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계 화려한 발자취 故 김석원 쌍용 회장은 누구?
30세 젊은 나이 쌍용그룹 회장 올라
공격적 경영으로 '재계 6위' 이끌어
쌍용차 인수 뒤 코란도·체어맨 출시
1996년 선친 이어 국회의원에 당선
전두환 비자금 불법 실명전환 의혹
외환위기後 의원직 사퇴 경영 복귀
쌍용차 부실로 그룹 해체 수순 밟아
용평스키장 등 동계스포츠 기틀 다져
[서울=뉴시스] 김선웅 기자 = 김석원 전 쌍용그룹 회장이 26일 별세했다. 향년 78세. 고인은 부친 김성곤 쌍용그룹 창업주의 뒤를 이어 2대 회장으로 중화학, 금융업 등 사업영역을 확대시켜 그룹을 재계 6위까지 성장시켰으며 쌍용그룹 전성기를 이끌었던 인물로 평가받는다. 15대 국회의원, 한국스카우트연맹 총재, 세계청소년캠프 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26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신촌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에 고인의 영정이 놓여있다. 2023.08.26. [email protected]
김성곤 쌍용그룹 창업주의 장남으로 경영을 이어받아 그룹을 재계 6위까지 성장시켰던 고인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돼 정계까지 진출했다.
하지만 1990년대 말 외환위기를 거치며 쌍용그룹이 해체되는 과정을 지켜봐야 했다. 정치활동도 자의 반 타의 반 중단하면서 재계와 정계 모두에서 무대의 뒤편으로 물러나야 했다.
'재계 6위' 쌍용의 전성기 이끌어
김 전 회장은 젊은 나이에도 성공적으로 그룹을 이끌었다. 쌍용중공업과 쌍용종합건설을 세우며 기업 규모를 키웠으며, 석유와 금융 사업에도 진출했다. 특히 1986년 삼성을 제치고 동아자동차를 인수하며 자동차 사업을 시작했다.
동아자동차는 1998년 쌍용자동차로 바꿨으며 이후 국내 스포츠실용차(SUV) 대표 모델인 코란도와 무쏘 등을 잇달아 출시했다. '회장님 차'로 불리던 대형 세단 체어맨도 고급차로 명성을 얻었다.
김 전 회장의 공격적인 경영으로 쌍용그룹은 급성장을 거듭했고, 재계 서열이 6위까지 올랐다. 김 전 회장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김현철 삼미그룹 회장과 함께 '재계 3김'으로 불리며 성공한 경영인으로 자리 잡았다.
【서울=뉴시스】 김석원 전 쌍용그룹 회장이 26일 별세했다. 사진은 지난 2016년 4월 21일 대한스키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이 서울 종로구 성곡미술관을 방문해 김석원 전 쌍용그룹 회장에게 공로패를 전달하고 있는 모습. 2016.04.22. (사진=롯데그룹 제공) [email protected]
'전두환 비자금·쌍용 해체' 오명
하지만 선거 전부터 전두환 전 대통령의 거액 비자금을 불법으로 실명 전환해준 의혹으로 검찰에 소환되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1997년 12월 제15대 대통령 선거에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후보의 청년특보로 참여했으나,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패배했다.
정치적 부담이 커진 김 전 회장은 쌍용그룹까지 외환위기로 부도 위기에 처하자 결국 정치활동을 중단하고 경영일선에 복귀한다. 하지만 쌍용그룹 경영은 이미 되돌리기 어려운 상황에 몰렸다. 김 전 회장이 인수한 쌍용차에 대한 무리한 투자가 문제였다. 결국 쌍용그룹은 1999년 채권단에 의해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이 시작되며 해체수순을 밟게 된다.
굴곡진 개인사
한편 김 전 회장은 1974년 용평 스키장을 만들어 국내 동계스포츠 발전의 기틀을 다지는 데 일조했다. 1982년에는 한국스카우트연맹 총재로 선출돼 스카우트 운동에 헌신했으며, 1988년 서울올림픽 직후에는 세계청소년캠프 본부장을 맡아 청소년 국제교류에 이바지했다. 1991년 강원 고성 세계스카우트잼버리 대회를 유치하는 데 큰 역할을 했으며, 2000년부터 2년간 세계스카우트지원재단 의장으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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