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늘리면 '필수의료 대란' 해결될까…의료계 "회의적"
주기적 의료수요 예측해 정원 조정해야
의대 신설 아닌 기존 의대 정원 늘려야
의료전달체계 개선·필수의료 지원 필요
[서울=뉴시스] 김근수 기자 = 이형훈(오른쪽)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이 지난달 20일 서울 중구 컨퍼런스하우스 달개비에서 열린 제7차 의료현안협의체 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2023.04.20. [email protected]
23일 의료계에 따르면 지난달 간호법 제정안과 의료인 면허취소법 국회 본회의 상정을 앞두고 의정협의체 참여를 일시적으로 중단했던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오는 24일 의료현안협의체에 복귀해 의대정원 확대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다. 의대정원은 2006년 이후 올해까지 17년째 3058명으로 동결돼왔다.
전문가들은 인구 고령화로 급증하는 의료수요에 대비하려면 의대정원을 늘려야 하지만, 매년 일정 규모씩 확대하기 보다 주기적으로 의료 수요를 예측해 의대정원을 확대 또는 감축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박은철 연세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5년 주기로 의대정원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면서 "2000년 의약분업(의사는 진료·처방, 약사는 조제) 여파로 줄어든 의대정원 351명을 원상복구하는 선에서 시작하고 이후 의료수요에 따라 줄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2040년까지 고령 인구 급증으로 의료수요가 늘어나고, 이후에는 총인구가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의대정원을 탄력적으로 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의대를 신설하면 교육의 질적 저하가 우려되는 만큼 필요한 교육시설과 교수진을 갖추고 있는 기존 의대 정원을 증원하는 것이 의료 인력 배출에 더 효과적이라는 목소리도 있다.
서울의 A상급종합병원 심장혈관흉부외과 교수는 "의대 건물을 새로 짓고 시설과 장비를 마련해 교육 여건을 갖추려면 막대한 돈과 자원이 투입돼야 한다"면서 "의대를 신설한다고 해도 현실적으로 해부학 등 기초의학을 가르칠 교수를 구하기 어려워 수련병원으로서 제 역할을 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의대정원을 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배출된 전공의를 실제 수요를 기반으로 배치해야 효과를 제대로 볼 수 있다는 견해도 나온다. 현재 전공별 전공의 인원(TO)을 관리하는 학회가 매년 새로 선발한 전공의 정원을 책정하면 복지부 산하 위원회에서 이를 심의·의결해 공개하고 있는데, 진료과목별로 전공의가 실제 수요대로 배치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의료계 관계자는 "각 진료과목별 학회가 급변하는 의료수요를 반영하지 않고 전공의 교육을 담당하는 지도전문의 수에 따라 인원을 편성하는가 하면 진료과목의 희소성을 높이기 위해 일부러 전공의 전공을 줄이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의대정원 논의와 함께 의료전달체계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1차 의료기관인 동네 병의원이 경증 환자를 맡아 대학병원의 진료 과부하를 줄여주고, 치료가 시급한 중증·희귀 환자의 경우 대학병원으로 빨리 보내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체계를 확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상급종합병원의 경우 환자들이 전국 각지에서 몰리고 있지만 의사가 부족한 반면 개원가(동네 병·의원)는 배출되는 의사는 많지만 진료할 환자가 부족한 실정이다.
김이연 의협 홍보이사는 "최근 당정이 발표한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안은 의료계와 소통이 부족한 채 나왔는데, 초진이 대거 허용되면 (1차 의료기관인 동네 병·의원이 어려움을 겪어) 의료전달체계가 붕괴될 우려가 있어 세부적인 사항이 반드시 논의돼야 한다"고 말했다.
또 보건복지부는 의사 수 부족부터 해결하지 않으면 미래 필수의료 인력을 확대할 기회조차 없다며 의대 정원 확대가 시급하다는 입장이지만, 현장에서는 의료시스템 개선이나 유인책 없이 의대정원을 늘리는 것 만으로는 긴급수혈이 필요한 필수의료 공백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김 홍보이사는 "의대정원을 늘려 10년 후 현장에서 일할 의사 수를 늘린다고 하더라도 실질적으로 필요한 필수의료 분야로 가진 않을 것"이라면서 "당장 의료소송 등의 부담으로 응급·소아환자를 돌볼 의사가 없는 만큼 의료현안협의체에서 숙련된 전문의들이 의료현장을 떠나지 않도록 실질적인 논의가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의대정원을 늘리면 조금 완화될 수 있겠지만, 소아중증 질환·심뇌혈관 질환 등 필수의료 공백을 해결하긴 어렵다"면서 "가령 경상북도에서 칠곡경북대병원 소아응급전문의에게 매년 인건비를 1억 원 지원하는 것과 같은 지자체의 재정 지원이 병행돼야 한다"고 했다.
특히 지방의 경우 필수의료가 이미 붕괴되고 있는 만큼 열악한 정주 여건, 높은 근무 강도 등 의사들이 지방 근무를 기피하는 요인을 해소할 수 있는 유연한 근무형태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 서울의 B상급종합병원 공공부원장은 "정주 여건이 열악하고 자녀 교육도 문제가 돼 지방 근무를 꺼리는 의사들이 많다"면서 "거주지를 서울로 하고 일주일 중 사흘 가량은 지방에서, 나머지는 서울에서 근무하도록 하는 것도 검토할 만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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