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北·장거리미사일 '방정식' 바뀌었다…종전vs확전 중대기로[우크라戰1000일①]
1000일 중대 변곡점 맞아…최악엔 3차 대전 우려도
[서울=뉴시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좀처럼 돌파구가 보이지 않던 전쟁은 11월5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선 성공으로 기류가 급변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선거운동 기간 중 "24시간 내에 전쟁을 끝내겠다"거나 미국의 지원을 중단하겠다고 언급했다. 급해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트럼프 당선인의 공식 취임(내년 1월20일)을 두 달 남겨두고 대규모 공격을 주고 받으며 한 치라도 더 우위에 서려고 속도를 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전쟁 1000일을 앞두고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돌연 우크라이나에 장거리 미사일 제한을 풀면서 전쟁은 중대한 전환점을 맞았다. 종전 아니면 확전, 심지어 3차 세계대전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중대기로에 섰다.
[워싱턴=AP/뉴시스]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앞)이 지난 7월11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DC에서 나토 정상회의를 계기로 열린 정상들의 우크라이나 지원 행사에서 지지 연설을 하고 있다. 뒤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2024.11.19.
트럼프 당선-北파병에 급변…美바이든, 장거리 미사일 허용 '승부수'
바이든 정부는 지난 5월 처음으로 러시아 본토에 미국산 미사일을 사용할 수 있도록 일부 허용했다. 당시 러시아가 북부 하르키우 방향으로 대규모 공격을 감행하자 '방어 목적으로만', '국경 인근 러시아 군사목표물'을 타격하는 조건으로 사거리가 50마일(약 80㎞)인 고속기동포병로켓시스템(HIMARS·하이마스)을 사용할 수 있도록 일부 제한을 해제했다.
그러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끈질긴 요청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와의 확전 가능성을 경계하며 사정거리가 190마일(약 300㎞)에 달하는 에이태큼스 사용 승인은 거부해왔다.
그러다 우크라이나 전쟁 1000일, 잔여 임기 두 달을 남기고 에이태큼스 사용을 전격 허용했다.
이 배경엔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과 함께 북한군 러시아 지원 파병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군은 현재 우크라이나가 일부 점령한 쿠르스크 지역 탈환을 돕기 위해 러시아에 군을 파견했다. 약 1만2000명 안팎 규모로 추정되고 있다.
실제 미 당국자들은 "우크라이나에 장거리 미사일 사용을 허용한 것은 러시아가 북한군을 전투에 투입하기로 하는 갑작스런 결정에 대한 대응"이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는 이 미사일을 쿠르스크 지역의 러시아군 및 북한군 밀집 장소와 주요 군사 장비, 물류 거점, 탄약고, 러시아 본토 깊숙한 곳에 있는 보급로를 타격하는데 주로 사용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더해 영국과 프랑스 정부도 뒤이어 장거리 공대지 순항미사일 '스톰 섀도'(프랑스명 스칼프) 사용을 승인할 것으로 점쳐진다. 이 미사일은 영국과 프랑스가 공동 개발한 것으로, 사거리는 155마일(약 250㎞)이다. 이와 관련 르피가로는 바이든 대통령 결정 직후 영국과 프랑스 정부도 이를 승인했다고 보도했다가 이후 삭제했다.
[뉴욕=AP/뉴시스] 지난 9월27일(현지시각) 미국 뉴욕 트럼프타워에서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 공화당 대선 후보(오른쪽)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만나고 있다. (사진=뉴시스DB)
묘수일까 악수일까…"전세 변화 없이 긴장 고조" 우려도
NYT, AP통신 등에 따르면 미 당국자들도 "이번 결정으로 전쟁 흐름이 근본적으로 바뀔 것이라고 기대하진 않는다"고 인정했다. 다만 북한에 더 이상 군을 보내지 말라는 등의 경고 메시지를 보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관건은 러시아의 대응 수위다. 이미 푸틴 대통령은 서방이 장거리 미사일 사용을 승인할 경우 사실상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국의 직접적인 개입으로, 전쟁의 본질과 성격을 크게 바꾼다"며 "적절한 대응"을 경고한 바 있다.
