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 노벨문학상 소설가이자 대선 출마의 마리오 요사 타계
공산주의 성향에서 벗어나며 남미의 좌파 독재 지도자 비판
![[AP/뉴시스] 페루 소설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가 74세 때인 2010년 뉴욕서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듣고 기자들에게 말하고 있다](https://img1.newsis.com/2025/04/14/NISI20250414_0000258276_web.jpg?rnd=20250414200553)
[AP/뉴시스] 페루 소설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가 74세 때인 2010년 뉴욕서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듣고 기자들에게 말하고 있다
많은 소설 및 에세이를 남긴 요사 주요 소설은 '영웅의 시대' 및 '염소의 잔치' 등을 들 수 있고 수많은 상을 받았다. 2010년 노벨상위원회는 "권력 구조에 관해 지도를 그려주고 개인의 저항, 반란 및 패배를 통렬한 이미지로 그려낸" 요사에 문학상을 주었다.
페루 수도 리마에서 가족에 둘러싸여 평화롭게 영면했다고 자녀들이 온라인에서 말했다.
라틴 아메리카의 '새 물결' 작가군에 속한 요사는 23세 1959년에 첫 단편집을 출간했고 4년 뒤 '영웅의 시대'로 혜성처럼 데뷔했다. 이 소설은 페루 군사학교를 다닌 경험에서 끌어낸 것으로 페루 장군들의 분노를 샀다. 1000권의 책이 군 당국에 의해 불태워졌다. 장군들은 거짓으로 가득찬 책이며 요사를 공산주의자로 불렀다.
이어 요사는 1969년 '성당에서의 대화'를 냈고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및 카를로스 푸엔테스 등과 함께 1960년대 및 1970년대의 라틴 아메리카 '신조류 작가군인 '붐' 일원으로 꼽혔다.
요사는 일찍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으며 15세에 일간지의 파트타임 범죄 기자 노릇을 했다. 생애 대부분 기간에 언론에다 계속 글을 썼다. 여러 신문에 동시 게재되는 '시금석'이라는 정치 컬럼을 두 달에 한 번 씩 냈다.
개인과 경제 자유를 옹호한 요사는 이전의 공산주의 성향에서 벗어났다. 그러면서 독재자로 여겨지는 남미의 좌파 지도자들을 줄기차게 공격했다.
피델 카스트로의 쿠바 혁명을 지지했으나 후반 실망하면서 카스트로의 쿠바를 비판했다. 1980년 사회주의가 개발도상국들의 해결책이라고 더 이상 믿지 않는다고 공개 선언했다.
훨씬 일찍 노벨문학상을 탔던 콜롬비아의 마르케스와 친했으나 그를 '카스트로의 고급 매춘부'라고 조소했다.
이처럼 정치적 지향이 자유시장 보수주의로 변하자 요사는 라틴 아메리카 문인들로부터 지지를 상실했고 독자들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요사는 1936년 3월 페루 남부 아레키파에서 태어났다. 요사는 고국 페루에서 문학적 영감을 받았으나 마드리드, 뉴욕, 파리 등 외국에서 사는 것을 좋아했다.
그의 초기 소설은 페루 군부의 오만과 야만성, 귀족층의 퇴폐 그리고 20세기 도시의 황폐함 속에 공존하는 석기시대 아마존 인디언들의 삶을 드러냈다.
유럽서 16년 동안 살다 1974년 귀국했다. 좌파 군사 독재정권이 페루를 통치하고 있었다.
1990년 요사는 페루 대통령선거에 출마했다. 당시 페루는 공산 마오주의 게릴라들의 '구세주' 선동 반란과 초 인플레 경제로 분열되어 있었다.
'마지못해 출마한' 후보이기도 했던 요사는 무명의 대학 강사인 알베르토 후지모리에게 패했다. 일본계 후지모리는 당선 후 정치적 및 경제적 혼란상 상당부분을 해결했지만 시간이 흘러 스스로 부패하고 권위주의 지도자가 되었다.
요사는 이후 프랑스 화가 폴 고갱, 자신의 조모 등 실존 인물에 관한 성공적인 소설들을 2010년까지 썼다. 최후 작품은 1954년 미국 지원 과테말라 쿠데타에 관한 소설로 2019년에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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