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차기 국무장관 내정자 틸러슨은 누구?
한 평생 엑손 모빌에서 일해온 틸러슨은 석유업계를 제외하고, 일반 미국 국민들은 물론이고 국제외교 무대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인물이다. 틸러슨이 의회의 비준을 받을 경우, 그는 현대 미국 역사상 외교는 말할 것도 없고 공직경험이 전혀 없는 최초의 국무장관이 된다. 하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공직 경험이 전혀 없다.
따라서 틸러슨이 과연 어떤 인물인지, 외교 경험이 전무한 그가 과연 복잡한 외교현안들을 해결할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에 전 세계의 관심이 집중하고 있다.
틸러슨은 '오일맨' 답게 '원유의 고장' 텍사스주 위치타 폴스에서 1952년 3월 23일에 태어났다. 1970년 헌츠빌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1975년 오스틴에 있는 텍사스대에서 엔지니어링으로 학사학위를 받자마자 엑손에 원유 생산 담당 엔지니어로 취직해 최근까지 무려 41년동안 한 회사에서만 일했다.
틸러슨은 회사 내에서 우직하게 '성공의 사다리'를 한계단 한계단 씩 밟아 올라간 사람이다. 평직원 기술자로 시작해 1989년 미 중부지역 총괄 매니저가 됐고, 1995년 예멘 엑손의 사장에 취임했으며, 1998년에는 러시아와 합작한 엑손네프테가스의 부사장이 됐다. 1999년 엑손과 모빌이 합병한 이후에는 엑손모빌개발의 부사장이 됐고, 2004년 엑손모빌의 사장을 거쳐 2년 뒤에는 드디어 회장 겸 CEO로 취임했다.
석유회사에서 일하다보니, 틸러슨이 업계 특성상 전 세계의 '사고 뭉치' 원유 생산국들을 자주 방문했고 현지 사정에 나름 정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점은 외교경험이 전혀 없는 그에게는 국무장관으로서 중요한 자산이다.
엑손 모빌 출신의 브루킹스연구소 연구원 수잰 멀로니는 최근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오일맨들은 수십억 달러, 수십년에 걸친 프로젝트들을 다루며 정치적 맥락에 대한 깊고도 미묘한 이해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즉 틸러슨이 예멘부터 러시아까지 정치적 혼란과 테러 등으로 바람잘 날 없는 산유국들과 복잡한 거래를 이끌어 내면서 외교를 터득했을 것이란 이야기이다.
사업가로서 틸러슨은 노련하고도 뚝심있는 협상력과 경영능력을 발휘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전형적인 텍사스맨답게 우직하고, 과장을 싫어하며, 직설적인 성품의 소유자로 알려져 있다. 석유 관련 저서 '상: 석유와 돈, 권력을 위한 서사적 탐구(The Prize: the Epic Quest for Oil, Money, and Power)'로 퓰리처 상을 수상한 작가 대니얼 예긴은 지난 11일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틸러슨을 "직선으로 날라가는 화살처럼, 임무가 있으면 그것을 향해 돌진해 해내는 사람"으로 표현했다.
2007년 2월 리비아로 직접 날아가 무아마르 카다피 당시 독재자와 심해 유전 개발 협상을 담판 지었던 것은 그의 과감한 협상 스타일을 잘 보여주는 일화로 꼽힌다. 그런가하면 베네수엘라 정부와의 관계에 있어서는 타협을 모르는 고집스런 면모를 드러내기도 했다. 2007년 우고 차베스 당시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오리노코 유전 벨트에 대한 국영화를 확대하는 조치를 취해 엑손모빌 등 현지에 진출해있던 세계 각국 메이저사들과 충돌했다. 다른 회사들은 베네수엘라 정부가 제시한 조건을 수용해 현지에서의 사업을 유지하려고 애썼지만 틸러슨은 타협을 거부하고 정면대결을 택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보도했다. 즉, 베네수엘라 정부로 하여금 엑손모빌 자산을 몰수하도록 만든 다음, 이 사안을 재판정으로 가져가 배상 싸움을 벌였다는 것이다.
