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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제 교사 노트북을 제 손바닥 보듯" 시험 답 빼낸 고교생들

등록 2022.07.27 14:10:16수정 2022.07.27 14:3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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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벽 창문으로 교무실 드나들며 노트북마다 악성코드 심어

2학년 1학기 중간·기말고사 영어 제외한 모든 과목 답 빼내

통째 적은 답안에 결국 덜미…"성적 더 올리고 싶었다" 시인

[광주=뉴시스] 광주 서구 대동고등학교. (사진=뉴시스DB). photo@newsis.com

[광주=뉴시스] 광주 서구 대동고등학교. (사진=뉴시스DB). [email protected]


[광주=뉴시스] 변재훈 기자 = 학교 교무실에 수시로 무단 침입해 출제 교사 노트북 여러 대에서 시험 답안을 빼낸 고등학생들의 범행 경위가 경찰 수사를 통해 밝혀지고 있다.

27일 광주 서부경찰서에 따르면, 광주 대동고 2학년 학생인 A·B군은 올해 4월 중순 어느 날 밤늦게 학교를 다시 찾았다.

하교한 지 한참 지난 오후 10시 넘긴 시각이었지만, 이들은 별다른 제지 없이 교문을 지나쳐 갔다.

본관 내 열린 창문을 차례로 넘어 건물로 들어선 뒤 실내 계단을 통해 4층까지 걸어 올라갔다. 소강당 창문을 통해 다시 건물 바깥으로 나와 외벽 난간과 배수관 등을 디딤돌 삼아 수평으로 이동, 4층 2학년 교무실로 향했다.

잠겨있지 않은 교무실 창문을 열고 들어간 이들은 과목별 교사 노트북을 하나 둘 켜기 시작했다.

전원이 들어온 노트북 화면에 잠김 설정 비밀번호가 뜨자 B군은 자판을 몇 차례 두드려 일부러 3차례 비밀번호 오류를 냈다. 이어 자신의 휴대전화를 이용해 암호 해독 사이트에 접속, 화면에 나온 오류 코드를 검색·재입력했다.

운영체계(OS) 계정 비밀번호가 나오자, B군은 미리 준비한 USB(휴대용 저장장치)를 노트북에 꽂아 부팅 프로그램을 가동, '관리자 계정'을 활성화하는 명령어를 입력했다.

2번에 걸친 노트북 보안 절차를 해제한 B군은 USB에 미리 담아둔 '악성 코드'를 설치했다. 과목별 교사 노트북마다 20분씩을 들여 같은 과정을 반복하는 사이, A군은 힐끔힐끔 주변을 살폈다.

두 학생은 다른 과목 교사 자리가 있는 2층 교무실에도 열린 창문을 통해 넘나들며, 책상 위 노트북마다 차례로 악성 코드를 심었다.

2층 복도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는 출제 시험지 보관 장소 출입문만 비추고 있어, 두 학생의 수상한 행동은 녹화 영상에 담기지 않았다. 사설 방범 설비가 있었지만 작동조차 하지 않았다.

유유히 학교를 빠져 나온 이들은 사나흘이 지나 비슷한 경로로 2·4층 교무실을 오갔다. 이번에는 교사가 며칠 새 노트북으로 작업했던 화면이 그대로 담겨진 이미지 파일을 통째로 USB에 옮겨 저장했다.
 
1학기 중간고사를 앞둔 출제 기간 중 교사들이 만든 시험지와 배점·정답 등이 담긴 문항 정보표 등이 무더기로 B군의 USB에 차곡차곡 담겼다. B군은 앞서 설치한 악성 코드도 하나하나 삭제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렇게 두 학생은 중간고사 8개 과목 중 7개 과목(수학1·수학2·독서·생명과학·한문·일본어·화학)의 답안을 손에 넣었다. 서로 겹치지 않는 선택 과목을 빼면 각자 중간고사 응시 8개 과목 중 5개 과목 답안 중 일부 또는 전부를 외웠다.

며칠 뒤 치른 중간 고사에서 두 학생은 꽤 좋은 성적을 거뒀다. 답을 아예 빼내지 못한 영어 과목은 서로 점수가 크게 엇갈렸다.


[광주=뉴시스] 이영주 기자 = 26일 오후 광주 서구 대동고등학교 본관 4층 2학년 교무실이 잠겨있다. 대동고에서는 지난달 말 교내 재학생 A(17)군 등 2명이 2학년 교무실에 침입해 교사들의 노트북에 악성코드를 심는 방식으로 기말고사 시험지를 빼돌렸다. 2022.07.26. leeyj2578@newsis.com

[광주=뉴시스] 이영주 기자 = 26일 오후 광주 서구 대동고등학교 본관 4층 2학년 교무실이 잠겨있다. 대동고에서는 지난달 말 교내 재학생 A(17)군 등 2명이 2학년 교무실에 침입해 교사들의 노트북에 악성코드를 심는 방식으로 기말고사 시험지를 빼돌렸다. 2022.07.26. [email protected]



두 학생은 기말고사(7월 11~13일)를 열흘여 앞둔 지난달 30일 밤 다시 한번 교무실을 찾았다. 그 사이 한국사 교사가 자리를 옮긴 별관 교무실까지 총 3곳을 아슬아슬 넘나들며 또 다시 답안을 빼냈다.

이번에는 공통 5개·선택 4개 과목의 답안 일부 또는 전부를 빼냈고, 영어를 제외한 전 과목(7개)을 각자 미리 답을 외운 상태로 기말고사를 치렀다.

이렇게 완전 범죄로 끝나는 듯 했지만, 시험 직후 A군의 행동을 수상히 여긴 같은 반 학생들에게 덜미가 잡혔다.

답을 통째로 외운 B군과 달리, A군은 문제지 모서리 부분에 답을 한꺼번에 적은 뒤 시험을 치렀다. 시험이 끝나면 답안이 적힌 문제지 모서리를 갈기갈기 찢어 쓰레기통에 버리곤 했다.

이를 눈 여겨 본 학생들은 갈기갈기 찢겨 있는 쪽지를 다시 맞춘 뒤 생명과학 과목의 정정 전 오답까지 적혀있는 점을 의심, 학교에 알렸다.

학교 측 수사 의뢰를 받은 경찰은 A군 자택에서 지난 25일 압수수색을 벌였다. 같은 날 A군의 자백으로 B군의 공모 사실도 드러났다.

경찰은 이들을 업무방해·건조물침입 혐의로 입건하는 한편, 악성 코드 설치에 대해서는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를 추가 적용할 지 검토하고 있다.

이들은 경찰에 '평소 성적 향상에 대한 부담과 욕심이 컸다. 좋은 대학에 진학하고 싶었다'고 범행 동기를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올해 1월부터 범행을 계획한 것으로 보인다. B군이 보안 체계를 무력화하고 직접 변형한 악성 코드를 설치하는 등 주도한 것으로 보고 있다"면서 "가능성이 크지는 않지만 두 학생의 휴대전화 내역을 통해 추가 공모 학생 등이 있는지도 살펴볼 계획이다"고 밝혔다.
[광주=뉴시스] 일선 학교에서 쓰이는 문항정보표 양식. 위 사진은 기사 본문과 관계없음. (사진=독자 제공) 2022.07.26.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광주=뉴시스] 일선 학교에서 쓰이는 문항정보표 양식. 위 사진은 기사 본문과 관계없음. (사진=독자 제공) 2022.07.26.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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