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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책]올모스트 휴먼·의열단 항일의 불꽃·고구려 역사·자금성의 노을

등록 2019.08.04 06: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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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책]올모스트 휴먼·의열단 항일의 불꽃·고구려 역사·자금성의 노을  


 【서울=뉴시스】 이수지 기자 = ◇올모스트 휴먼 

다시 쓰는 인간 진화사다. 18년간 인류의 요람지를 탐사하고 연구해오다 2007년부터 알려지지 않은 동굴과 화석 유적지 후보를 600곳을 찾은 저자 리 버거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속과 사람족의 특성들을 가진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세디바와 호모 날레디로 인류 문화사를 이야기한다

유전학이 밝혀낸 인류 진화의 후반부는 복잡하다. 20만년 전 아프리카에서 살았던 인간 집단의 후손인데, 이들이 미주와 호주를 포함한 전 세계로 퍼져나갔고, 그 과정에서 네안데르탈인을 포함한 다른 집단들과 유전자를 섞었다. 화석이  최초의 인간 조상은 누구인지, 이들이 나타나기 전 200만년 넘게 살았던 오스트랄로피테쿠스속과는 다른 길을 걷게 된 이유는 무엇인지를 말해 준다.

말라파 화석은 몸 전체의 골격을 갖춘 9~13세 소년과 성인 여성으로, 199만7000년 전 만들어졌다. 호모 날레디의 경우 첫 3주간의 발굴 작업에서 15개체, 뼈 1500여개가 나왔다. 45만~25만년 전 화석으로 추정됐다. 두 종 모두 오스트랄로피테쿠스속과 사람족의 특성이 함께 있다. 리 버거의 연구팀은 그럼 뭘 보고, 뭘 기준으로 구분할지를 고민했다. 호모 날레디는 손목과 손가락 끝은 인간을 닮았지만, 손가락뼈는 휘어 나무를 타거나 매달리기 좋았다. 어깨는 위쪽으로 불거지고 팔은 어딘가로 올라가기 좋게 생겼다. 발은 우리와 같았고, 뇌는 훨씬 작았다. 엉덩뼈는 루시, 궁둥뼈는 인간을 닮았다. 이빨 비율은 원시적이었지만, 크기는 현생인류와 같다. 날레디 유골들은 그 동굴에 의도적으로 안치된 시체들이었다.

리 버거는 "우리 인간 종의 기원은 이제 마치 수많은 지류가 한데 모여 만든 강처럼 생각된다. 지류가 만들어지고, 어느 정도까지는 따로 흘러가다가, 커져가는 강으로 다시 합쳐져 오늘날까지 흐르고 있다"고 정리했다. 리 버거·존 호크스 지음, 주명진·이병권 옮김, 320쪽, 1만8000원, 뿌리와이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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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열단, 항일의 불꽃

일제가 가장 두려워했던 독립운동단체 조선의열단의 활동사다. 1919년 11월10일, 중국 지린성에서 조선 청년 13명(김원봉, 곽재기, 강세우, 권준, 김상윤, 배동선, 서상락, 신철휴, 윤세주, 이성우, 이종암, 한봉근, 한봉인)이 항일독립운동단체인 의열단(義烈團)을 창단했다. '정의로운(義) 일을 맹렬히(烈) 실행하는 단체(團)'라는 뜻의 의열단은 창단 때부터 마땅히 죽여야 할 7가지 대상(7가살)과 5가지 파괴 대상(5파괴)을 정했다. 7가살 대상은 조선 총독 이하 고관, 군부 수뇌, 대만 총독, 매국적, 친일파 거두, 적의 밀정, 반민족적 토호열신이고, 5파괴 대상은 조선총독부, 동양척식주식회사, 매일신보사, 각 경찰서, 기타 왜적의 중요 기관이다.

창단 후부터 10년간 34번 일으킨 의열단 무장투쟁에 일제는 의열단을 가장 두려워하고 증오하게 됐다. 무장투쟁 유형도 일제 경찰서 폭파, 고위 일본군 장교 저격, 일제 수탈기관 폭파, 일왕 거주지 폭탄 투척, 밀정과 변절자 암살 등 다양했다. 일제 군경과 밀정들에게 쫓기고, 수시로 황천길을 넘나들면서도 한 사람도 변절하거나 투항하지 않았다. 세계정세 변화에 맞춰 '폭력투쟁에서 대중운동으로' 방향을 바꾼 의열단 지도부는 조선혁명정치간부학교를 세웠다. 이 학교는 의열단교육기관이자 의열단 양성소였다. 시인 이육사(1904~1944)와 음악가 정율성(1914~1976)도 이 학교 출신이다.

