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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코리안 파더'된 의사…꿈꾸기 시작한 '몽골소녀'

등록 2021.09.06 10:18:58수정 2021.09.06 15: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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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호 대찬병원 원장, 샤롤 고관절 수술 무상 지원

수술 1년 뒤 몽골 의료현장서 재회...봉사자 된 샤롤

샤롤 "자신감 생겨…도움 줄 수 있는 사람 되고파"

매년 의료봉사…"도움주기 보다 배우는 게 더 많아"

[서울=뉴시스] 몽골 국립대 합격을 기뻐하고 있는 한상호 원장과 샤롤. (사진= 대찬병원 제공) 2021.09.06

[서울=뉴시스] 몽골 국립대 합격을 기뻐하고 있는 한상호 원장과 샤롤. (사진= 대찬병원 제공) 2021.09.06

[서울=뉴시스] 백영미 기자 = 두 살 때 만난 의사는 정상적으로 걸을 가망이 없다고 했다. 미래는 그저 오지 않은 시간일 뿐 꿈도, 희망도 없었다. 그러다 만 15세가 되던 해인 2017년 7월 몽골에 의료 봉사 온 한국인 의사를 만났다. 그는 그로부터 4개월 뒤 "한국에서 꼭 보자, 걷게 해줄게"라는 약속을 지켰다. 그 해 11월 한국에서 고관절(골반과 허벅다리 뼈를 연결하는 엉덩 관절)수술을 받은 후 일반인과 크게 다를 바 없이 걷고 뛰어다닌다. 일상이 꿈만 같다.

몽골 소녀 샤롤과 한상호 대찬병원 원장의 이야기다.

지난 3일 서울 신사동의 한 빌딩에서 만난 한 원장은 뉴시스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나라에서도 케이스가 거의 없는 고난이도 수술이었다"면서 "종합병원에 있는 대학 동기가 '대학병원도 아닌데 할 수 있겠냐'고 물을 정도였다"고 떠올렸다. 대찬병원은 인천에 위치한 관절·척추 전문병원이다.

샤롤의 병명은 선천성 고관절 탈구. 샤롤은 어린 시절 탈구된 고관절을 제대로 치료 받지 못해 기형이 생겼다. 고관절 탈구는 조기 발견하면 치료가 간단하지만 의료 환경이 열악한 몽골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샤롤에겐 언감생심이었다.

수술 전 샤롤은 뒤뚱거리며 짧은 거리만 걸을 수 있을 정도로 심각한 상태였다. 좌측 대퇴골(허벅다리뼈)이 본래 위치에서 벗어나 위로 밀려 올라가 있어 2.5cm 정도 절단해야 했다. 대퇴골두(공처럼 둥글게 생긴 넓적다리뼈의 머리 부분)를 제 자리에 위치시킨 후 이를 감쌀 전구 소켓 모양의 비구를 새로 만들고, 좌측 대퇴골 탈구로 인해 다른 양다리의 길이와 균형도 맞춰야 했다.

한 원장은 "다리에도 혈관과 신경이 있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신경이 아예 마비돼 기능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면서 "수술 시간만 7~8시간이 걸렸다"고 털어놨다.

수술 준비 과정도 쉽지 않았다. 한 원장은 수술 한 달 전부터 외국 논문을 수 없이 뒤적이며 공부했고, 국내에서 샤롤에게 알맞은 인공관절을 찾을 수 없어 미국에서 공수까지 해왔다. 병원이 문을 연지 불과 2년차 밖에 되지 않아 여유가 있진 않았지만, 수술 비용 6천700만원도 무상으로 지원했다.

[서울=뉴시스] 샤롤이 2018년 4월 몽골 아르항가이의 한 고등학교 의료 봉사 현장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 대찬병원 제공) 2021.09.06

[서울=뉴시스] 샤롤이 2018년 4월 몽골 아르항가이의 한 고등학교 의료 봉사 현장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 대찬병원 제공) 2021.09.06

샤롤은 힘든 수술과 130여일 간의 재활기간을 우여곡절 끝에 잘 버텨냈다. 한 원장은 "워낙 큰 수술인 데다 재활도 힘들다보니 사춘기였던 샤롤이 울거나 '진짜 걸을 수 있냐'며 반항을 하고 재활을 하지 않겠다고 한 적도 있었다"고 되돌아봤다.

