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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의 법'이라 불린 금소법 시행됐지만…과제는

등록 2021.03.27 05:00:00수정 2021.04.05 09:3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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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은성수 금융위원장이 26일 서울 종로구 KB국민은행 광화문종합금융센터를 방문해 은행직원에게 금융소비자보호법 관련 현황을 듣고 있다. (사진=금융위원회 제공) 2021.03.26.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은성수 금융위원장이 26일 서울 종로구 KB국민은행 광화문종합금융센터를 방문해 은행직원에게 금융소비자보호법 관련 현황을 듣고 있다. (사진=금융위원회 제공) 2021.03.26.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정옥주 기자 =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 개정안이 지난 25일 드디어 닻을 올렸다. 첫 발의된 지 약 10년 만이다. 라임자산운용·옵티머스 펀드와 같은 대규모 금융사고의 재발을 방지하고 소비자들의 권리를 강화한다는 좋은 취지에서 야심차게 출발했지만,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금소법은 자본시장법 등 개별 금융업법에서 일부 금융상품에 한정해 적용되던 '6대 판매규제'를 원칙적으로 모든 금융상품에 적용하는 것이 핵심이다. 6대 원칙은 ▲적합성 원칙▲적정성 원칙 ▲설명의무 ▲불공정영업행위 금지 ▲부당권유금지 ▲광고규제 등이다.

이 판매원칙을 위반할 경우 최대 1억원의 과태료가 부과되며, 적합성·적정성 원칙을 제외한 4개 규제 위반에 대해서는 수입의 최대 50%까지 '징벌적 과징금'이 부과되는 등 강한 제재를 받게 된다. 또 원금 손실 가능성 20% 넘는 고난도 투자 상품의 경우 소비자가 손해배상을 청구하면, 금융사가 고의나 과실이 없었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금융사들은 혼란스러운 모습이다. 부담과 책임은 잔뜩 지게 됐지만, 법안 내용이 워낙 방대하고 모호한 탓에 제대로 법안을 이해하고 준비할 시간을 갖지 못했다고 토로한다. 감독규정은 시행 불과 1주일 전에야 나왔고, 구체적인 시행세칙은 시행 당일에야 금융사들에 공문으로 발송됐다.

개정안이 수차례에 거쳐 수정된 만큼, 정확한 숙지도 어렵다. 금융당국 관계자들마저도 "하도 수정을 해대다 보니 누더기가 돼 버렸다"고 평할 정도다. 실제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7월 이후 지금까지 발의된 금소법 개정안만 10개에 이른다.

영업점 현장에서는 "10만원짜리 펀드를 가입하는데 1시간 이상이 걸린다"거나 "창구 직원들이 금소법 규정에 대해 물어도 제대로 답변을 못하고 있다"는 불만이 속출하고 있다.

금융사들은 '청약 철회권'과 '위법계약 해지권'에 대한 우려도 크다. 청약철회권은 소비자가 일정기간 내 계약을 철회할 경우 소비자가 지급한 대금을 반환하는 제도다. 대출성 상품은 14일 이내, 보장성은 15일 이내, 투자성 상품은 7일 이내 행사할 수 있다. 위법계약해지권은 금융사가 판매규제를 위반하면 소비자가 규제 위반을 이유로 계약을 중도에 해지할 수 있는 권리다. 위법계약해지 요구는 금융상품 유형과 관계없이 계약일로부터 5년, 위법사실을 안 날로부터 1년 이내에 가능하다.  도입 취지에 대해서는 공감하나 소비자들이 갖가지 이유를 대고 철회 또는 해지를 남발할 수 있어, 보다 구체적이고 명확한 기준 마련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현장에서의 혼란이 가중되자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지난 26일 금융협회장을 긴급소집, "금소법 시행에 대한 세부 지침 마련이 늦었고 특히 일선 창구까지 지침이 잘 전달되지 않아 국민들의 불편이 있었다는 지적에 대해 매우 안타깝고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금융사들은 금소법 위반 사례의 첫 타자가 되지 않기 위해 최대한 몸을 사리고 있다. KB국민은행은 금소법 시행을 앞두고 스마트텔러머신(STM)에서 입출금 통장을 개설하는 서비스를 한시 중단했다. 하나은행도 딥러닝 인공지능 로보어드바이저 하이로보의 신규 거래와 인공지능 채팅상담 시스템 하이챗봇을 통한 예·적금 가입을 중단했다.

