나 있는 것을 보았다. 자라나는 줄기에서부터 앞으로 맺게 될 열매의 모습과 닮아있는 것을 보고 자연의 질서에 신비로움을 느껴 화폭에 옮겼다."  

 제주도에 작업실을 지은건 운명같은 일이었다. 1970년대 신혼여행으로 온 제주도는 마음에 들었다. 약속이나 한듯 부부는 땅을 샀고, "언젠가 여기에 작업실을 짓고 그림만 그릴거야"라고 다짐했다.  

 세월이 흘러, 미대 교수가 된 화가는 꿈을 이뤘다. 13년전 그때 산 그 땅에 작업실을 짓고, 제주와 서울을 오가며 작업하고, 후학 교육에 매진했다. 25년간 재직한 학교생활은 올해 8월 정년 퇴임을 앞두고 있다.

 특유의 반복적 세필과 시간의 결로 자연을 담아낸 그림 처럼 김화백은 담담하게 말했다. "퇴임하고 뭐할거냐고요? 그림 그려야죠. 이젠 전업작가네요.호호호"

 김보희의 작품은 전통적 양식을 토대로 하여 한국화를 현대화시킨 좋은 예로 꼽힌다. 한국화의 채색 기법을 사용하지만, 캔버스를 이용하고 아크릴이나 바니시 등 서양화 재료도 다양하게 수용하며 자신만의 독특한 화법을 구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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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김보희 화백 개인전 '자연이 되는 꿈'
 이화여자대학교 동양화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채색화는 일본의 잔재라는 선생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학생 때부터 채색을 많이 했다.국전에도 채색화를 출품하여 특선을 세 차례 받았다. 1986년 경인미술관에서 열린 ‘채묵의 가능성展’에서한국화 흐름의 양상을 대표하는 신예 작가로 선정되며 일찍이 주목을 받았다.

 1970~80년대부터 자연을 화폭에 담기 시작했다. 양수리에 있는 이모 댁 근처의 풍경을 그린 것이 첫 시작이었다. 당시에는 먼발치에서 관망하는 듯한 시선으로 자연을 그렸다. 눈에 보이는 경관을 사실적으로 재현했다. 90년대 이후로 제주도로 여행을 가서 본 바다 풍경이 좋아 바다를 그리기 시작했다. 하늘과 바다 사이에 자리한 가느다란 수평선을 강조하여 그 안에 자신의 삶을 투영했다.

 2005년부터는 화폭을 따라 거처를 아예 제주도로 옮겼다. 성숙하고 무르익은 시선으로 자연을 관조하기 시작한 것이다. 표현하는 대상과의 거리가 유달리 가까워지고,관찰자로서의 시선이 자연 내부에 머무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화면 위에 상상적 요소들을 더욱 자유롭게 가미한 점도 눈에 띈다. 자신의 내면세계를 화면 위에 적극적으로 담아내기 시작했다.

 새 생명력을 가득 품고 또 다른 차원을 향해 나아간 김 화백의 화면은 사실적인데 환상적인게 특징이다. 분명 우리가 본듯한 식물들인데 추상성이 미묘하게 뒤섞여 그의 풍경은 마치 현실과 환상이 만나는 지점 어딘가를 포착한 듯하다.

 밝은 햇살, 토종 식물, 바다와 산이 어우러진 이국적인 풍광에 눈 뜬 화백은 원시림 같은 에너지 충만함을 화폭에 담아내며 기운생동함을 전하고 있다. 이제 몰입과 일상의 반추로 삶을 성찰하고 있는 김 화백은 "씨앗이 떨어지거나 발아하는 순간과 찰나의 신비로움과 아름다움이 경이롭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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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김보희 화백 개인전 '자연이 되는 꿈'
 학고재 신관에는 구작이 전시됐는데 마치 거대한 초록정원에 들어선 듯한 기분을 선사한다. 작품 ‘그날들’(2011~2014)에서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시선이 가는 방향에 따라 작품 속의 시간이 낮에서 밤으로 변화한다. 전통 동양 산수화에서 사용되는 '평원법'을 활용한 화면기법으로 푸르른 자연이 가득히 펼쳐진 화폭 안으로들어가 진초록의 자연과 한몸이 될 것만 같은 환상감을 제공한다.

 "제주 작업실에 오면 공항과 작업실만 왔다갔다하며 그림만 그려요. 작업실 뜨락에 있는 꽃이나 나무를 보고, 가끔 여미지 식물원에 가기도 하지요."

 낙원같은 제주도 자본주의에 변하고 있다. 작업실 정원앞에 푸른 바다가 한눈에 보였지만 이젠 볼수가 없다. 바다앞에 아파트가 들어서 고개를 가로해야 아파트사이로 약하게 드러나는 바다를 잠깐 볼수 있다고 했다.

"속상하지만 어쩔수 없지요. 그래서 대신 정원 뜨락길에 동백나무를 심었다"는 김화백은 "그림에 담긴 나무 풀들은 모두 작업실 뜨락에 있는 풍경"이라며 제주의 아름다움을 예찬했다.

 "이전 작품은 앙리루소 그림같다는 소릴 들었지만 제 작품은 루소 그림처럼 잔인하지 않아요. 제가 씨앗을 뿌려서 핀 꽃들, 나무들속에 우리부부와 함께하는 '검은 개'가 한가롭게 앉아있죠. 꽃이 피고지는 일상의 풍경을 평화롭게  담아낸 그림입니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연 만물을 그 자체로서 인정하고 존중하는 무위자연의 개념을 드러내고 있는 작가는 자연에 대한 경외와 예찬을 강조했던 시기를 지나, 자연의 본질에 한층 더 가까워졌다.  삶과 죽음, 유와 무 등 상반된 개념을 구분하여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상반된 개념 자체를 자연 그 자체의 본성으로서 받아들이고 자연스럽게 화면에 담는다.

 자연의 신비와 생명력의 경탄이 느껴지는 이번 전시는 내밀한 관조와 정밀한 관찰이 더욱 진해진 김화백의 여유로움이 전해진다. 전시는 30일까지.

hyun@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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