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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땅값보단 미래 가치가 우선" 예술로 상상하는 평화

등록 2019.05.03 09:53:48수정 2019.05.03 11: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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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원=뉴시스】손대선 기자 = 민족시각문화교류협회와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후원받아 2일 오후 철원군 일대에서 진행하는 예술인통일문화 캠프 '우리는 평화를 원해요'에 참가한 이들이 철원노동당사 후면을 바라보고 예술적 상상에 빠져있다. sds1105@newsis.com

【철원=뉴시스】손대선 기자 = 민족시각문화교류협회와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후원받아 2일 오후 철원군 일대에서 진행하는 예술인통일문화 캠프 '우리는 평화를 원해요'에 참가한 이들이 철원노동당사 후면을 바라보고 예술적 상상에 빠져있다.  [email protected]

【철원=뉴시스】손대선 기자 = 2일 오전 10시께 40여명의 예술인들을 실은 관광버스가 서울 마포구 합정역 9번 출구 앞에서 출발했다.

 목적지인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민간인출입통제선(민통선)까지 물리적 거리는 80km 남짓. 한 시간 가량 내부순환도로를 달리다보니 어느덧 강원도다. 도로 양옆으로 회색빛 건물들이 사라지고 찔레꽃이 한창이다. 

 버스에 탑승한 예술인들은 남북 시각예술교류를 위해 올해 창립한 민족시각문화교류협회(민시협)와 한국문화관광연구원(문광연)이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후원받아 철원군 일대에서 진행하는 예술인통일문화 캠프 '우리는 평화를 원해요'에 참가한 이들이다. 모두 조각, 회화, 평론, 디자인 등 '시각예술'의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면서 단절된 남북예술교류가 재개되길 염원하고 있다. 

 버스가 이동하는 동안 북한출신 예술가 선무(예명)씨의 삶을 담은 다큐멘터리 '나는 선무다'가 차내 모니터에서 상영됐다. 그 역시 행사에 참여했다.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졸던 중 버스가 민통선 인근 철원군 동송읍의 한 식당에 도착했다. 옥빛 한탄강 지류가 내려다보이는 식당에서 예술인들은 막걸리를 반주삼아 점심식사를 했다. 30~50대가 뒤섞인 일행들은 흡사 봄 소풍 나온 것처럼 왁자지껄했다.

 
【철원=뉴시스】손대선 기자 = 민족시각문화교류협회(민시협)와 한국문화관광연구원(한문원)이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후원받아 철원군 일대에서 진행하는 예술인통일문화 캠프 '우리는 평화를 원해요'에 참가한 이들이 제2땅굴에서 발견한 고사리. 지하 100여미터에서 형광등 불빛에 의지해 자란 모습이 이채롭다. sds1105@newsis.com

【철원=뉴시스】손대선 기자 = 민족시각문화교류협회(민시협)와 한국문화관광연구원(한문원)이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후원받아 철원군 일대에서 진행하는 예술인통일문화 캠프 '우리는 평화를 원해요'에 참가한 이들이 제2땅굴에서 발견한 고사리. 지하 100여미터에서 형광등 불빛에 의지해 자란 모습이 이채롭다.  [email protected]

오후 1시50분께 민통선 초소에 도달하자 K-1 소총을 둘러멘 헌병 한명이 버스에 올라 검문했다. 모두들 이곳이 접경지역임을 실감하는 듯했다. 탱크를 막기 위해 설치된 콘크리트 장애물을 지나 민통선 안쪽으로 들어서자 모내기를 앞둔 수십만 평의 평야가 양옆으로 펼쳐졌다. 모두 비무장지대 남방한계선에서 남쪽으로 5~20㎞에 걸친 민간인 통제구역에 속한 땅이다. 이곳에 주둔한 6사단 청성부대원과 영농출입증을 소지한 농부, 그리고 사전에 허가를 받은 관광객만이 방문할 수 있다.  