의열단은 1934년 좌우연합 정당인 민족혁명당과 1938년 창설한 조선의용대를 핵심세력으로 한 독립투쟁을 이어갔다. 그러나 조선의용군이 충칭파(임시정부 측)와 옌안파로 나뉘어 해방 후에 충칭파는 서울로, 옌안파는 평양으로 각각 입국하면서 비극을 맞았다. 의열단 전통은 해방 뒤에도 이어졌다. 상대는 왜적에서 국내 독재자로 바뀌었다. 1952년 6월25일 부산에서 열린 6·25기념식에서 이승만 대통령을 저격하려 한 사건이 벌어졌다. 당시 권총의 방아쇠를 당긴 이가 의열단원 유시태였다. 유시태의 시도는 총알이 발사되지 않아 무위로 끝났다. 김삼웅 지음, 352쪽, 1만8000원, 두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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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역사

일제강점기에 왜곡된 고구려 역사 바로보기다. 동아시아 최강국이었던 고구려의 광대한 영토와 역사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통해 우리 민족의 호연지기를 되찾자고 주장한다. 주관적 판단과 평가를 절제하고 북측 역사학계의 고구려사 연구 성과들을 있는 그대로 전달했다. 남과 북의 연구 업적들을 모았다

고구려는 동아시아 최대 강대국이자 정치, 군사, 경제, 문화 등 모든 면에서 선진적 나라였다. 우리 민족의 역사발전을 주도했으며 우리 민족의 자주권을 고수하고 민족의 영광을 널리 빛냈던 고구려 역사에는 국내외적으로 오해와 곡해가 많다. 특히 중국은 고구려 역사를 자기 나라 역사에 편입시키는 동북공정을 진행하고 있다. 현재 고구려 역사에 대한 남북간 쟁점은 건국 연대 문제, 국가 성격 문제, 평양에 있었던 낙랑문화의 성격 문제, 고구려-수 전쟁, 고구려-당 전쟁의 위치 문제, 선행국가 구려국 존재 유무다.

남북 단절과 소통 부재로 북측 사학계 연구 성과가 남측에 전달되지 못했다. 박경순 지음, 356쪽, 2만원, 내일을여는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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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금성의 노을 

중국 황제들의 후궁이 된 한씨 자매 이야기다. 조선 시대 초기 26년간 114명이 공녀라는 명목으로 명나라에 바쳐졌다. 그 중 후궁이 된 16명에 관한 사료는 드물다. 자금성과 향산 등 관련 유적지를 답사하고 조선은 물론 명나라 역사 기록까지 뒤져 이들 자매의 이야기를 되살렸다. 관련 사진과 이미지로 500년 전 북경 자금성의 생활상을 정밀하게 보여준다.

암투와 시기가 난무하는 황실 여성들의 이야기, 명나라 초기 황제들의 치적과 삶, 환관들의 위세와 활약상이 극적으로 펼쳐진다. 두 자매의 기구한 운명과 함께 조선 출신 환관들의 이야기도 역사적 사실에 기반하면서도 소설처럼 전개된다.

명나라 황제가 조선의 왕을 인정하는 대가로 조선은 토산품, 진기한 동물, 식품, 처녀, 고자를 공물로 명나라 황실에 바쳤다. 명나라에 바쳐진 처녀 대부분은 시중, 잡일에 투입됐다. 일부 처녀들은 황제의 후궁이나 비빈이 됐다. 특히 두 황제의 후궁이 된 조선 출신 한씨 자매의 이야기를 다뤘다. 언니 한씨는 명나라 3대 황제인 영락제의 후궁 여비(麗妃)가 됐다. 여비가 후궁이 된 지 얼마 안 돼 영락제가 죽으면서 순장됐다. 동생 한계란도 중국으로 끌려갈 때 구경꾼들은 언니에 이어 동생도 순장된다며 한계란을 '산송장'으로 부르고 눈물로 이별했다. 그러나 한계란은 6대 정통제를 거쳐 7대 경태제에 이르기까지 황실에서 어른 대접을 받으며 지냈다. 미색이 뛰어나고 품행이 바른 탓에 공녀로 선발되고, 모두 황제의 후궁이 됐지만 다른 운명의 길을 간 한씨 자매의 이야기는 정사에 단 몇 줄뿐이다. 서인범 지음, 432쪽, 2만4000원, 역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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