평범한 일상 자체가 꿈이었던 샤롤은 수술 후 일반인과 비슷하게 걸어다닐 수 있게 됐다. 여느 소녀처럼 고등학교 생활도 누릴 수 있게 됐다. 한 원장은 수술 후 1년 뒤인 2018년 4월 몽골 아르항가이의 한 고등학교 의료 봉사 현장에서 샤롤이 뛰어다니는 모습도 눈으로 확인했다.

한 원장은 "샤롤이 몽골 측 통역 봉사자로 합류해 의료 봉사 활동을 같이했다"면서 "원래 꿈이 없었는데 정상적으로 걸을 수 있게 되면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고 자신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한다"고 전했다.

건강을 되찾은 샤롤은 책을 다시 집어들었고 올해 몽골 최고 대학인 몽골 국립대 윤리학과에 합격하는 결실을 맺었다. 한 원장은 "(샤롤이)온 가족이 한 천막(게르)에서 생활해야 하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 '열심히 공부하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면서 "합격장을 받아들고 한동안 눈물만 흘렸다"며 감격스러워했다.

샤롤이 "코리안 파더"라고 부르는 한 원장은 달라진 샤롤의 삶을 본 후 매년 해외 소아 한 명을 한국으로 초청해 수술해 주고 있다. 지난해 1월에는 어린 시절 말을 타다 성장판이 다쳐 양쪽 다리의 길이가 다른 몽골 소년 가나가 댄서의 꿈에 한 걸음 더 다가설 수 있도록 도왔다.

한 원장의 더불어 사는 삶은 지난 2015년 12월 대찬병원을 열기 전 태국으로 처음 떠난 의료봉사가 계기가 됐다. 한 원장은 "태국의 쓰레기 마을에서 맨발의 아이들이 깨진 유리조각에 발이 찢어진 채로 지내다 결국 다리를 절단하는 것을 봤다"면서 "의료혜택을 받지 못해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삶도 영위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서울=뉴시스] 한상호 원장과 샤롤. (사진= 대찬병원 제공) 2021.09.06

[서울=뉴시스] 한상호 원장과 샤롤. (사진= 대찬병원 제공) 2021.09.06

서울 강남의 한 정형외과에서 고액 연봉을 받던 한 원장은 환자들이 만족할 만한 치료 환경을 만들기 위해 직접 병원을 열었다. 국내 병원 중 처음으로 호텔 쉐프 출신 조리장을 영입했다. 간호사 1명당 2.5병상 미만을 돌봐 인천에서 유일한 간호 1등급 병원(2차 병원 기준)이다. 약 250평 규모의 국내 최대 스포츠메디컬센터도 갖췄다.

한 원장은 "환자식에서 병원 수익을 남기지 않아 매년 3억원의 적자를 보고 있고 인력비도 많이 나가 수익률이 높은 병원은 아니지만, 환자들이 만족할 만한 치료 결과가 나오고 있다"며 웃었다.

국내 정형외과 의사 중 체육학 박사 1호인 한 원장은 환자의 재활에도 관심이 많다. 환자들을 추적 관리하기 위한 운동관리 베타버전(시험용) 앱도 이달 중 출시할 예정이다.

한 원장은 눈 코 뜰 새 없이 바빠도 2015년부터 매년 태국, 미얀마, 필리핀, 몽골 등으로 의료봉사를 떠나고 있다. 병원 직원 10명 정도가 동행한다. 한 원장은 직원들에게 "자신의 일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을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최고의 복지"라고 판단, 의료봉사 비용의 대부분을 부담한다. 의료봉사를 장려하기 위해 봉사휴가도 따로 만들었다.

"정신없이 살다보니 어느 순간 매너리즘에 빠진 직업인이 돼 있더라고요. 히포크라테스 정신은 잊고...그러다 의료봉사를 하면서 아픈 사람을 치료하는 일이 얼마나 소중하고, 또 누군가에겐 얼마나 절실한 일인지 깨닫게 됐습니다. 도움을 주러 간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제가 배우는 것이 더 많더군요. 앞으로 병원 전 직원이 해외 봉사를 다녀올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게 목표입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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