자칫하면 수억원의 과태료를 물 수 있는 만큼 아예 금소법에 걸릴 소지가 있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한시적으로 중단해 리스크를 피하고 있는 것이다. 금융 소비자들의 권리를 보호하고 선택권을 넓혀주려는 법안의 당초 취지와는 달리, 오히려 선택권을 줄이는 등 혼선만 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서영수 키움증권 연구원은 "소비자 보호 마련을 위해 금융사 비용이 향후 크게 늘어날 것이며, 가격 전가가 어려울 경우 서비스 공급이 줄어들 것"이라며 "소비자보호 마련을 위한 장치 강화로 서비스 불편 초래와 함께 금융 혁신이 퇴보될 수 있다"고 짚었다.

사실 금소법은 지난 2011년 첫 발의된 이후 번번이 국회 문턱을 넘는데 실패해 '비운의 법'으로도 불렸다. 그런데 이런 금소법이 주목을 받게 된 것은 해외 금리연계형 파생연계펀드(DLF) 사태가 터지면서다. 우리은행과 하나은행 등이 판매했던 DLF 상품이 대규모 원금손실 사태를 일으키면서 금융사의 소비자 보호 부실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이런 가운데 라임과 옵티머스 펀드 사태가 또 불거지면서 보다 강화된 소비자 보호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에 금소법 개정안은 첫 발의된 지 9년 만인 지난해 3월 국회 문턱을 넘어서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서둘러 통과시킨 탓에 핵심 쟁점 사안들을 보완하기 보다는, 문제가 되는 것들은 제외해 버린 '반쪽짜리'로 출발하게 됐다. 법 제정이 시급하다 보니, 그간 법 제정에 걸림돌이었던 징벌적 손해배상제, 집단소송제 등 핵심 쟁점을 모두 빼버린 것이다. 이 때문에 법 통과 이후에도 보완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정치권에서 개정안이 쏟아졌고, 법안 내용은 더욱 모호해지고 복잡해졌다.

전문가들은 금소법 개정안이 본격적으로 시행되는 오는 9월 전까지 모호하거나 분쟁의 소지가 있는 일부 조항들을 구체화해 혼란을 줄이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금융당국은 또 최대 6개월 시행이 유예된 ▲내부통제기준·금융소비자보호기준 마련 의무 관련 규정▲금융상품판매업 등 업무 관련 자료의 기록 및 유지·관리·열람 관련 의무 ▲핵심설명서 마련 ▲금융상품직접판매업자의 투자성 상품 위험등급 설정 의무 ▲자문업자·판매대리중개업자 등록의무 등의 구체적 가이드라인도 마련해야 한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충분한 시간을 두고 준비를 한 뒤 시행을 하는 것이 바람직했겠지만 이미 시행이 된 만큼 당분간 현장에서의 혼란은 불가피해 보인다"며 "앞으로 금융사와 소비자 양 쪽의 입장을 수렴해 기간을 두고 제도를 보완해 혼란을 줄이는데 집중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금융당국도 이같은 상황을 인지하고 각 금융업권 협회 내 금소법 전담 태스크포스(TF)를 통해 업권의 질의사항을 취합해 수시로 답변을 제공하고 있다. 또 각 금융협회와 공동으로 금소법을 안내하는 전단을 제작, 금융회사 영업점에 비치하는 등 대국민 홍보·교육도 강화하고 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방대한 제도가 시행되고 금융창구에서 하나하나 변화되는 것이 어느 한 순간에 딱 하고 이뤄질 수는 없다"며 "금융사들도, 소비자들도 내 권리가 무엇인지 알아가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고, 소비자보호라는 이 방대하고도 중대한 목표가 실현돼 나가는 과정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금소법이 원활히 시행되고 안착될 수 있도록 각 금융협회 등과 함께 지속적인 홍보·교육을 실시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은성수 위원장도 "'빨리빨리'와 '소비자보호'는 안타깝게도 양립하기가 매우 어렵다"며 "금소법 시행으로 시간이 더 걸리고 불편한 점이 다소 있더라도 불완전판매라는 과거의 나쁜 관행으로 되돌아 갈 수는 없는 만큼, 1년전 펀드 불완전판매로 인한 피해자들의 눈물을 기억하면서 금융소비자 보호를 더욱 굳건히 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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