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곤 두산그룹 명예회장 별세…경청의 리더십 보여준 '침묵의 거인'
사람을 중심에 둔 '믿음의 경영' 실천…인화·인재 중시
OB맥주 매각 등 체질개선 주도…글로벌 두산 기틀 닦아
사업적 결단의 순간 때도 그는 실무진의 의견을 먼저 경청했고 다 듣고 나서야 입을 열어 방향을 정했다.
재계에서 모든 사람이 인정할 정도로 과묵한 성품이었던 고인은 생전에 말을 많이 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말을 많이 하다 보면 쓸데없는 말을 하게 됩니다. 또 내 위치에서 무슨 말을 하면 그 말은 모두 약속이 되고 맙니다. 그러니 말을 줄이고 지키지 못할 말은 하지 말아야죠."
그는 인화와 인재를 중요시했다. 박 명예회장은 "'인화'란 '공평'이 전제돼야 하고, '공평'이란 획일적 대우가 아닌 능력과 업적에 따라 신상필벌이 행해지는 것"이라며 "인화로 뭉쳐 개개인의 능력을 집약할 때 자기실현의 발판이 마련되고, 여기에서 기업 성장의 원동력이 나온다"고 말했다.
또 인재가 두산의 미래를 만드는 힘이라고 강조했다. 박 명예회장은 "두산의 간판은 두산인들"이라며 "나야 두산에 잠시 머물다 갈 사람이지만 두산인은 영원하다"고 했다. "기업은 바로 사람이고 기업을 경영한다는 것은 사람을 어떻게 다루느냐는 것과 일맥상통하다"고도 언급했다.
두산 직원들은 "세간의 평가보다 사람의 진심을 믿었고, 다른 이의 의견을 먼저 듣고 존중하던 '침묵의 거인'이셨다"며 "주변의 모든 사람을 넉넉하게 품어주는 '큰 어른'이셨다"고 기억했다.
【서울=뉴시스】故 박용곤 두산그룹 명예회장(사진 왼쪽에서 네 번째)이 1995년 OB베어스(현 두산베어스) 한국시리즈 우승을 기념하는 행사에 참석했다. (사진=두산그룹 제공)
◇'남의 밥 먹는 것'부터 시작…두산에서 첫 업무는 공장 청소
고인이 사회생활을 시작한 것은 1960년 4월. 두산그룹이 아닌 한국산업은행에 공채 6기로 입행했다. "남의 밑에 가서 남의 밥을 먹어야 노고의 귀중함을 알 것이요, 장차 아랫사람의 심경을 이해할 것이다"라고 강조한 선친 박두병 초대회장의 뜻에 따른 것이었다.
3년 동안 은행 생활을 한 그는 1963년 4월 동양맥주에 말단 사원으로 입사했다. 첫 업무는 공장 청소와 맥주병 씻기였다. 이후 선진적인 경영을 잇따라 도입하며 경영인으로서의 능력을 발휘했고 한양식품, 두산산업 대표 등을 거쳐 1981년 두산그룹 회장에 취임했다.
그룹회장을 맡은 이후 1985년 동아출판사와 백화양조, 베리나인 등의 회사를 인수하며 사업영역을 확대했다. 1990년대에는 시대 변화에 발맞춰 두산창업투자, 두산기술원, 두산렌탈, 두산정보통신 등의 회사를 잇따라 설립했다. 1974년에는 합동통신(연합뉴스 전신) 사장에 취임했다.
국제상업회의소 한국위원회 의장,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 등을 지냈으며, 경영 성과를 인정받아 1984년 은탑산업훈장, 1987년 금탑산업훈장을 수훈했다.
【서울=뉴시스】故 박용곤 두산그룹 명예회장이 1996년 5월 두산그룹 신규 CI 선포식에 참석해 새로운 로고가 새겨진 그룹기를 흔들고 있다. (사진=두산그룹 제공)
◇국내 최초 연봉제 도입…OB맥주 매각 등 체질개선
글로벌 기업으로 나아가기 위한 기틀도 마련했다. 박 명예회장은 두산그룹 회장 재임시 국내 기업 처음으로 연봉제를 도입하고 대단위 팀제를 시행하는 등 선진적인 경영을 적극 도입했다.
1994년에는 직원들에게 유럽 배낭여행 기회를 제공했고, 1996년에는 토요 격주휴무 제도를 시작했다. 여름휴가와 별도의 리프레시 휴가를 실시하기도 했다.
동양맥주에 재직중이던 1964년에는 국내 기업에서는 생소하던 조사과라는 참모 조직을 신설해 회사 전반에 걸친 전략 수립, 예산 편성, 조사 업무 등을 수행하며 현대적 경영체계를 세웠다.
그는 부단한 혁신을 시도했다. 창업 100주년을 한해 앞둔 1995년의 혁신이 대표적이다. 경영위기 타개를 위해 당시 주력이던 식음료 비중을 낮추면서 유사 업종을 통폐합하는 조치를 단행했다. 33개에 이르던 계열사수를 20개사로 재편했다.
당시 두산의 대표사업이었던 OB맥주 매각을 추진하는 등 체질 개선작업을 주도했다. 이 같은 선제적인 조치에 힘입어 두산은 2000년대 한국중공업, 대우종합기계, 미국 밥캣 등을 인수하면서 소비재 기업을 넘어 산업재 중심의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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