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 트위터
  • 유튜브

광장

김민정·이경성·구자혜, 연극은 '헬조선'의 대안미디어…귀.국.전

등록 2016.04.07 09:17:45수정 2016.12.28 16:52:35

  • 이메일 보내기
  • 프린터
  • PDF
【서울=뉴시스】왼쪽부터 이경성, 구자혜, 김민정

【서울=뉴시스】왼쪽부터 이경성, 구자혜, 김민정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연극은 현실의 반영이라는 상투적인 말이 새삼스럽다. ‘헬조선’에서 은유와 상징 또는 유희가 중심이 되는 연극만 선보일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무브먼트 당당’의 김민정(43), ‘크리에이티브 바키의 이경성(33), ’여기는 당연히, 극장‘의 구자혜(34)는 흔치 않은 연출자들이다. 현실을 그로테스크하게 전시(김민정)하고, 세밀하게 기록하며(이경성), 재기발랄하게 풍자(구자혜)하는 연극인은 드물다.  

 서울문화재단 남산예술센터가 2016 시즌 주제기획전 ‘귀.국.전(歸國展)’의 연출들로 세 사람을 초대했다. 김 연출의 ‘불행’은 이 시대의 불행을 공연장 곳곳에 나열하며 대한민국의 불행한 현실을 모자이크처럼 직조해낸다. 이 연출의 신작 ‘그녀를 말해요’에는 ‘세월호 참사’로 딸을 잃은 엄마가 등장한다. 딸의 부재와 함께 사라진 하나의 세계에 대해 기록해나가며 앞뒤 맥락을 세심하게 파악한다. 구 연출의 ‘커머셜, 데피니틀리-마카다미아, 검열, 사과, 그리고 맨스플레인’은 한국사회를 폭로한다. 독일 샤우뷔네 극단의 토마스 오스터마이어 연출 등 현시점 공연예술계의 핫한 스타일을 끌고 들어와 풍자의 끝을 보여준다.   

 ‘귀국전’이라는 타이틀은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예술가들이 작품을 선보일 때 사용됐다. 이번 남산예술센터의 ‘귀.국.전’에 참가하는 세 연출은 해외에서 금의환향한 이들이 아니다. 골방 또는 연습실 또는 소극장, 즉 허름하고 작은 곳에서 바라본 고국을 이야기한다. 남산예술센터는 “이들 눈에 비친 고국은 불행하고, 슬프고, 폭력적이다. 하여, 이들의 작품을 보호할 타이틀로 한국 예술사의 어느 한때, ‘검열’을 피하기 위해 사용하기도 했다는 ‘귀국전’이라는 타이틀을 차용한다”고 전했다.  

 세 연출은 지난 1월 제작발표회에서 박근형, 고선웅, 장우재 등 올해 남산예술센터 시즌을 장식하는 쟁쟁한 연출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을 때도 빛을 발했다. 공교롭게도 남산예술센터 이번 시즌 개막작으로 연극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를 올린 박 연출을 비롯해 고 연출(‘한국인의 초상’), 장 연출(‘환도열차’)도 현 대한민국의 불행을 이야기했다.  

 김 연출은 “동시대의 작업을 계속해나갈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귀국전’에 대해 “여러 다른 종류의 연극 작업을 묶는 것인데 다들 결이 달라서 차이를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예고했다.

 ‘불행’은 이미 지난해 ‘제22회 베세토 페스티벌’을 통해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에서 공연했다. 프로시니엄 무대와 이 무대보다 객석이 높은 원형 공연장 형식의 객석이 뒤섞인 이곳의 특성을 살렸다.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새로 정의해 호평 받았다. 짐승의 가면을 쓴 이들이 무대와 객석 상관없이 곳곳에서 불행한 사건에 맞닥뜨린다. 관객이 공연을 관람하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공간에 자리 잡거나 곳곳을 돌아다녀야 한다. 그가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불행의 크기와 무게 그리고 질감이 달라진다. 김 연출은 “이미 형식이 만들어져서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그 공간을 채우는 내용들의 밀도에 좀 더 신경을 쓰고 싶다”고 말했다. 

 이 연출의 ‘그녀를 말해요’는 지난해 그의 신작 ‘비포애프터’의 연장선상에 있다. 세월호 참사를 다룬 ‘비포애프터’는 한국연극평론가협회가 뽑은 ‘올해의 연극 베스트3’, 한국연극협회가 발행하는 월간 ‘한국연극’이 선정하는 ‘2015 공연 베스트7’, 대한민국연극대상 신인연출상 등을 휩쓸었다. ‘비포애프터’가 여러 인물들의 기억을 통해 거시적으로 세월호 참사의 모순을 까발리는 묘를 발휘했다면, ‘그녀를 말해요’는 좀 더 내밀한 시간을 끄집어낸다. 이 연출을 비롯한 배우들은 세월호 참사로 딸을 잃은 엄마들을 인터뷰했다. 한 가정에서 18년간 자라며 겪었을 일상의 평범한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수집했다.

【서울=뉴시스】왼쪽부터 구자혜, 이경성, 김민정

【서울=뉴시스】왼쪽부터 구자혜, 이경성, 김민정

 이 연출은 “‘비포애프터’를 시작할 때 세월호가 내게 어떻게 다가오는가를 생각하는 것에서 출발했다”며 “그런데 그 자체에 갇힌다는 생각이 들었다. 표현이 적확할지 모르겠지만 당사자의 고통을 마주하는 방식을 다룰 때 당사자를 직접 만나지 않고는 이야기를 개진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공동체의 상처에 대해 완전히 도달할 수는 없겠지만 도달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봤다.”  