  곧 첫번째 답사지인 제2땅굴에 도착했다. 지하 50~160m 깊이에 있는 이 땅굴은 44년 전 청성부대원들이 발견한 것이다. 군 당국은 유사시 시간 당 최대 3만 명의 북한군 병력이 이동할 수 있는 통로라고 설명했다. 키가 174cm 인 기자가 고개를 숙이지 않고 서있기 어려웠다. 정말 대규모 병력이 빠르게 이동할 수 있을지 궁금해졌지만 북한 군인들은 키가 많이 작아서 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객쩍은 생각을 하는 사이 일행들은 낮은 조도의 형광등 아래 힘겹게 자라고 있는 고사리 군락을 발견하고 신기하다며 연신 사진촬영을 했다.

 다음 답사지는 철원평화전망대. 중부전선의 비무장지대와 북한 지역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까지 모노레일이 설치돼 있어 힘들지 않게 올라갈 수 있었다. 비무장지대 저편 북한 땅을 향해 모두가 한마디씩 하느라 웅성거리는 속에서 탈북 예술인 선무씨는 처연한 모습으로 어딘가에 시선이 고정돼 있었다. 그의 시선을 따라가니 이른바 '김일성봉'이 있었다. 선무씨는 2002년 탈북한 이래 가장 가까이에서 북한 땅을 보고 있다고 말했다.
【철원=뉴시스】손대선 기자 = 2일 오후 강원도 철원군 평화전망대에서 북한땅을 바라보고 있는 탈북 예술가 선무씨(오른쪽). sds1105@newsis.com

【철원=뉴시스】손대선 기자 = 2일 오후 강원도 철원군 평화전망대에서 북한땅을 바라보고 있는 탈북 예술가 선무씨(오른쪽).  [email protected]



 그는 북한에 남아있는 가족들 걱정 때문에 신분을 감추고 '얼굴 없는 화가'로 활동하고 있다. 예술로 남북화해에 기여해 가족과 재회할 수 있었으면 한다는 생각을 했다고 소회를 말했다. 

 500원짜리 동전으로 넣으면 작동하는 고정식 쌍안경에 눈을 붙이느라 모두가 바쁜데 갑작스레 남북풍이 몰아쳤다. 몸을 가누기조차 힘든 강풍이었다. 한 여성 예술인의 모자가 날아가 손쓸 새도 없이 전망대 바로 앞 비무장지대에 떨어졌다. 철원군 문화관광해설사 이명옥씨는 어쩔 줄 몰라 하는 이 여성에게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전망대 아래 안보관에는 제2땅굴과 군 막사, 검문소를 재현한 전시물과 비무장지대 사진 등이 전시돼 있었다. 전시물은 과거에 머물러 있었다. 남북군사력 비교도는 2010년, 통일노력의 발자취를 보여주는 남북교류 연보는 2008년에 멈춰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2019년도를 살고 있는 예술인들은 못마땅하다는 반응들이다. 

 배인석 민시협 상임이사는 "남북화해의 시대가 도래했지만 이곳은 여전히 과거형이다. 미래를 고민하는 것은 예술인들은 몫이라는 것을 새삼 느낀다"고 말했다.
【철원=뉴시스】손대선 기자 =민족시각문화교류협회와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후원받아 철원군 일대에서 진행하는 예술인통일문화 캠프 '우리는 평화를 원해요'에 참가한 이들이 2일 오후 철원노동당사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sds1105@newsis.com

【철원=뉴시스】손대선 기자 =민족시각문화교류협회와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후원받아 철원군 일대에서 진행하는 예술인통일문화 캠프 '우리는 평화를 원해요'에 참가한 이들이 2일 오후 철원노동당사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email protected]



 뒤이어 찾은 경원선 월정리역 증기기관차를 살펴보다가 녹슨 철골만 남은 객차의 앞쪽에 '청량리역'이라는 페인트 글씨가 써 있는 디젤기관차가 달려있었다. '철마는 달리고 싶다'라고 적힌 커다란 간판 앞에서 예술인들은 이 '괴이한 조합'에 대해 설치자의 의도를 놓고 수군거렸다.  

【철원=뉴시스】손대선 기자 = 2일 오후 강원도 철원군 철원노동당사 인근에 자리잡은 노동당사 매점 풍경. 고양이 한마리가 사료를 먹고 있는 장면이 평화스럽다. sds1105@newsis.com

【철원=뉴시스】손대선 기자 = 2일 오후 강원도 철원군 철원노동당사 인근에 자리잡은 노동당사 매점 풍경. 고양이 한마리가 사료를 먹고 있는 장면이 평화스럽다.  [email protected]

전영일 민시협 회장은 "월정리역이 재개통되면 유라시아 철도를 통해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까지 갈 수 있다고 한다"며 "이곳에서 예술인들이 남북관계 개선의 첫 단추를 채웠으면 한다"고 말했다.

