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동정씨·관동이씨…'한양의 세거지' 기획연구보고서 발간
서울역사박물관, '한양의 세거지' 발간
동·서·남·북·중 5개 지역별 거주자 특성
[서울=뉴시스]
연구에는 안대회 성균관대학교 교수를 책임으로 이종묵 서울대학교 교수, 오세현 경상대학교 교수, 김하라 연세대학교 교수, 김세호 경상대학교 교수가 참여했다.
조선 후기 한양의 거주 양상을 살펴보면 신분별·직업별로 모여 사는 경향이 있었다. 조선 후기 한양 인구는 약 19만 명이었다. 한양을 동·서·남·북·중 5개 지역으로 나눠 ▲(동촌) 반인(伴人)과 무관 ▲(서촌)하급관리 ▲(남촌)남인과 소론·소북 ▲(북촌)양반과 종친 ▲(중촌)중인과 시전 상인이 주로 살았다.
또 양반들의 경우 서울 곳곳에 세대를 거듭해 모여 사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러다 보니 거주 지역명이 본관의 별칭처럼 불리기도 했다. 한 곳에 오래 모여 거주하다 보니 집안의 고유한 문화가 지역성으로 자리 잡은 경우도 많았다.
예를 들어 조선 500년 간 서울 회현동에 터를 잡고 살았던 동래정씨를 '회동정씨'라고 말해도 한양사람들에게는 통칭됐던 것이다. 회동정씨는 조선 개국 이래 회현동에 세거하면서 한양 조망이 가능한 쌍회정, 재산루, 홍엽정 등을 조성했고 인근 남산의 경관을 형성하는 데도 큰 역할을 했다.
한양의 동촌에 터전을 이룬 연안이씨는 '관동이씨'로 불렸다. 초기 황해도 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석형이 동촌에 자리를 잡으면서 이곳에 연안이씨가 모이기 시작했고 그 후손 이정귀가 관동에 거주하면서, '관동파'라는 조선 중기 문인들의 모임을 주도했다.
'정동이씨'는 정동에서 거주하는 여주이씨를 일컫는 말이다. 고려후기 개경을 세거지로 삼았던 여주이씨 가문은 한양과 주변을 옮겨 다니다가 17세기 이상의부터 정릉에 거주했다.
마지막으로 인왕산 근처 장동에 자리 잡아 '장동김씨'라 불리는 청풍계 안동김씨가 있다. 장동김씨는 병자호란 당시 강화도에서 순절한 김상용과 남한산성에서 항전하며 척화를 주장한 김상헌의 후손들로 장동일대에서 고유한 문화를 이끌어 낸 것으로 유명하다.
지역 이름이 붙지는 않았으나 북촌과 용산일대에서 세거한 전주이씨도 꼽을 수 있다. 전주이씨 영해군 파는 인왕산 기슭과 용산의 본가, 두릉(반포)의 별서, 광주 및 저자도의 선영을 운영했는데 한 집이 시대와 상황에 따라 본가와 거주지를 이동하면서 어떠한 생활을 영위했는지 살펴볼 수 있는 사례다.
이번에 공개한 '한양의 세거지'는 서울시청 지하 1층에 위치한 서울책방 매장 및 누리집, 서울역사박물관 내 뮤지엄 숍 에서 구매할 수 있다. 가격은 1만5000원이다.
최병구 서울역사박물관장은 "조선시대 한양의 명문가의 거주 실태를 연구한 결과 본관을 떠나 지역명을 성씨 앞에 붙여 통용하는 경우 등 흥미로운 사실들이 발견됐다"며 "앞으로도 시민들에게 서울의 역사를 알리기 위해 다양한 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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