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공평동서 조선 한글 금속활자 1600점 무더기 발굴
'서울 공평구역 제15⋅16지구내 유적'
"훈민정음 창제 당시 표기 반영
다종다양한 활자 한 곳서 출토 첫 사례
[서울=뉴시스] 한글 금속활자, 大字, 가로 1.5㎝, 세로 1.2㎝, 높이 0.7㎝, (사진=문화재청 제공) 2021.06.29. [email protected]
문화재청 허가를 받아 (재)수도문물연구원(원장 오경택)이 발굴조사 중인 '서울 공평구역 제15⋅16지구 도시환경정비사업부지 내 유적(나 지역)'에서 항아리에 담긴 조선 전 금속활자 1600여 점을 비롯해 금속 유물이 한꺼번에 같이 묻혀있는 형태로 발굴됐다고 29일 밝혔다.
문화재청은 "이번에 공개되는 금속활자 중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훈민정음 창제 당시 표기가 반영된 가장 이른 시기의 한글 금속활자"라며 "이번에 일괄로 출토된 금속활자들은 조선 전기 다종다양한 활자가 한 곳에서 출토된 첫 발굴사례로 그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특히, 훈민정음 창제 시기인 15세기에 한정되어 사용되던 동국정운식 표기법을 쓴 금속활자가 실물로 확인된 점, 한글 금속활자를 구성하던 다양한 크기의 활자가 모두 출토된 점 등이 최초의 사례"고 덧붙였다.
조사 지역은 현재 종로2가 사거리의 북서쪽으로, 조선 한양도성의 중심부다. 조선 전기까지는 한성부 중부 견평방에 속하며, 주변에 관청인 의금부와 전의감을 비롯해 왕실의 궁가인 순화궁 죽동궁 등이 위치, 남쪽으로는 상업시설인 시전행랑이 있었던 운종가가 있던 곳이다. 조사 결과, 조선 전기부터 근대까지의 총 6개 문화층(2~7층)이 확인됐다.
[서울=뉴시스] 한글 금속활자, 中字, 가로 1.0㎝, 세로 1.0㎝, 높이 0.7㎝, 사진 반전 (사진=문화재청 제공) 2021.06.29. [email protected]
금속활자 등이 출토된 층위는 현재 지표면으로부터 3m 아래인 6층(16세기 중심)에 해당된다. 각종 건물지 유구를 비롯하여 조선 전기로 추정되는 자기 조각과 기와 조각도 같이 확인됐다.
이번에 공개된 유물들은 금속활자들을 제외한 나머지는 잘게 잘라 파편으로 만들어 도기항아리 안과 옆에 묻어둔 것으로 추정된다. 활자들은 대체로 온전했지만 불에 녹아 서로 엉겨 붙은 것들도 일부 확인됐다.
이들의 사용, 폐기 시점은 제작연대를 알 수 있는 유물 중 만력(萬曆) 무자(戊子)년에 제작된 소승자총(1588년)이 있어 1588년 이후에 묻혔다가 다시 활용되지 못하고 오늘날까지 이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서울=뉴시스] 한글 연주활자, 가로 2.0㎝×세로 0.9㎝×높이 0.7㎝, 사진 반전 (사진=문화재청 제공) 2021.06.29. [email protected]
그 외에도 연주활자(連鑄活字)도 10여 점이 출토됐다. 연주활자는 한 한문 사이에 자주 쓰는 한글토씨를 인쇄 편의상 한 번에 주조한 활자다. 이는 전해지는 예가 극히 드문 두 글자를 한 활자에 표기해 연결하는 어조사의 역할을 했다.
이 금속활자 발굴에 대해 문화재청은 "현재까지 전해진 가장 이른 조선 금속활자인 1455년 세조 때 제작된 '을해자'보다 20년 이른 1434년 세종 때 '갑인자'로 추정되는 활자가 다량 확인된 점은 유례없는 성과"라고 평했다.
이어 "현재 금속활자들의 종류가 다양하여 조선전기 인쇄본으로만 확인할 수 있었던 여러 활자들의 실물이 추가로 확인될 가능성이 있다"며 "이는 한글 창제의 실제 여파와 더불어 활발하게 이루어진 당시의 인쇄활동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라고 강조했다.