 민간인 통제구역을 벗어나 철원노동당사를 답사하던 예술인들이 노동당사 바로 옆에 자리한 '노동당사 매점'을 찾았다. 상호 아래에는 '롯데삼강'이란 글씨가 선명했다.

  매점 주인 임모씨(여, 62)는 30여 년 째 이곳에서 관광객을 상대로 장사를 하고 있다고 했다. 매점 이름에 '노동당사'를 붙인 연유를 묻자 "있는 그대로"란다. 한국전쟁 전 북한에 속한 이곳에서 민간인을 상대로 고문과 학살이 있었다는 역사를 염두에 두고 상호를 정했는지 궁금했지만 거기까지 묻진 못했다.      

 임씨는 고양이 30마리와 개 2마리를 기르고 있었다. 그는 "여름에는 포장마차를 겸하기 때문에 음식이 남으면 애들을 먹이는데 그 동안 관광객이 줄어 밥 주는 게 만만치 않다"면서도 남북관계가 좀 더 개선이 되면 자식 같은 짐승들을 배불리 먹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개와 고양이가 한 그릇에서 사료를 나눠먹다가 가까이 다가가자 도망쳤다.

【철원=뉴시스】손대선 기자 = 강원도 철원군 일대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현무암. 총알자국처럼 암석 표면이 숭숭 뚫려 있다. sds1105@newsis.com

【철원=뉴시스】손대선 기자 = 강원도 철원군 일대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현무암. 총알자국처럼 암석 표면이 숭숭 뚫려 있다.  [email protected]

예부터 한반도 한복판 교통 요지였던 철원은 한국전쟁 전까지만 해도 인구가 10만 명에 달했다고 한다. 현재는 인구 5만중 군인이 절반인 전형적인 군사도시. 한때 백화점까지 들어섰다는 믿기 어려운 얘기를 이명옥 해설사가 전했다. 

 그는 남북관계에 순풍이 불면서 이 한적한 벽촌에도 최근 부동산 값이 오르고 있다고 했다. 땅값이 오를 것이란 기대감에 매물이 없지만 농지 1평 호가가 20만까지 올랐다고 했다. 경기도 용인시 외곽 농지에 맞먹는 값이다. 가구당 최소 10만평씩 농사를 짓는 현지 주민들은 머지않아 '통일 로또'가 터질 수도 있다는 기대감을 가지고 있다고 해설사는 전했다. 

 예술인들은 땅값보다는 미래가치에 주목했다. 

 박영정 문광연 선임연구위원은 답사가 끝난 뒤 'DMZ(비무장지대)의 문화적 가치'라는 제목의 강연에서 "DMZ의 평화적 이용이 활성화되면, 군사적 대결의 공간이 한반도 평화를 상징하는 공간으로 재구축되는 것"이라며 "'전쟁의 상징에서 평화의 상징으로' 바뀌는 '가치 전복'이 이 지역의 가장 핵심적인 가치"라고 말했다.
 
 박 위원은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이 종식되고 평화의 메카로 거듭나는 과정에서 예술인들이 참여하는 평화 상징 문화시설이 설치되면 평화의 효과가 극대화될 것"이라며 ▲세계평화박물관 건립 ▲전쟁유적의 노천박물관화 ▲생태자연사박물관 건립 등을 제안했다. 

 이어 진행된 '남북시각문화교류의 가능성 타진' 워크숖에서 최금수 민시협 이사는 "단절된 민간교류의 역사를 복원하는데 예술인들의 상상력이 큰 동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답사한 철원땅에는 현무암이 유독 많았다. 김흥우 민시협 협력위원은 총알 맞은 것처럼 표면에 구멍이 숭숭 뚫린 이 암석을 가리키다가 "한국전쟁의 상흔 같지 않냐"고 말했다. 그는 "예술이 이 상흔을 메울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예술인들은 3일 오후 군시설물을 문화예술창작 시설로 탈바꿈시킨 서울 도봉구 평화문화진지를 답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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