더욱이 러시아는 핵무기 운용전략을 규정한 핵 독트린(핵교리) 개정 작업을 마무리 중이다. 푸틴 대통령이 지난 9월 말 공개한 초안에 따르면 '비핵국가이지만 핵 보유국의 참여 또는 지원을 받아 러시아를 공격하는 경우 공동 공격으로 간주', 핵무기로 대응할 수 있도록 했다.
'비핵국가'인 우크라이나가 '핵 보유국'인 미국의 '참여 또는 지원'을 받아 러시아를 장거리 미사일로 공격할 경우 '공동 공격으로 간주'해 핵무기로 대응할 수 있단 의미다.
이와 관련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은 "러시아가 핵무기 사용 선을 넘지 않을 것이란 서방의 믿음은 오산"이라며 "미국이 러우 분쟁에 계속 기름을 끼얹으면 3차 세계대전으로 가는 길이 열릴 것"이라고 위협하기도 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18일 "이번 결정이 공식화되고 우크라이나 정권에 전달됐다면 이것은 질적으로 새로운 긴장 고조이며 미국이 분쟁에 직접 개입한다는 측면에서도 질적으로 새로운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위성 정보 활용 및 데이터 입력 등 표적을 지정하는 것 등은 우크라이나군이 아닌 서방 군사전문가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 거듭 지적했다.
한편으론 이번 결정이 트럼프 행정부를 겨냥한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미국의 억만장자 데이비드 색스는 소셜미디어 엑스(X)에 "트럼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종식하라는 명확한 위임을 받았다. 그렇다면 바이든은 남은 임기 두 달 동안 무엇을 할까요? 대규모 확전"이라며 "그의 목표는 트럼프에게 최악의 상황을 안겨주는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트럼프 당선인의 장남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도 "우리 아버지가 평화를 정착시키고 인명을 구할 기회를 갖기 전, 군산복합체가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도록 확실히 하려는 것 같다"고 비난했다.
[뷔르겐슈톡=AP/뉴시스] 지난 6월15일(현지시각) 스위스 중부 루체른 뷔르겐슈톡에서 우크라이나 평화정상회의 전체회의가 열리고 있다. (사진=뉴시스DB)
러·우크라, 종전안 '동상이몽' 여전…유럽도 "빨리 끝내자" 기류
먼저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가 점령·합병한 돈바스 및 노보로시야 지역에서 우크라이나군이 철수하는 즉시 평화협상에 나설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푸틴 대통령은 또 우크라이나에 나토 가입 포기, 비블록화, 비핵 지위를 요구하고 있으며, 서방의 대러시아 제재도 전부 해제할 것을 원하고 있다.
반면 우크라이나도 자국 영토를 포기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다만 NYT는 지난 13일자 보도에서 우크라이나 고위 관계자를 인용해 '영토'보다 '안전보장'을 최우선 순위로 두고 있다고 전했다. 그렇다고 우크라이나가 영토 포기를 공식 선언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현재 러시아는 전쟁에서 우크라이나의 영토 약 20%를 점령했다.
지난달 키이우 사회학국제연구소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우크라이나 국민 중 영토를 양보하고 휴전하는 것을 지지하는 비율은 지난해 19%에서 32%로 배 가까이 늘어난 것도 주목할 대목이다.
이와 함께 트럼프 당선인 측은 현재 전선을 동결해 비무장지대(DMZ)를 설치하고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20년간 유예하는 대신 미국이 방어용 무기를 제공하는 내용을 구상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으로 우크라이나는 종전안 '승리 계획'에 담긴 ▲우크라이나의 리튬, 가스, 티타늄 등 전략 자원 공동 사용 ▲전후 유럽 주둔 미군 일부 우크라이나군으로 대체 등 요건이 트럼프 정부가 미국의 지원을 계속하도록 설득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아울러 유럽은 공식적으로 우크라이나에 대한 변함없는 지지와 지원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내부적으론 피로감이 상당하며 균열 조짐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런 가운데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지난 15일 서방 정상으로는 2년 만에 처음으로 푸틴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했다. 이견을 재확인하는데 그쳤고 통화 자체에 대해 비판 여론이 일었지만, 얼어붙었던 대화의 물꼬를 텄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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