[서울=뉴시스] 주전, 잔존길이 69.1㎝, 너비 11.4㎝ (사진=문화재청 제공) 2021.06.29. [email protected]@newsis.com
동판에는 여러 원형 구멍과 '일전(一箭)'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다. 구슬방출기구는 원통형 동제품의 양쪽에 각각 걸쇠와 은행잎 형태의 갈고리가 결합됐다. 이러한 형태는 '세종실록'에서 작은 구슬을 저장했다 방출해 자동물시계의 시보 장치를 작동시키는 장치인 주전의 기록과 일치한다.
주전은 1438년 제작된 흠경각 옥루이거나 1536년 창덕궁의 새로 설치한 보루각의 자격루로 추정된다. 문화재청은 기록으로만 전해져오던 조선 시대 자동 물시계의 주전 실체가 처음 확인된 것으로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서울=뉴시스] 천문시계 일성정시의, 주천도분환 바깥지름 42㎝, 일구백각환 복원 바깥지름 37.5㎝, 성구백각환 바깥지름 35.5㎝ (사진=문화재청 제공) 2021.06.29. [email protected]
활자가 담겼던 항아리 옆에서는 주·야간의 천문시계인 일성정시의가 출토됐다. 낮에는 해시계로 사용되고 밤에는 해를 이용할 수 없는 단점을 보완해 별자리를 이용하여 시간을 가늠한 용도이다. '세종실록'에 따르면 1437년 세종은 일성정시의 4개를 만든 것으로 기록됐다.
이번에 출토된 유물은 일성정시의 중 주천도분환(周天度分環), 일구백각환(日晷百刻環), 성구백각환(星晷百刻環) 등 일성정시의의 주요 부품들로, 시계 바퀴 윗면의 세 고리로 보인다. 문화재청은 현존하는 자료 없이 기록으로만 전해져오던 세종대의 과학기술의 그 실체를 확인한 것으로 의미가 크다고 밝혔다.
[서울=뉴시스] '승자총통' 일괄 출토품 (사진=문화재청 제공) 2021.06.29. [email protected]
소형화기인 총통은 승자총통 1점, 소승자총통 7점으로 총 8점이다. 조사 결과, 최상부에서 확인되었고, 완형의 총통을 고의적으로 절단한 후 묻은 것으로 보인다. 복원된 크기는 대략 50~60㎝다.
총통에 새겨진 명문을 통해, 계미(癸未)년 승자총통(1583년)과 만력(萬曆) 무자(戊子)년 소승자총통(1588년)으로 추정되었다. 장인 희손, 말동 제작자가 기록되어 있다. 이 가운데 장인 희손은 현재 보물로 지정된 서울대학교 박물관이 소장한 '차승자총통'의 명문에서도 확인되는 이름이다.
만력 무자년이 새겨진 승자총통들은 명량 해역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서울=뉴시스] '嘉靖十四年'명 동종, 밑지름 40㎝ (사진=문화재청 제공) 2021.06.29. [email protected]
동종은 일성정시의의 아랫부분에서 여러 점의 작은 파편으로 나누어 출토됐다. 포탄을 엎어놓은 종형의 형태로, 두 마리 용 형상을 한 용뉴도 있다. 귀꽃 무늬와 연꽃봉우리, 잔물결 장식 등 조선 15세기에 제작된 왕실발원 동종의 양식을 계승했다.
종신 상단에 '嘉靖十四年乙未四月日(가정십사년을미사월일)'이라는 예서체 명문이 새겨져 있어 1535년 4월에 제작됐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왕실발원의 동종에는 주로 해서체가 사용되므로, 왕실발원의 동종과는 차이점을 보이기도 한다. 1469년 추정 '전 유점사 동종', 1491년 '해인사 동종(보물)' 등의 유물과도 비슷한 양식이다.
출토 유물들은 현재 1차 정리만 마친 상태다. 문화재청은 "이 유뮬둘울 국립고궁박물관으로 이관하여 안전하게 보관하고 있다"며 "앞으로 보존처리와 분석과정을 거쳐 각 분야별 연구가 진행된다면, 이를 통해 조선 시대 전기, 더 나아가 세종 연간의 과학기술에 대해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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