틸러슨의 경력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것은 러시아의 밀접한 관계이다. 그는 1990년대 말 러시아 사업을 담당하면서 보리스 옐친 당시 대통령은 물론 블라디미르 푸틴 당시 총리와도 친분을 쌓았다. 이고르 세친 현 로스네프트 사장과도 절친 관계로 알려져 있다.지난 2006년 틸러슨이 회장 겸 CEO로 발탁되는데에도, 러시아 정계 최고위 인사들과의 이같은 깊은 관계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러시아 정부 지도부와의 돈독한 관계 덕분에 틸러슨은 지난 2011년 러시아와의 거래를 성사시켰다. 엑손모빌이 러시아 북극해 자원개발에 참여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고, 러시아 국영 석유회사인 로스네프트에 투자하는 내용이었다. 이 프로젝트는 푸틴 대통령이 소치에서 직접 발표했을 정도로 러시아 정부가 공을 들였던 것이었다. 그로부터 2년 후인 2013년, 푸틴 대통령은 틸러슨에게 '우정 훈장'을 수여했다. '우정 훈장'은 러시아 정부가 외국 민간인에게 수여하는 최고위 훈장이다.
틸러슨은 현재 엑손모빌 주식 1억5100만 달러(약 1749억원)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인준 청문회에서 심각한 문제가 될 수있다. 버락 오바마 정부가 지난 2014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합병 이후 대러 제재를 단행하면서 엑손 모빌의 북극해 자원개발 참여 프로젝트는 현재까지 동결된 상태이다. 만약 트럼프 차기 정부가 러시아 제재를 해제할 경우, 틸러슨의 엑손 모빌 주식 가격은 당연히 폭등하게 된다. 국무장관이 외교정책으로 개인적 이득을 취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틸러슨이 국무장관에 취임하기전 이런 문제를 피하기 위해 자신의 주식을 처분 또는 백지신탁할 것으로 예상했다.
러시아와 유난히 가까운 관계가 틸러슨이 국무장관이 됐을 경우 미국 국익에 해가 될 것인가 여부는 미지수이다.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기사에서 틸러슨이 세련된 외교관은 아니지만 효과적인 협상가로서의 면모를 보여줘왔으며, 전 세계 산유국들과 엑손모빌의 관계를 유지, 발전시켜온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그같은 능력이 과연 복잡한 외교무대에서도 통할지는 물론 아직 알 수없는 일이다.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틸러슨의 러시아 정치인들과의 돈독한 관계는 인준청문회의 핵심이 될 것이 확실시되며, 틸러슨의 국무장관 임명의 발목을 잡는 최대 이슈가 될 것이란 점이다.하지만 싱크탱크 '에너지충격을 위한 BCG센터'의 책임자인 로빈 웨스트는 FT와의 인터뷰에서 "틸러슨이 푸틴의 주머니 속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라면서 "틸러슨은 엑손모빌이 러시아에서 많은 사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푸틴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상: 석유와 돈, 권력을 위한 서사적 탐구'의 작가 대니얼 예긴 역시 웨스트와 비슷한 견해이다. 그는 11일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틸러슨과 러시아의 관계를 "비즈니스 관계"로 규정하면서, 엑손모빌 전체 사업에서 러시아가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틸러슨이 국무장관이 되면 미국의 이익을 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틸러슨과 관련해 또 한가지 주목해야 할 점은 기후변화 문제이다. 대선 유세과정에서 기후변화의 인간 책임론을 '사기'로 비판했던 트럼프와 달리, 틸러슨은 기후변화와 화석연료 간의 상관관계를 인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과거 엑손 모빌은 기후변화와 화석연료의 연관성을 부인해왔지만, 2006년 틸러슨이 회장 및 CEO에 취임한 이후에는 기후변화에 대한 과학계의 연구성과를 받아들이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방향으로 회사의 입장이 전환했다고 워싱턴포스트(WP)는 최근 지적한 바있다. 엑손 모빌은 지난 해 파리 기후협정이 체결된 직후 지지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틸러슨은 경제 정책에 있어서는 열렬한 자유무역주의자로 알려져 있다.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도 지지한다. 이는 보호무역을 주장하는 트럼프와는 반대이다.
또 어린시절부터 몸담아온 보이스카우트의 최고 영예인 '이글 스카우트' 대원이자 전미 연맹 최고 책임자로서 사상 첫 동성애자 입단허용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다만 틸러슨의 북한 관련 입장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알려진 바가 없다.
한편 틸러슨은 부인 렌다와의 사이에 4 자녀를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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