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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의 독립운동가에 강기덕…통일정부 시도하다 北 피랍

등록 2022.01.28 12:28:58수정 2022.01.28 14: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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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내용 요약

원산 등지서 항일 운동…수차례 옥고 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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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강기덕 독립운동가 2022.01.28. (사진=국가보훈처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박대로 기자 = 국가보훈처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강기덕 선생을 '2022년 2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고 28일 밝혔다.

강 선생은 1886년 함경남도 원산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48명 중 한 명(학생대표, 보성법률상업학교 재학 중)으로 독립선언서를 각 학교 학생들에게 나눠줬다.

그는 2차 시위(3월5일)에서 깃발을 흔들며 선두에서 만세를 부르다 일경에 체포돼 1년6개월 옥고를 치렀다.
 
강 선생은 1921년 11월 만기 출소해 고향인 원산에서 인쇄업에 종사했다. 그는 1924년 3월경 원산 보광학교 3·1운동 5주년 기념 인쇄물을 제작하며 3·1운동 정신을 계승하고자 했다.
 
강 선생은 경작제도 문제를 개선해 농민들의 수입 증진을 위한 연설을 했다는 이유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일경에 체포돼 6개월 옥고를 치렀다.

출소 후 강 선생은 신간회 원산지회 발기인회에 참여해 설립준비위원과 상무위원을 맡았다. 1927년 7월11일 신간회 원산지회 설립대회에서 간사로 선임됐다. 신간회는 1927년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세력이 합작한 좌우연합 항일 독립운동 단체다.

강 선생은 신간회 활동을 하면서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대책 마련과 신문지법 중단을 촉구했다. 그는 소작쟁의에 관한 불량지주 죄악 조사를 요구하는 함남기자 연맹사건에 연루돼 징역 8개월을 선고받았다.

선생은 원산노동조합 간부로서 노동조합 재건 운동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1933년 징역 1년 2개월 옥고를 치렀고 1935년 만기 출소했다.

광복 후 강 선생은 신탁통치 반대 국민총동원 위원회 중앙위원을 맡아 통일 정부 수립을 위해 노력했다. 그는 6·25전쟁 중 납북됐다.

정부는 강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90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daero@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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