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계기 위협’ 일본의 다목적 계산...군사적 존재감 과시
징용 배상 등 한일 갈등에 군사적 압박 동원 추측도
'전쟁가능 국가' 개헌 분위기 조성에 호재
동북아 질서 개편에 편승해 군사적 존재감 과시 의도도
【서울=뉴시스】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지난 14일 자위대의 날을 맞아 도쿄 북쪽 아사카(朝霞) 육상자위대 훈련장에서 관열식을 갖고 있다. 아베 총리는 이날 훈시에서 "모든 자위대원이 자부심을 갖고 임무를 완수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 것이 정치인의 책임"이라며 헌법 개정에서 자위대를 명기하는 것에 대해 거듭 의욕을 나타냈다. 2018.10.18.
일본이 현재로서는 초계기 위협비행 자체를 부인하고 있는 마당이라 왜 위협비행을 했는지 그 의도를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우리 국방부가 초계기 위협비행의 고도와 속도, 항적 등을 담은 동영상과 같은 ‘스모킹 건’을 제시할 때 일본이 어떤 태도를 보일지가 관심이다.
일본 초계기 위협비행이 의도한 것이든 실수든, 또는 사실이든 아니든 중요하게 보아야 할 점은 한일 간에 이러한 군사적 갈등 내지는 긴장이 일어나고 있는 사실 자체가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에게는 내심 싫어할 이유가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말 그대로 불감청고소원(不敢請固所願.감히 청하지는 못하나 원래부터 몹시 바라던 바)일 수 있는 것이다.
당장은 일본의 초계기 위협이 이제 미제 사건으로 정리되고 있는 듯한 앞서의 ‘레이더 갈등’의 증거 수집을 위한 것일 수 있다는 관측이 가능하다. 한국을 자극해 화기관제 레이더를 조사(照射·겨냥해서 비춤)하는 상황을 만들려는 유인책이라는 분석이다. 또 위안부 문제와 강제징용 배상 판결 등에 따른 대응 조치 차원에서 일본이 한국에 대한 압박 수단을 군사적 영역에까지 늘리고 있다는 추측도 배제할 수 없다.
좀더 큰 국면에서 보면 지금 아베 정권은 동북아에서 일본의 군사적 존재감을 과시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현재의 동북아 정세 변화에는 중국의 패권 추구에 따른 군사력 증강과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 등 군사적 요인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여기서 일본은 전쟁을 포기한 이른바 평화헌법에 묶여 어떠한 군사적 존재감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실질적으로는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한 일본이 그걸 과시하려면 주변에서 적당한 군사적 긴장관계가 일어날 필요가 있다.
일본은 영토분쟁이 일어나고 있는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에서 중국의 위협적인 군사행동을 여러 차례 겪으면서도 군사적으로는 제대로 대응 조치를 못해 왔다. 자국 상공으로 미사일을 쏘아대는 북한에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한국에서도 위안부 문제와 강제징용 배상 판결 등으로 반일 감정이 고조되고 있고 일본을 무시하는 듯한 분위기마저 감지되고 있다고 일본은 판단하고 있다.
일본 정권으로서는 더 이상 일본이 군사적으로 무기력한 존재가 아님을 과시하는 것이 동북아 질서 재편에서 필요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이번처럼 일본이 이웃국가에 군사적 위협을 가하거나 군사적 갈등을 빚는 일은 전후에 전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매우 드문 일이다.
아베 정권은 스스로 최대의 과업으로 삼고 있는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의 개헌을 위해서도 이웃국가와의 적당한 군사적 위협을 부각시키고 싶은 유혹을 느낄 것이다. 국회에서는 개헌 발의에 필요한 의석을 충분히 확보하고 있지만, 국민투표는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여론조사에서는 개헌 반대 여론이 찬성보다 다소 앞서는 형국이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은 물론 한국에서도 군사 위협이 가해지고 있다고 주장할 수 있다면 아베 정권으로서는 호재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서울=AP/뉴시스】 일본 P-3 해상초계기.
북미 관계의 전개에 따라 한미동맹에 이상 조짐이 나타나고 있는 사실도 일본으로서는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다. 한미동맹 약화는 일본 안보에도 직접적 영향을 주게 돼 일본의 안보 역량을 강화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국이 한미동맹으로부터 멀어지면 일본에게도 더 이상 믿을만한 우방이 아니게 되니 한일 간의 군사적 관계를 재정비해야 한다는 주장이 일본 내에서 나올 수 있는 것이다. 한미동맹이 약화될수록 미일동맹은 강화될 가능성이 높고 그만큼 일본의 군사적 역할도 커지게 될 것이다.
일본 방위성이 5년 만에 지난달 발표한 2019년도 방위대강은 중국과 북한의 위협 등 동북아의 정세 변화를 강조하면서 사실상의 항공모함 운용 등 군사력의 대폭 증강을 명시적으로 천명하고 있다. 일본의 군사력이 커질수록 주변에서 군사적 갈등이 일어날 소지도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지 74년이 지난 지금 일본은 이제 전후체제를 완전히 청산하려 하고 있다. 그것이 국내적으로는 전쟁 가능국가로의 개헌 추진으로, 대외적으로는 러시아와의 평화협정 체결 노력 등으로 상징되고 있다. 그러면서 동북아에서 스스로 군사적 존재감을 드러내려 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과의 레이더 갈등과 초계기 공방 등은 일본 정권이 스스로 그리고 있는 큰 그림을 향해 내딛는 걸음의 작은 시작일지도 모른다.
일본이 이 같은 국가 개조의 방향을 품고 있다면 한일 간에는 지금과 비슷한 갈등과 충돌이 앞으로도 되풀이될 가능성이 높다. 일본의 이런 구상을 염두에 두어야 할 한국으로서는 대단히 전략적인 대응이 필수적이다. 강경 대응은 일본의 계산에 걸려들 위험이 높고, 그렇다고 신중하기만 해서는 일본의 도발 강도를 높일 위험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은 이제 일본을 어떻게 보고 대응할 것인지를 근본적이고 종합적으로 재고해야 할 시점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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