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전원 배치 붙어" 中어선 출몰에 제주해경 출동, 단속 '숨바꼭질'
국내 최대 5000t급 경비함정 타보니
날로 교묘해지는 중국어선 불법 조업
고도화된 관제시스템·고속단정 대응
4면이 바다 제주, 함정 부족 문제점도
[제주=뉴시스] 제주 서귀포해양경찰서 5002함 소속 기동대원이 10일 오전 한중잠정조치 수역에서 중국어선 검문검색을 위해 등선하고 있다. 2024.10.13. [email protected]
무허가 조업 후 도주하다가 붙잡히는가 하면 촘촘한 그물망으로 치어까지 어획하는 '싹쓸이' 중국어선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하반기 금어기가 해제되면서 '황금어장'이라고 불리는 우리나라 수역에 빨간불이 켜졌다.
청명한 가을 날씨를 보인 지난 10일 오전 7시 제주 서귀포시 화순항. 국내 최대 규모 경비함정인 서귀포해경 5002함이 정박해 있다. 이날 취재진은 5002함에 승선해 1박2일에 걸쳐 불법 중국어선 불시단속 동행취재를 진행했다. 총 승선원은 58명.
◇홋줄 걷고 출항…최대 3m 파고 속 100여㎞ 항해
오전 8시 출항에 앞서 홋줄 걷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육상에서 묶여 있는 홋줄이 풀리면 함정에 있던 안전팀원들이 크레인을 이용해 감는 식이었다. 이 과정에서 홋줄이 발에 걸린다거나 장력에 의해 터지기라도 하면 인명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늘 주변 상황에 주의해야 한다고 해경은 설명했다.
목적지는 서귀포항에서 약 160㎞ 떨어진 한중잠정조치수역이다. 우리나라와 중국 간 바다의 경계선 부근이다. 불법 조업을 시도하는 중국어선과 이를 차단하려는 해경 사이에 치열한 사투가 벌어지는 '최전선' 영역이라고 볼 수 있다.
이날 해상에서는 2.5~3m의 비교적 높은 파고가 일었다. 초대형 함정인 터라 어지간한 파도에는 크게 흔들리지 않는 편이지만, 계단을 오르내릴 때나 갑판에 있을 때면 난간을 잡아야 할 정도다. 밖을 나갈 때면 누구든 반드시 구명조끼를 착용해야 했다.
[제주=뉴시스] 10일 오전 한중잠정조치 수역에서 경비 임무를 수행 중인 제주 서귀포해양경찰서 5002함에서 중국어선 검문검색을 위해 고속단정을 내리고 있다. 2024.10.13. [email protected]
오전 9시30분 5002함 기준 남동쪽 18㎞ 해상에서 조업 중인 중국어선(위망) 12척이 식별됐다. 모두 고등어 잡이 어선이다. 지휘부격인 조타실에서 사전회의를 열고 300t급 중국어선에 대한 검문검색 결정이 내려졌다.
결정과 동시에 선내 방송을 통해 '중국어선 검문검색 30분 전, 전원 배치붙어'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직원들은 동시다발적으로 '배치 붙어'를 복명복창했고, 일사분란하게 출동 준비에 나섰다.
갑판에 모인 기동대 직원들은 각 9명씩 2개조로 편성됐다. 헬맷, 조끼, 케이블타이, 통신기, 삼단봉 등 장구류를 점검한 뒤 고속단정에 올랐다. 일부 취재진도 함께 탑승했다. 단정은 크레인을 통해 갑판에서 해상으로 내려갔다.
고속단정은 해상에서 시속 40~50㎞에 속도로 이동해 매우 빠른 편에 속한다. 출렁거리는 파도에 따라 바닷물이 쉴새 없이 들어오고 흔들림도 상당했다.
신경진 5002함장은 무전으로 "검문검색 대상 중국어선은 올해 처음으로 제주 수역에 입역했다. 어획물 등을 집중 단속해 위반사항이 있는지 정밀검색 해주길 바란다"면서 "단속 시 저항이 예상돼 안전을 최우선으로 검문검색을 실시하라"고 주문했다.
[제주=뉴시스] 제주 서귀포해양경찰서 5002함 소속 기동대원이 10일 오전 한중잠정조치 수역에서 중국어선 검문검색을 위해 등선하고 있다. 2024.10.13. [email protected]
중국어선에 다다르자 고속단정 한 대원이 노란색과 검은색 체크 무늬의 깃발을 들고 정선 명령을 내렸다. 이어 한 명씩 어선에 올랐다. 중국어 특채 요원이 선장에게 검문검색 상황을 설명했다.
대원들은 선장실에 이동해 조업일지를 살펴봤다. 조업일지는 언제 어디서 어떤 어종을 얼마나 잡아들였는지를 꼼꼼하게 작성해야한다. 이를 작성하지 않거나 허위(축소) 기재하면 제한조건 위반에 따른 처벌 대상이다.