 구 연출의 ‘커머셜, 데피니틀리’는 지난해 자신이 동인인 ‘혜화동1번지 6기’의 가을페스티벌 ‘상업극’에서 초연했다. 당시 ‘마카다미아, 표절, 메르스 그리고 맨스플레인’이라는 부제를 달았는데 시시각각 변하는 시대의 흐름을 담아 ‘검열, 사과’를 ‘표절, 메르스’로 대신했다. 대학로에서도 가장 작은 소극장인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50석)에서 공연한 이 작품이 중극장 규모의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450석)에서 공연됐을 때 어떤 반응이 나올는지 기대를 모은다.   

 공공극장이나 국공립극장에서 연출하는 것은 처음이라는 구 연출은 “ ‘커머셜, 데피니틀리’는 표면, 즉 껍데기가 중요한 공연인데 홍보부터 예술적으로까지 상업적일 수 있는 의미가 담긴 남산예술센터에서 공연을 하게 돼 흥미롭다”고 말했다. 극은 초반에 영상 등을 통해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와 남산예술센터의 객석수를 비롯해 제작비 등 각종 여건을 직접적으로 비교한다. 그녀는 “작년 공연은 상업적이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면, 올해는 비로소 상업극이 됐다”며 “제작비가 몇배 늘었다는 등의 내용을 명시하면서 상업적인 것에 대한 의미를 나타내고 싶었다”고 부연했다. 

 한편에서는 공연 장르를 담는 극장이 모바일, TV와 경쟁에서 살아남아야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수많은 매체가 있음에도 모든 목소리를 내는 대신, 자극적인 것에 편향된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는 이 때 연극은 하나의 ‘대안 미디어’ 역을 해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김 연출은 “우리 작품을 보는 관객은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웃었다. “우리 내부 사람들, 주변 사람들, 이것에 관심이 있는 소수의 사람들만 본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1000만명이 보는 영화들과는 다른 위치에서 다른 의미들과의 싸움을 벌이고 있다고 생각한다.”

 구 연출도 마찬가지다. ‘여기는 당연히, 극장’의 배우가 그녀에게 ‘네가 연극이라도 하고 있으니 연출이라도 맡고 있지. 다른 곳에 있었으면 사람 구실을 제대로 하고 있겠냐’라는 말에 공감했다며 연극을 하는 이유를 스스로 에게서 찾았다. “우리 공연이 겉으로 보기에는 거칠다. 짓궂고 까불고. 근데 그것을 하기 위해서는 논리적으로 한땀한땀 개념을 세우는 작업을 한다. 그게 재미있고, 신나는 일”이라는 것이다. “연극을 하기 때문에 사회에 관심과 애정을 갖게 되는 것 같다. 그것이 연극을 하는 가장 큰 이유다. 연극을 해서 관심이 생기고 더 고민한 것을 알리고. 그렇게 즐기는 것뿐이지 경쟁은 없다”고 했다. 다만 “면 대 면으로 이야기를 해도 부담스러워 눈을 잘 마주치지 못하는데 공연을 직접 와서 본다는 것이, 원론적인 이야기일 수 있지만, 힘일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 연출은 “좀 더 좋은 삶을 최대한 살기 위해서, 살아가기 위해서 이 세계를 바라보는 매개체”가 연극이라고 본다. 그러나 결국은 “삶이 연극보다는 우선이 돼야 한다”면서 “좋은 연극을 만들기 위해서 연극을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고민해야 한다”고 짚었다.

【서울=뉴시스】왼쪽부터 김민정, 구자혜, 이경성

【서울=뉴시스】왼쪽부터 김민정, 구자혜, 이경성

 이들 세 연출처럼 삶과 연극에 대한 치열한 고민을 하는 사람이 있어도 삶은 여전히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다. 김 연출은 “하나의 메시지, 명제를 가지고 조금 더 발버둥쳤지만 ‘불행’이 그 안에 있을 수밖에 없었다”며 “이 사회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지를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개인의 미학적 성취를 내세우는 작업을 하고 싶다는 구 연출은 그것이 안 되는 사회여서 “짜증이 나더라. 이런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어서”라고 말했다.

 이 연출은 현재 한국 사회가 전체의 큰 지옥이 아닌 “각자만의 지옥이 만들어져 그것이 모인 듯하다”고 봤다. “연극이 이런 딴 세상들을 연결할 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을까 생각을 하고 있다”고 했다. “예전에는 각자의 위치에서 따로 또 같이 하는 연대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요새는 극장 안에서 연극을 하는 동시에 극장 밖에서는 그에 따른 구체적인 연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두 과정을 동시에 한다는 것이 녹록치 않다”며 “극장 안과 극장 밖에서 내세우는 지향점이 일치하지 않으면 둘 중에 하나는 가짜가 되는데 그 경계에서 계속 고민한다”고 고백했다.

 이처럼 연출가들에게 이번 ‘귀국전’은 또 다른 세계로의 출국 전(前) 발판이 되고 있다.

 '불행' 7~10일, '그녀를 말해요' 14~17일, '커머셜, 데피니틀리 -마카다미아, 검열, 사과, 그리고 맨스플레인' 21~24일. 전석 3만원, 청소년·대학생 1만8000원. 서울문화재단 남산예술센터. 02-758-2150

 [email protected]

많이 본 기사

구독
구독
기사제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