또다른 대원은 어창으로 이동했다. 불법 조업 선박의 경우 어창 안에 보이지 않는 공간을 마련해두는 이른바 '비밀어창'을 만들어 놓고 저장하는 사례도 있어 세밀하게 살펴야 한다고 해경은 전했다.
조업일지에 기재된 어획량과 실제 어획량을 확인하기 위해 어창 안 상자들의 무게를 하나하나 재다보면 통상 3~4시간은 소요된다고 해경은 설명했다. 다만 이날 검문검색 선박이 전날 어획물등을 운반선에 실어보낸 상태여서 어창은 비어 있었다.
이밖에도 어업허가증, 선박서류, 승선원 정보 등을 일일히 대조하는가 하면 사용하는 그물의 크기와 규격을 확인해 정상적인 어구를 사용하는지 등도 확인한다. 어린 물고기까지 싹쓸이하는 사례가 대다수기 때문이다.
[제주=뉴시스] 제주 서귀포해양경찰서 5002함 내 레이더 장비. 2024.10.13. [email protected]
조업이 활성화되는 밤시간대 불법 중국어선들의 조업 시도가 빈번해진다. 해경은 레이더 등 관제시스템을 통해 해역에 있는 모든 중국 어선들의 동향을 파악한다. 5002함 1대가 관할하는 해역은 차귀도 남서쪽 112㎞부터 마라도 남쪽 90㎞까지 140여㎞에 달한다.
레이더 등 관제 장비 성능이 고도화되면서 먼 거리에 있는 선박을 식별할 수 있게 됐다. 특히 5002함 같은 대형함정은 더욱 쉽게 위치가 확인된다. 이를 악용하는 중국어선들도 늘고 있다. 가령 동측 해역에서 경계 임무를 하고 있다면 서해상으로 이동해 빠르게 그물을 내리는 '게릴라식' 조업이다.
최근에는 중국어선 1척이 경비함정을 따라다니고 무전을 통해 동료 중국어선들에게 동향을 보고하는 식으로 불법 조업을 펼치고 있다. 해경은 이러한 불법 조업이 의심되면 전속력 기동을 통해 추격하거나 고속단정을 투입, 차단 또는 퇴거 조처한다.
◇전국 유일 동서남북 수호 제주해경 "경비함정 '절실'"
제주해경청은 섬 특성 상 전국 지방해경청 중 유일하게 동서남북 해역을 수호해야 한다. 이 때문에 불법 조업 외국어선은 어느 방향에서나 출현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을 경계하는 장비인 경비함정이 부족한 탓에 일정 공백이 발생한다는 한계가 있다.
[제주=뉴시스] 10일 오전 제주 서귀포시 화순항에 제주 서귀포해양경찰서 5002함이 정박해 있다. 2024.10.13. [email protected]
그러면서 "풍선효과처럼 게릴라조업이 이뤄지는 것이다. 경비함정이 한 척 더 있다면 동서 해역 경비가 이뤄질 텐데, 완벽하게 임무를 수행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하지만 현재 1척만 있기 때문에 애로사항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전했다.
◇9~12월 불법 조업 '피크'…"해양주권 수호·어족자원 보호 총력"
해경은 올해 불법조업 중국어선 10척을 나포하고 불법 범장망 등 무허가 중국어선 총 289척을 차단·퇴거하는 등 단속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2021년부터 지난해까지 최근 3년간 제주 해역에서 총 1294척의 불법 조업 중국어선이 적발됐다. 이 중 9~12월 사이 적발된 중국어선은 1075척으로 전체 83%에 달한다. 10월16일부터 새우잡이(타망) 어선이 몰려들면서다.
같은 기간 무허가 조업 등 중대위반 사항을 저질러 나포된 중국어선은 42척인데, 이 중 9~11월 3개월간 20척이 적발됐다.
[제주=뉴시스] 10일 오전 제주 서귀포시 화순항에서 서귀포해양경찰서 5002함이 출항 준비를 위해 홋줄을 걷고 있다. 2024.10.13. [email protected]
하지만 중국은 질보단 '양'이다. 촘촘한 그물로 어린 물고기까지 무차별적으로 쓸어 담는 탓에 자국 해역에서는 이미 잡을 만한 어종이 거의 없다고 한다. 우리나라 해역까지 내려오는 이유다.
신경진 5002함장은 이날 함정에서 진행된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 "10월 중순 타망 조업이 본격화되면 넓은 해역에서 조업이 재개된다. 경비함정을 비롯해 항공기를 동원한 입체적 경비에 돌입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불법 조업을 자행하는 외국어선에 대해 고도화된 경비 차단 방법으로 적극 대응해 나가겠다. 강력한 해양주권수호와 함께 소중한 어자원 보호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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